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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성수 다음은 여기다…이름 날리는 브랜드 새 둥지 튼 곳 [비크닉]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나와 돌담길을 따라 청와대 방면으로 올라가는 이른바 경복궁 돌담길은 요즘 러너들의 성지가 됐다. 광화문 월대에서 시작해 서촌을 지나 경복궁을 끼고 도는 이른바 ‘댕댕런’ 코스의 중심이 되면서다.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나와 돌담길을 따라 청와대 방면으로 올라가는 이른바 경복궁 돌담길은 요즘 러너들의 성지가 됐다. 광화문 월대에서 시작해 서촌을 지나 경복궁을 끼고 도는 이른바 ‘댕댕런’ 코스의 중심이 되면서다. GPS(위성항법장치)를 켜고 종로 일대와 청계천까지 약 8㎞를 뛰면 지도 위 러닝 경로가 강아지 모양이 된다는 데서 생겨난 이름이다.

b.트렌드

이런 러너들과 경복궁을 목적지 삼아 들른 외국인 관광객, 카페와 산책길을 즐기러 방문한 내국인까지 몰려들면서 조용했던 서촌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초부터 러닝 및 스포츠 브랜드들이 하나씩 간판을 달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패션·뷰티 매장까지 차례로 들어서면서다.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가 포토그래퍼 유르겐 텔러와 함께한 2026 겨울 팬진 출간을 기념해 내달 1일까지 서울 카멜 커피 서촌점에서 팝업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보테가 베네타

굵직한 브랜드 잇달아 오픈

실제로 올해 서촌에 문을 연 브랜드 매장만 7곳이다. 지난 2월 ‘아디다스’가 러닝 특화 팝업 스토어 ‘아디다스 퍼포먼스 서촌’을 열었고, 4월에는 아웃도어 브랜드 ‘살로몬’이 세계 첫 트레일 러닝 전문 매장을 냈다. 같은 달 여성 의류 브랜드 ‘로라로라’가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5월에는 향 브랜드 ‘쿠오카’ 플래그십이 들어섰다. 지난 9월에는 ‘프로스펙스·몽벨’과 코오롱FnC의 ‘아카이브 앱크’가 연달아 문을 열었다. 지난해 북촌에 국내 첫 플래그십을 낸 향 브랜드 ‘르 라보’도 올해 서촌점을 열었다.

올해 2월 문을 연 아디다스 서촌 팝업 스토어 전경. 러너들이 휴식하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포함했다. 사진 아디다스

주요 브랜드의 오픈 소식이 이어진 서촌의 중심거리는 자하문로 10길과 그 인근이다. 아디다스·살로몬·베이스레인지·이솝·르 라보·모노하·더 일마 등 패션·뷰티 브랜드가 한 골목에 나란히 자리하고, MK2를 비롯해 카멜·테일러 등 이름난 카페들이 포진하고 있다. 서촌의 한 상가 전문 공인중개사는 “주로 패션·의류·뷰티·향수 위주로 브랜드 문의가 많고, 최근에도 중견·중소 의류와 신발 브랜드 문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내년 초 오픈을 준비하는 브랜드도 여럿이다.

법인 식·음료→브랜드로 이어져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해 서촌으로 불리는 종로구 통의동·필운동 일대는 오래된 맛집과 작은 카페들, 갤러리와 한복점 등이 자리해 인근 주민과 직장인, 관광객 수요를 일부 받아내던 조용한 동네였다. 건축 제한으로 높은 건물이 없고, 한옥 등 오래된 가옥 사이사이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해 한국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독특한 정취를 자아냈다. 2010년대를 전후해 감각적인 카페와 베이커리 등 식음 업장이 들어서면서 인근 효자로 산책로와 함께 걷기 좋은 동네로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그래픽 마민아 디자이너

서촌의 본격적 변화가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필운대로와 경복궁 돌담길(효자로)을 따라 새 카페가 속속 들어섰는데, 상당수가 다른 동네서 이미 이름을 알린 곳이다. 성수동에서 시작한 ‘카멜 커피’는 지난해 3월 옛 통의동 우체국 건물에 서촌점을 열었다. 녹사평에서 출발해 한남과 성수를 거친 카페 ‘BNHR’은 네 번째 자리로 서촌을 골랐다. 올해는 용산의 ‘올딧세’가 2호점을, 연희동과 신사동에서 이름을 알린 ‘매뉴팩트’가 서촌점을 냈다. 한남동의 ‘33아파트먼트’도 서촌 한옥으로 옮겨 왔다.

리테일 업계에서는 상권이 개인 F&B(식품·음료) → 법인 F&B → 패션 리테일 → 대기업·글로벌 브랜드 순으로 성숙한다고 본다. 법인 F&B와 패션 리테일이 속속 새롭게 문을 열고 있는 서촌이 이 공식을 순서대로 밟고 있는 셈이다. 독립 카페가 길을 닦은 골목에 유명 카페가 들어서고, 그 뒤를 브랜드가 잇는 모양새다.

