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표 법무법인 우람 대표변호사
최근 AI 판사가 수사 재판 사형집행까지 담당한다는 내용의 영화 노머시(No Mercy)가 상영됐다. 죄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법정에서의 재판이 아니라 프로그램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인데, AI 판사는 범죄현장 영상 등 각종 증거를 종합해 범인을 특정하고, 특정된 피고인이 90분 내에 본인의 유죄 확률을 92% 이하로 낮추지 못하면 유죄 확정과 동시에 즉결 처형된다는 것이다.
‘mercy’는 라틴어 ‘miseri cordia’에 어원을 둔다. ‘miseri’는 고통, ‘cordia’는 심장 내지 마음으로 miseri cordia는 다른 사람의 고통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픈 것으로, 자비 연민 관용으로 번역된다. 권한이 있는 사람이 처벌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용서하거나 관대함을 베푼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영화 원작자는 AI 판사를 관용과 자비의 이미지로 보아 이름을‘mercy’라 짓고 영화 제목도 ‘mercy’라고 했는데, 우리나라 배급사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영화 제목을 ‘No Mercy’라고 지었다.
그런데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멀지 않은 2029년이고 요즘 법률 분야에서 AI 기능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법원의 판결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AI 판사를 도입하라는 요구도 심심찮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보니 AI 판사가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AI 판사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 판결이 일관적이지(나아가 공평하지) 않다는 점을 그 근거로 한다. ‘배고픔과 피곤함은 판사의 판결에 영향을 준다’는 미국 콜롬비아 대학 연구 결과처럼 판사가 정신적으로 지쳐있다면 판결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고, 판사의 편견(내지 가치관)에 따라 형량이 들쭉날쭉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미국에서 구금 및 가석방심사, 양형 판단에 AI 기반의 ‘재범 예측 프로그램(COMPAS)’이 사용되고 있고, 에스토니아에서는 소송 가액이 700유로 이하인 소액사건의 경우 AI 판사가 판결을 내리도록 했다는 기사도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민간기업이 기존 판결을 토대로 음주운전 등에 대한 형량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변호사들도 AI를 활용해 준비서면을 작성하는 등 AI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AI 판사의 도입이 시급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 없는 AI가 인간보다 공정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 가석방 심사에서 ‘COMPAS’의 사용으로 인해 재판의 편향성이 더 강화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AI는 기존 판결을 학습하기 때문에 판사의 편견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것이다. ‘COMPAS’를 사용한 법원 판결을 분석한 결과 ‘COMPAS’의 범죄 위험도 평가가 인종 차별적 결과를 초래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보고서에 의하면 ‘COMPAS’는 흑인의 재범 가능성을 백인보다 2배 이상 높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는 AI가 기존 판결을 답습할 뿐 좋은 판결만을 골라 학습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 판결의 편견과 차별을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데이터는 객관적이고 수치는 가치중립적일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데이터의 수집 단계에서부터 권력과 편견에 노출된다는 과학자들의 지적도 의미심장하다.
또 판결은 ‘사실확인’과 ‘가치판단’을 종합해 이뤄지는데, 판결이 하나의 데이터로만 받아들여진다면 가치판단의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시대정신의 변화에 따라 기존 판례를 바꿔야 하는 경우에도 AI는 과거 판결을 토대로 선고하기 때문에 한계가 많다는 것이다.과거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나 간통에 대한 형사처벌은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시대정신의 변화 과정에서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그 사례이다. 이렇듯 판결의 사법적 기능은 분쟁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입법권과 같이 일정한 정책을 형성하는 데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사건은 AI 판사로 대체할 수 있는 분야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입견과 가치관은 물론 피도 눈물도 없는 ‘no mercy’한 재판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것일지? 결국 선입견과 편견을 최대한 억제하되 자비심과 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 법조문을 넘어선 시대정신도 담아내는 재판을 하는 것이 인간 판사의 존재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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