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베트남, 노무현의 이라크 그리고 이재명의 호르무즈는
다른 시대 다른 서사지만 이것을 관통하는 질문은 남아 있다
누구의 전쟁인가. 왜 우리가 참여해야 하는가.
무얼 위해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가.
그리고 결과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파병 역사는 한 나라가
강대국과 관계, 동맹과 자율성, 평화와 국익 사이 어디에
자신의 선을 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역사다
전쟁터에 군대를 보내는 결정만큼 한 국가의 성격과 지도자의 판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도 드물다. 파병에는 언제나 명분이 따른다. 동맹을 위해서, 국가안보를 위해서, 국제평화를 위해서, 때로는 자국민과 경제적 생명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명분을 한 겹 벗겨내면 더 어려운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왜 남의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가. 한국 현대사는 이 질문을 여러 차례 마주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는 베트남에 대규모 전투병력을 보냈다. 맹호부대와 청룡부대, 백마부대 등이 파견됐고, 연인원 30만명이 넘는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여했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반공과 자유세계의 방어였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보다 현실적인 국가전략도 있었다. 북한과 대치하던 한국에는 미국의 확고한 안보공약이 필요했고, 경제개발을 위한 군사·경제적 지원도 절실했다. 1966년의 ‘브라운 각서’는 파병과 미국의 지원이 얼마나 긴밀하게 맞물려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베트남 파병은 반공이라는 신념, 한·미 동맹, 국가발전 전략이 결합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국가발전과 동맹이라는 성과의 뒤편에는 한국군의 희생뿐 아니라 베트남 민간인 피해와 전쟁 책임이라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적 질문이 남았다.
약 40년 뒤 노무현 대통령은 다른 정치적 배경에서 비슷한 문제와 마주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그의 정치적 지지층 상당수는 전쟁에 반대했다. 그 자신도 미국의 일방주의적 군사행동에 친화적인 정치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파병을 결정했다.
그의 고민은 2003년 4월2일 국회 국정연설에 드러난다. 노무현 대통령은 명분을 앞세워 한·미관계를 갈등으로 몰아가기보다 미국을 돕고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당시 북한은 이미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했고 제2차 북핵위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에게 이라크 파병은 단순히 친미냐, 반미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과 한·미 동맹,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가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2003년 공병·의료지원 병력이 먼저 파견된 이후에도 미국의 추가 파병 요구가 이어지면서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 무렵 나 역시 37년 만에 귀국해 국정원과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파병을 둘러싸고 갈라진 한국 사회의 논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내 여론과 국제정세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이라크 국민의 의사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4년 추가 파병에서는 파병지역과 임무를 제한했고, 결국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재건과 의료·교육 지원을 주요 임무로 하는 자이툰부대를 보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지금도 논쟁할 수 있다. 이라크전쟁의 핵심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전쟁의 정당성 자체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무현의 결정을 현실주의적 결단으로 미화하거나 미국에 대한 굴복이라고 단순화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선택에 내재한 모순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언젠가는 한국이 부당한 전쟁에 대한 파병 요청을 거절해도 미국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대가 오기를 바랐다는 점이다.
지금 다시 만난 ‘노무현의 고민’
2026년 우리는 다시 호르무즈 해협 앞에 서 있다. 이란과 전쟁 중인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과 관련해 한국의 파병을 압박하고 있다. 9월18일 이재명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전쟁에 관여 또는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다만 한국 상선과 원유 수송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청해부대의 활동을 강화하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과 무관한 중동의 먼 바다가 아니다. 한국 경제에 필요한 에너지와 상품이 통과하는 핵심 해상교통로다. 자유항행과 한국 선박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분명 한국의 국익과 연결된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경계선의 문제가 나타난다. 자유항행을 보호하기 위한 초계활동은 어디까지 자국의 안보활동이고, 어느 순간부터 미국이 수행하는 군사작전의 일부가 되는가. 직접 포탄을 발사하지 않는 지원함이나 전투에 가담하지 않는다고 설명되는 초계기의 활동은 어디까지 ‘비전투 임무’인가. 현대전에서 정보와 정찰, 보급과 수송은 전투행위와 완전히 분리되기 어렵다. 우리가 비전투 임무라고 규정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오늘 호르무즈를 둘러싼 논쟁은 놀랍게도 2003년 노무현의 고민과 다시 만난다. 한·미 동맹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 동맹을 위해 한국은 어디까지 군사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 동맹국의 요구와 한국 국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하는가. 파병하지 않았을 때의 비용과 파병했을 때의 위험 가운데 무엇이 더 큰가.
여기에서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말했던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의 긴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신념윤리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원칙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면, 책임윤리는 그 원칙에 따라 행동했을 때 생길 수 있는 결과까지 정치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좋은 뜻만으로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의미 있는 그의 ‘고민 방식’
따라서 호르무즈 파병 문제 역시 ‘평화가 중요하므로 파병해서는 안 된다’거나 ‘동맹이 중요하므로 파병해야 한다’는 하나의 원칙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파병하지 않을 경우 해상수송과 에너지 안보, 한·미 동맹에는 어떤 비용이 생기는가. 반대로 파병할 경우 이란과의 갈등이나 더 큰 군사적 충돌에 휘말릴 위험은 얼마나 되는가. 정치적 결단은 이처럼 상충하는 결과를 냉정하게 직시하고 그 결과를 떠맡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책임윤리에도 어려움은 있다. 미래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정치가는 없다. 더구나 국익이나 불가피한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는 객관적인 계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치지도자가 여러 결과를 신중하게 계산했다는 것만으로 그 결정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이 제기하는 질문이 중요해진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국익과 불가피한 위험을 규정하는가. 파병의 목적과 범위, 예상되는 위험과 다른 대안은 시민들이 검토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야 하며, 국회와 시민사회의 논의를 통해 정당화되어야 한다.
베버가 묻는 것이 ‘파병의 결과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면, 하버마스의 질문은 ‘그 결정을 어떤 절차와 논거를 통해 국민 앞에서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위기의 순간에는 신속한 결단이 필요하지만, 긴급성이 민주적 정당화까지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이며, 그 결과를 누가 어떤 절차로 결정하고 책임질 것이냐는 문제다.
파병은 신념의 문제인 동시에 결과의 문제이며, 그 결과를 누가 어떤 절차로 결정하고 책임질 것이냐는 문제다. 평화라는 신념도, 동맹이라는 현실적 요구도 그 자체만으로 파병의 찬반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 그 이유와 결과를 국민 앞에서 설명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노무현의 고민은 아직도 의미가 있다. 그가 내린 결론 때문이라기보다 고민의 방식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믿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박정희의 베트남, 노무현의 이라크 그리고 이재명의 호르무즈는 서로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서사다. 그러나 이 세 서사를 관통하는 질문은 남아 있다. 누구의 전쟁인가. 왜 우리가 참여해야 하는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떤 위험을 감수하려는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파병의 역사는 단순히 군대가 국경을 넘은 역사만이 아니다. 그것은 한 나라가 강대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으며, 동맹과 자율성, 신념과 책임, 평화와 국익 사이에서 어디에 자신의 선을 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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