지난 2023년 문을 연 글로벌 뷰티 브랜드 이솝 서촌점 전경. 사진 이솝 공식 홈페이지

들어서는 브랜드에도 순서가 있었다. 남신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리테일 임차자문팀 이사는 “서촌에 초반에 자리를 잘 잡은 ‘그랑핸드’ 같은 향 브랜드가 있었고, 이후 감각적인 브랜드들이 모여들면서 특유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뷰티 브랜드 ‘이솝’이 뒤를 이어 3년 전 들어왔고, 향수 브랜드 ‘르 라보’가 올해 문을 열었다. 남 이사는 “흔히 말하는 감도 높은 브랜드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에 합류하려는 패션 브랜드들이 최근 1~2년 사이 서촌에 대해 문의하는 빈도가 늘었다”며 “아직은 유동 인구가 본격적인 쇼핑 지구만큼 많은 수준은 아니지만, 산책하다 화장품을 사고 옷 가게에도 들어가 보는 등 매출은 조금씩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닝’은 새로운 재료, 명품 브랜드도 주목

감각적 브랜드가 들어서면서 조금씩 존재감을 키워오던 서촌이 개발의 속도감을 갖게 된 데에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러닝 붐’이 한몫했다. 길이 그대로 러닝 코스가 되면서 대형 스포츠 브랜드가 상권에 불을 붙였다. 요즘은 매장이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를 경험하고 사람을 모으는 하나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러너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서촌은 브랜드에 더없이 좋은 무대가 됐다.

지난 4월 서촌 자하문로에 문을 연 '살로몬 트레일 런 서울' 매장 전경. 유지연 기자

김용우 CBRE코리아 리테일 총괄 상무는 “서촌은 인왕산과 북악산, 청와대와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지형적 특성상 러닝 크루와 아웃도어 커뮤니티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이라며 “브랜드들이 단순 판매 매장이 아닌, 브랜드 경험과 커뮤니티를 결합한 플래그십 형태로 서촌을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도 서촌 흥행의 한 축이다. 경복궁 돌담길 맞은편의 카페나 식당을 가보면 손님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일 정도로 글로벌 수요가 높다. 최근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가 서촌 카멜 커피와 협업 팝업을 열자 이른 아침부터 오픈런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백화점 명품관이나 청담동이 아니라 경복궁 성벽을 마주한 서촌의 로컬 카페를 협업의 무대로 골랐다는 점 자체가 상권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촌만의 ‘밀도’ 지켜가야

낮은 건물, 오밀조밀한 골목길, 오래된 한옥 등 서촌만의 분위기는 요즘 브랜드가 좋아하는 이야깃거리다. 9월 서촌에 문을 연 패션 브랜드 코오롱FnC ‘아카이브 앱크’는 “‘시간이 흐를수록 축적되는 거대한 아카이브’라는 브랜드 콘셉트가 여러 시대의 이야기와 감성이 차곡차곡 쌓여 온 서촌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졌다”고 출점 이유를 설명했다. 아디다스도 서촌 매장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서촌의 감성을 재해석한 공간”으로 꾸미고, 서촌만의 그래픽으로 티셔츠와 신발을 꾸밀 수 있게 했다. 화려한 연출 대신 동네의 시간을 빌려 브랜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다.

지난 9월 서촌 필운대로 인근에 문을 연 패션 브랜드 아카이브 앱크 전경. 사진 코오롱FnC

다만 낮고 작은 건물은 기회이자 한계다. 성수·도산·한남은 이미 임대료와 매매가가 급등한 데다 대형 필지 중심이라 진입 부담이 크다. 반면 서촌은 소규모 필지와 중소형 건물이 밀집해 상대적으로 자금 부담이 낮고,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써서 브랜드 정체성을 보여주기에 좋다. 임차를 넘어 건물을 직접 사들여 쇼룸이나 거점으로 쓰려는 브랜드가 늘고 있는 이유다. 물론 대형 매장을 원하는 브랜드에는 문턱이 된다.

흥행 상권이 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우려도 나온다. 오래된 식당이 문을 닫은 자리에 러닝화 쇼룸이, 독립 서점이 떠난 공간에 팝업 대관 공간이 들어섰다. 인근 공인중개소에 따르면 효자로 돌담길 인상 폭이 높은 곳을 기준으로 지난 1년 사이 월 임대료가 15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매매 평단가도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두 배로 올랐다. 점점 매출이 아니라 마케팅비로 감당하는 길이 되면서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가게는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업계는 서촌이 성수처럼 신흥 대형 상권이 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 준공업지역이라 비교적 높은 용적률과 복합 개발이 가능했던 성수와 달리 서촌 일대는 일반주거지역인 데다, 고도제한·문화재 보호구역 등의 규제가 적용된다. 김용우 상무는 “서촌은 성수동처럼 외형적인 면적과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메가 상권이 되기보다는, 고유의 물리적 필지를 기반으로 밀도와 질적 깊이를 더해가는 ‘스페셜티 하이스트리트(특화 상권)’로 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b.트렌드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이슈를 건져 올립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하고, 시대와 호흡해 성장하는 브랜드와 기업을 조명합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비크닉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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