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Arm이 창사 35년 만에 설계도를 넘어 직접 구운 반도체 칩을 판매하며 인텔과 AMD가 장악해온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 선전포고를 던졌다.
Arm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rm 에브리웨어’ 행사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용 CPU인 ‘Arm AGI CPU’를 전격 공개했다. 그동안 애플, 엔비디아, 삼성전자 등 전 세계 기업에 반도체 설계도(IP)를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던 사업 모델에서 탈피해, 이제는 완성된 칩을 직접 팔아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는 “오늘은 Arm 연산 플랫폼의 다음 단계이자 우리 회사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요리법’ 대신 ‘도시락’ 직접 파는 Arm…왜 지금인가?
Arm의 이번 행보는 요리사가 식당에 '레시피'만 팔다가, 이제는 주방을 차려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Arm은 반도체 업계에서 '중립국'으로 불려왔다. 그동안 설계도만 팔아왔기 때문인데, 오랜 불문율을 깬 이유는 최근 급부상한 ‘AI 에이전트’ 시장 때문이다. AI 에이전트는 사람이 일일이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기차표를 예매하거나 주식을 주문하는 등 비서처럼 행동하는 지능형 AI다. 이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추론'의 시대가 오면서 감독(CPU)의 능력이 훨씬 중요해졌다. AI 에이전트가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려면 수많은 명령을 빠르고 정확하게 조율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CPU의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인텔·AMD 주도 ‘x86’ 진영에 균열…메타·오픈AI 등 우군 확보
Arm의 자체 칩 출시는 기존 CPU 시장의 절대 강자인 인텔과 AMD에 대형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추정된다. Arm은 자사의 AGI CPU가 기존 x86 방식의 플랫폼보다 랙(서버 수납함)당 2배 이상의 성능을 낸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만 TSMC의 3㎚ 공정으로 제작되어 전력 효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 강점이다.
이미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메타(Meta)가 첫 번째 대형 고객사이자 공동 개발 파트너로 참여했으며, 오픈AI, 클라우드플레어 등 글로벌 빅테크들도 도입을 예고했다. 국내에서는 SK텔레콤과 리벨리온이 고객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Arm의 생태계 확장에 힘을 보탰다.
하스 CEO는 이러한 수요에 힘입어 향후 5년 내 매출이 현재의 약 5배인 250억달러(약 37.7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공격적인 전망치를 제시했다.
Arm의 변신은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반도체 시장의 '설계-제조-판매'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35년간 지켜온 고객사와의 비경쟁 원칙을 깬 것은 그만큼 데이터센터 인프라 시장의 수익성이 막대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인텔과 AMD 등 기존 강자들이 구축해온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벽을 Arm이 얼마나 빠르게 넘어서느냐가 향후 반도체 패권 전쟁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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