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에게 농촌 문제 떠넘기지 말고
농민으로서 삶 꾸려갈 수 있게 해줘야
농업과 농촌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꼭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앞으로 누가 농사를 지을 것인가?” 고령화와 인구 유출, 더 나아가 지역 소멸이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먹거리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이 질문에는 종종 간단한 답이 따라붙는다. 청년, 곧 젊은 인력을 농업과 농촌의 새로운 일꾼으로 삼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언젠가 농사를 지을 수도 있겠다고 고민해 온 나에게, 이런 답은 꽤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당장 농사지어 먹고살 수 있다는 보장도 분명하지 않은데, 왜 먼저 ‘일꾼’으로 부르는 것일까.
물론 고령화된 농업·농촌에 대응해 청년을 새로운 농민으로 길러내는 일은 중요하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농업인력 육성 정책을 펼쳐 왔고, 최근에는 청년농을 농업·농촌의 미래를 이어갈 주체로 강조해 왔다. 청년은 젊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며, 쇠퇴해 가는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존재로 기대된다. 신문 기사 속 청년농은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미래 농업인이며, 지역 인구를 늘리고, 지역 발전에도 기여해야 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런 기대는 틀린 말만은 아니다. 다만, 그 기대가 커질수록 청년농의 실제 삶은 쉽게 보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조금 바꾸어 보고 싶다. “청년농은 농촌을 구할 수 있는가?”보다도 “청년농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묻고 싶다. 청년농은 미래 농업의 상징이기 전에 오늘의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생활인이다. 농지를 구하고, 자금을 빌리고, 판로를 찾고, 부모와 역할을 조정하고,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하루하루 농사를 이어간다. 어떤 청년은 부모의 기반 위에서 시작하지만 여전히 “네 농사냐, 부모 농사냐”는 시선을 마주한다. 어떤 청년은 귀농해 새로 터를 잡지만, 농지를 빌리는 일부터 지역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까지 하나씩 통과해야 한다. 정책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곧바로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지원금은 도움이 되지만, 그것만으로 농사와 생활 전체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청년농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은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다. 청년농을 농촌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울 사람, 미래 기술을 도입할 사람, 지역 소멸을 막아줄 사람으로만 부르면 그들의 삶은 쉽게 가려진다. 청년농은 농촌의 문제를 대신 해결하러 온 존재가 아니다. 그들 역시 농촌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조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농민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농사를 시작한다는 뜻이 아니다. 빚과 투자, 실패와 배움, 가족과 마을의 관계 속에서 자기 삶의 방식을 계속 조정해 간다는 뜻에 가깝다. 이 과정은 한 세대가 다른 세대의 빈자리를 곧바로 채우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이 부딪히고 맞춰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때로는 버티고,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다른 가능성을 찾으면서 농민이 되어 간다.
그러므로 “누가 농사를 지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다시 물어야 한다. 누가 농사를 지을 것인가만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청년에게 농촌의 미래를 기대하려면, 먼저 청년이 현재를 살아낼 수 있는 조건을 살펴야 한다. 농촌에 청년이 필요하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년이 농촌에서 한 사람의 농민이자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그래야, 청년농은 누군가의 기대를 짊어진 일꾼이 아니라, 자기 삶을 꾸려 가는 농민으로 남을 수 있다.
/정대환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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