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자매원 70년…약자 품는 ‘100년 숲’ 가꾼다
창립 70주년 맞은 소화자매원 대표이사 조영대 신부
‘오월 사제’ 조비오 신부 뜻 이어…가난·장애인 응달 품어
“지치지 않는 사랑으로 봉사…변함없는 관심·후원 절실”
2026년 10월 05일(월) 20:35
“70년 동안 받아온 사랑을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며 묵묵히 100주년을 그려가겠습니다.”
조영대<사진> 프란치스코 신부는 5일 “소화자매원은 지난 70년간 사회적 약자들의 자립과 복지를 위해 힘쓰며 전국적으로 모범적인 복지시설로 평가받을 만큼 성장해왔다”며 “헌신적으로 일해온 직원들과 아낌없는 도움과 사랑을 보내준 지역민들 덕분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화자매원은 지난 2일 오후 전남광주시 남구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소화 70년! 사랑을 살다, 소화를 잇다’를 주제로 창립 7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소화자매원은 1956년 3월 고(故) 김준호 레오 선생이 옛 광주시 북구 화암동 무등산 자락에 ‘무등원’을 세우고 결핵 환자들을 돌보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조 신부는 2018년부터 제14대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김 선생은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에서 만난 결핵 환자 청년과 ‘꼭 결핵 환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고 한 약속을 계기로 무등원을 설립했다고 합니다. 강냉이 가루 몇되와 담요 석장을 들고 복음을 배우던 문하생들과 함께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이 건네준 성녀 소화 데레사의 시 ‘사랑을 살다’는 가난과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겠다는 소화자매원의 중심 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무등원은 무등산 골짜기에 80여명이 생활할 수 있는 건물을 짓기도 했지만, 정부의 철거 명령으로 1964년 5월 현재의 남구 봉선동으로 터를 옮겼다. 명칭도 1966년 ‘무등자활원’, 1981년 ‘소화자매원’으로 바뀌었다. 결핵이 국가 관리 질병으로 지정되면서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 등 사회적 소외계층의 정신적·심리적 안정과 재활을 돕는 복지사업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5·18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자 ‘오월의 사제’로 불린 고(故) 조비오(조철현) 신부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조비오 신부는 1987년부터 2016년 9월 선종할 때까지 30여년간 소화자매원 대표이사직을 맡아 시설 운영과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힘썼다. 현재 대표이사인 조영대 신부는 조비오 신부의 조카이기도 하다.
“소화자매원은 1978년 1월 운영난으로 존폐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 조비오 신부를 만나게 됐다고 합니다. 조비오 신부는 사비를 털고 소화자매원을 위한 후원자를 모집하는 등 시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힘썼습니다. 선종하는 날까지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운영비에 보태는 등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데 매진했습니다. 저 역시 그 뜻을 이어받아 소화의 정신을 이어가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소화자매원은 이 같은 노력과 지역민들의 보탬으로 운영 기반을 점차 마련해 나갔고, 1985년에는 사회복지법인 설립 인가를 받았다. 현재는 장애인을 고용해 친환경 세제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소화아람일터를 비롯해 소화누리, 소화천사의집, 소화성가정, 소화진달네집, 소화햇살둥지 등 6개 산하기관을 운영하며 보다 전문적인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 이후 기관·개인 후원이 줄면서 기관 운영에도 어려움이 커져가고 있다고 한다.
조 신부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소화의 모든 가족 한분 한분을 정성을 다해 섬기고 있다. 소외계층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시선 없이 늘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봐주신 모든 지역민과 남구 주민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지역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해 지치지 않는 사랑으로 봉사하는 소화공동체로 자리매김하겠다. 앞으로도 소화가 걸어가는 길에 변함없는 관심과 후원, 지지를 보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윤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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