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선거와 바둑, 그리고 한 수의 무게 [나의 바둑연대기]

6.3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철만 되면 거리마다 현수막이 걸리고, 후보자들은 저마다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한다. 시민들은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앞으로 4년의 지역 행정이 결정된다. 나는 선거를 볼 때마다 바둑이 떠오른다.

선거와 바둑, 그리고 한 수의 무게 [나의 바둑연대기]

돌 색 아닌 ‘수’가 중요한 바둑

민주주의도 정치도 마찬가지

6.3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철만 되면 거리마다 현수막이 걸리고, 후보자들은 저마다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한다. 시민들은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앞으로 4년의 지역 행정이 결정된다. 나는 선거를 볼 때마다 바둑이 떠오른다. 바둑판 위의 한 수와 투표용지 위의 표식은 참 많이 닮았다. 둘 다 작지만, 전체 판세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초보자들은 흔히 한 수를 가볍게 둔다. 이곳에 한 점, 저곳에 한 점. 당장은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국이 중반으로 접어들면 그때 둔 돌 하나가 약점이 되어 돌아온다. 결국 승패는 화려한 묘수가 아니라 초반 포석 단계에 놓은 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내 한 표쯤이야.” 이런 생각으로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바로 그 한 표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한 사람의 무관심이 모이면 정치가 흔들리고, 한 사람의 참여가 모이면 사회가 바뀐다. 바둑에서 돌들이 모여 세력을 이루듯 시민들의 한 표도 결국 시대의 흐름을 만든다.

바둑에는 ‘착수무회(着手無悔)’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한 번 둔 돌은 다시 거둘 수 없다는 뜻이고 의역하면 한 번 둔 수를 후회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충분히 생각하고 두었다면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투표가 끝난 뒤에는 다시 투표용지를 바꿀 수 없다. 당선된 사람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표를 회수할 수도 없다. 그래서 선거 전의 고민이 중요하다. 후보의 말보다 행동을 보고, 공약보다 실천을 살펴야 한다.

프로 기사들은 돌을 놓기 전에 오랫동안 생각한다. 그 한 수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계산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의 이익뿐 아니라 열 수, 스무 수 뒤의 모습까지 내다본다.

반면 초보자는 눈앞의 몇 집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결국 큰 그림을 놓친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 선거 때마다 우리는 당장의 이익과 감정에 흔들리기 쉽다. 그러나 지역의 미래는 훨씬 긴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도로 하나, 학교 하나, 문화시설 하나가 수십 년 동안 도시의 모습을 바꾼다.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은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다. 시민이 참여하지 않는 공간은 결국 누군가의 몫이 된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결과에 대한 영향력도 잃게 된다. 바둑판의 요처를 비워두면 상대가 차지하듯 민주주의 빈자리는 결국 다른 누군가가 채운다.

재미있는 점은 바둑의 승부가 단순히 공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강한 기사일수록 상대의 입장을 생각한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를 두고 싶은지 읽어낸다. 상대를 이해할수록 좋은 수가 나온다. 민주주의 역시 다르지 않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만 본다면 사회는 끝없는 갈등 속으로 빠져든다. 바둑에서 흑과 백은 서로 싸우지만 같은 판 위에서 공존한다. 상대 돌이 있어야 바둑이 성립하듯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야 민주주의도 건강해진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편을 가르는 경향이 있다. 내 편이면 무조건 옳고 상대편이면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둑판에서는 흑돌도 필요하고 백돌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색의 돌이냐가 아니라 어떤 수를 두느냐다. 정당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품격이고,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바둑이 돌의 색깔이 아니라 내용으로 승부하듯 정치도 결국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것이 한 수의 무게이고, 한 표의 무게다.

/조용성 ㈔진주스포츠클럽 바둑지도자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