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블록버스터 신작 <오디세이(The Odyssey)>가 극장가를 강타하며 연일 흥행 신기록을 쓰고 있다. 전 세계적인 폭발적 흥행과 함께 사상 최고 흥행작 등극은 물론, 역대 R등급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는 대기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거대한 기록의 이면에는 호메로스의 고대 그리스 대서사시를 재해석한 묵직한 서사가 자리한다. 영화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타카의 왕인 오디세우스(멧 데이먼 분)가 온갖 시련을 뚫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10년의 여정을 집요하게 그린다. 그리고 오디세우스가 비운 자리를 틈타 무법천지가 된 왕국의 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야당인 국민의힘이 직면한 리더십 공백 사태를 정확하게 투영하고 있다.
물론 고대 서사시 속 왕국과 현대 정당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리더십이 분열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조직이 방향을 잃고 내부 권력투쟁으로 이어진다는 구조적 측면에서 보면 두 사례는 묘한 평행선을 이룬다. 지금 정부·여당을 매섭게 견제해야 할 야당인 국민의힘은 사령탑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내부 갈등과 헤게모니 싸움으로 인해 단일 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당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단순한 지지율 부진이 아니라, 당의 미래를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할 통합의 리더십과 비전이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오디세우스가 떠난 이타카 왕국이 구혼자들의 권력 찬탈과 방탕한 잔치 속에서 무너져 내리듯, 선거 패배와 지지율 정체 속에서 야당 역시 당의 리더 역할을 할 ‘정치적 오디세우스’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타카의 구혼자들이 왕국의 미래보다 자신들의 욕망에 몰두했던 것처럼, 국민의힘 또한 당의 생존과 혁신보다 당권과 헤게모니를 쥔 내부 싸움에만 매몰되어 있다. 대중의 신뢰를 담보할 통합의 리더십은 실종되었고, 당은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을 거대한 폭풍과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유혹의 세이렌 같은 괴물들이 가로막고 있듯, 지금 대한민국 경제 앞에는 고물가와 부동산 불안, 청년층의 박탈감이라는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정부·여당의 실정조차 정치적 기회로 바꾸지 못하고 있다. 이는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당의 목소리가 사분오열되면서 국민의 삶을 구제할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해법을 주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대 담론이나 유기적인 대안 제시는 실종된 채 매번 땜질식 비판에만 매몰되면서 야당은 유능한 대안 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 아내 페넬로페가 수많은 회유 속에서도 남편의 귀환을 묵묵히 기다려냈던 것과 달리 현실의 유권자는 무한정 인내하지 않는다. 정치권이 스스로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필요하면 지지를 철회하고 다른 선택지를 찾는다. 야당이 집안싸움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사이, 민심은 정치적 냉소와 환멸로 돌아서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존 정치권과 정당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식의 정치적 호소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위기 속에서 정치 경험이 많은 중진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기득권의 방어가 아니라 희생과 통합, 그리고 명확한 비전 제시이다. 왕국의 위기 속에서도 사익 추구에 몰두했던 서사 속 구혼자들처럼, 오늘날 야당 중진들 역시 당의 쇄신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선수 늘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과거의 화려한 이력이나 다선이라는 경력이 다가올 미래의 리더십을 보장하지 않는다. 진정 위기일수록 중진들에게 절실한 것은 한발 물러설 줄 아는 정치적 결단과 용기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단순히 돌아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왕국을 어지럽힌 세력을 심판하며 질서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특정한 영웅 한 사람이 돌아오기만을 요행처럼 바라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다. 정치적 만을 기다리며 내부 권력투쟁을 반복하는 한,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진정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의 영웅에 대한 의존이 아니라 국민을 향한 명확한 비전과 이를 실천할 통합된 리더십이다.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스스로 증명해내야 한다.
“구혼자들의 잔치를 끝내고 민생의 바다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당권과 계파의 좁은 항구에 머물 것인가.”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겉치레뿐인 인물 교체가 아니다. 사사로운 이익과 권력다툼이라는 구태의연한 잔치를 과감히 끝내고, 민생의 바다로 향해 나아가야 한다. 혁신과 통합이라는 거센 파도를 넘지 못한다면 야당인 국민의힘이 맞이할 결말은 영광의 귀환이 아니라 정치적 표류의 장기화와 혹독한 심판뿐이다.
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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