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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상을 보며] 의기 논개와 진주의 봄축제- 강진태(진주본부장)

올해는 교방문화 체험 확대·AI콘텐츠 도입 등 축제방식에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특히 ‘교방 배움’ 프로그램의 체계화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신규 체험 콘텐츠를 도입했다. 전통 교방 문화의 단순한...

[세상을 보며] 의기 논개와 진주의 봄축제- 강진태(진주본부장)

진주의 대표 봄축제로 자리 잡은 ‘진주논개제’는 임진왜란 당시에 진주 남강 의암에서 일본 장군을 안은 채 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은 조선의 여인 의기 논개가 모티브다.

논개에 대한 기록은 정확히 학문으로 정립되지는 않았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최초로 등장하는데, 조선 왕조의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는 논개 관련 기록이 없다. 사실 어우야담의 언급이 최초의 기록이라서 주요 기록으로 전하지만 어우야담은 야담집의 효시로 꼽히는 서적이므로 정식 사서로서는 물론 야사집으로도 많이 부족하다. 다만 어차피 사서 기록이 없고 이후 일화와 일치되는 점이 많아서 이걸 주요 자료로 꼽을 뿐이다. 애초에 이런 기생이 실존했느냐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확인은 안 된다는 이야기다.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논개는 진주 관기였다. 계사년(1593)에 김천일이 의병을 일으켜 진주를 근거지로 왜병과 싸우다가 성은 함락되고 백성은 모두 죽었다. 이때 논개는 촉석루 아래 남강에 솟은 바위 의암에서 승전 축하연을 하던 왜장을 끌어안고 강으로 몸을 던져 두 사람은 모두 익사했다고 한다. 적장을 안고 뛰어내릴 때 손가락이 풀어지지 말라고 아는 사람들로부터 반지를 빌려 열 손가락에 끼운 후에 손을 엇갈려 끼우고 뛰어내렸다고 한다.

논개의 의거는 전후 진주 사족과 주민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 회자하면서 유명해져 1722년 국가로부터 정식으로 ‘의기’ 칭호를 받았다.

이후 영조 시절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논개를 기려 의기사란 사당과 의암 사적비를 세웠고, 진주의 기생들은 매년 6월 29일, 즉 진주성 함락일이자 논개의 기일에 모여 제사를 지냈다. 현재는 ‘진주논개제’로 진주시의 제전행사를 비롯한 교방문화로 승화돼 축제로 성대하게 치러진다. 진주논개제의 핵심은 논개가 몸을 담았던 기생문화, 즉 교방문화로 악·가·무·시·서·화 등 6예로 당시의 종합예술이다.

논개에 대한 많은 학설과 논란이 존재하지만, 진주사람들에게는 실존 인물이든, 허구 인물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는 호국 충절의 대명사로, 진주인들의 정신세계에 깊이 각인돼 있다.

제25회 진주논개제는 오는 5월 2일 부터 5일 까지 진주성·진주대첩 역사공원 일원에서 ‘교방, 청춘을 잇다’를 주제로 개최된다. 진주논개제는 그동안 변신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전 세대가 배우고 참여하며 즐기는 진주의 봄축제가 됐다. 올해는 교방문화 체험 확대·AI콘텐츠 도입 등 축제방식에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특히 ‘교방 배움’ 프로그램의 체계화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신규 체험 콘텐츠를 도입했다. 전통 교방 문화의 단순한 관람을 넘어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직접 배우고 참여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행사의 주제에 걸맞게 지역 4개 대학교 학생들의 대거 참여는 축제의 신선함을 더할 것으로 기대가 크다.

이번 논개제에는 각 대학 총학생회가 제전 위원과 기획위원으로 참여해 축제의 기획 단계부터 청년의 시선과 창의성을 더했다고 한다. 전통 의례 중심의 논개제에 지역의 청년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새로운 시도는 세대를 잇는 축제로 진화가 기대된다.

교방 문화의 정체성을 더 살리고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한다. 따뜻한 봄날 의기 논개의 충절을 되새기면서 멋진 교방문화를 흠뻑 느껴보자.

강진태(진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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