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 목사의 ‘노자와 예수의 만남’(도서출판 리즈앤북)은 만날 수 없었던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 책이다. 한 사람은 2,500여 년 전 중국의 혼란한 세상을 떠나며 길 위에 섰던 노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보다 약 500년 뒤 유대 땅에서 33년을 살고 십자가에서 생을 마친 예수다.
▲ 노자와 예수
서로 다른 시대, 언어, 문화와 사상의 세계에 살았던 두 사람을 허태수 저자는 상상의 자리에 불러 앉힌다. 그리고 묻는다. 만일 노자와 예수가 한자리에서 마주 앉아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바라본다면,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건넬까.
책의 첫 장면에서 노자는 흐르는 물을 가리킨다. 물은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른다. 서두르지 않지만 결국 먼 곳에 닿고, 자신을 주장하지 않지만, 만물을 이롭게 한다. 예수는 들에 핀 백합을 이야기한다. 백합은 수고하지도, 길쌈하지도 않지만 아름답게 피어난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하루를 다 써버리지만,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과 백합. 하나는 동양의 오래된 자연철학에서, 다른 하나는 복음서의 비유에서 나온 이미지지만 두 이야기는 묘하게 같은 곳을 향한다.
인간은 왜 이렇게 애쓰는가. 왜 이미 주어진 삶보다 아직 갖지 못한 것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가. 허태수의 ‘노자와 예수의 만남’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40여 년 동안 목회자로 살아온 저자는 은퇴 후 농사를 지으며 ‘도덕경’을 다시 읽었다.
젊은 시절 읽었던 책을 세월을 살아낸 뒤 다시 펼쳤을 때 문장은 같았지만, 다가오는 의미는 달랐다. 예전에는 지식으로 읽었던 문장이 이제는 삶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저자의 마음에 노자와 예수를 함께 앉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이 책은 시작되었다.
이 책의 미덕은 두 사람을 억지로 하나의 사상으로 만들지 않는 데 있다. 노자의 도(道)와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서로 다른 역사와 신앙의 맥락을 갖는다. 무위(無爲)와 믿음, 도와 하나님을 단순히 같은 개념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저자 역시 그 차이를 알고 있다.
다만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면서도 두 사람이 함께 가리키는 방향이 있다는 데 주목한다. 낮아짐과 비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소유보다 존재를 앞세우는 삶, 사랑과 용서, 경쟁과 지배보다 평화와 공존을 선택하는 태도다.
특히 ‘유위’에 대한 노자의 성찰과 예수의 가르침은 오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배워왔다. 더 좋은 학교, 더 나은 직장, 더 높은 연봉, 더 큰 집, 더 높은 자리. 멈추면 뒤처지고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믿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더 아픈 질문이 뒤따른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는가. 노자는 ‘족함을 아는 것이 부유함’이라고 말한다. 예수는 곳간을 더 크게 짓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더 많은 곡식을 쌓아두고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기겠다고 생각한 그날 밤, 그의 생명이 끝난다. 곳간은 커졌지만 삶은 더 길어지지 않았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관계를 잃고, 미래를 준비하느라 정작 오늘의 삶을 놓친다. 노자와 예수의 오래된 이야기가 오늘도 낯설지 않은 이유다. 책은 이러한 질문을 개인의 삶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는 사랑과 용서, 배신과 공동체를 묻고, 돈과 일에서는 부와 가난, 경쟁과 권력을 돌아본다. AI 시대에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지 묻고, 사회의 장에서는 정의와 전쟁, 교육과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에는 침묵과 기도, 늙음과 죽음을 지나 ‘결국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가장 오래된 질문에 닿는다. 그 가운데 오늘의 독자에게 특히 깊이 다가오는 것은 ‘멈춤’에 관한 성찰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리고 있다. 정보는 넘치고 말은 많으며 하루는 늘 부족하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 있으면 불안하고,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시간은 낭비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노자는 비움과 멈춤을 말하고, 예수는 광야와 산으로 물러나 홀로 기도했다. 말하기 전에 침묵했고, 사람들 속에 있기 전에 홀로 있는 시간을 가졌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잠시 멈추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노자는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예수 역시 수많은 말씀을 남겼지만 침묵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말은 사람을 향한 문이지만 침묵은 자신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문일 수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알고 있지만 정작 침묵하는 법은 잊었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는 배우면서 무엇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자와 예수의 만남은 우리 시대의 소음 속에 놓인 하나의 조용한 의자와 같다. 잠시 앉아 있으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자리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상상의 대화를 원전에 단단히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두 사람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시키지 않는다. 노자의 말은 ‘도덕경’으로, 예수의 말은 복음서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상상한 것은 만남의 형식일 뿐, 그 안의 사상은 원전에서 길어 올렸다.
그래서 독자는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원전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책이 독자에게 정답을 건네기보다 오래된 문장으로 되돌려 보내는 까닭이다. 물론 노자와 예수는 같지 않다. 오히려 같지 않기 때문에 이 만남은 의미가 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때로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때로는 다른 길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 차이를 억지로 봉합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판단의 몫을 남긴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도 있고, 두 전통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정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다시 묻는 일이다. 책을 덮고 나면 처음 등장했던 물과 백합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백합은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도 피어난다.
어쩌면 인간의 삶도 그렇게 조금은 자연스러워질 필요가 있는지 모른다. 너무 많이 가지려 하지 않고, 너무 높이 오르려 하지 않고, 너무 빨리 가려 하지 않는 삶.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고, 때로는 손에 쥔 것을 내려놓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주는 삶. 허태수 목사의 이 책은 거대한 철학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게 하는 책이다.
바쁘게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문득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한다. 청년에게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지를 묻고, 중년에게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묻고, 노년에게는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모든 질문 끝에서 다시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인간다움은 거창하지 않을 것이다. 낮은 곳으로 흐를 수 있는 마음, 남보다 앞서기보다 뒤처진 이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 더 가지기보다 족함을 알 수 있는 마음, 말하기보다 침묵할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끝내 자신을 조금 비워 다른 존재가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는 마음일 것이다.
노자와 예수가 실제로 만났다면 어떤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을까. 노자가 물을 이야기하고 예수가 백합을 이야기했을 때, 두 사람은 어쩌면 잠시 말을 멈추고 서로 미소 지었을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사람이지만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쓰는가. 그리고 이제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책장을 덮은 뒤에도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바쁜 하루의 어느 순간, 문득 다시 떠오른다. 창밖으로 내리는 빗물을 바라볼 때, 길가에 핀 작은 꽃을 만날 때, 오래 걸어온 길에서 잠시 숨을 고를 때. 그때 노자의 물과 예수의 백합이 조용히 말을 걸어올지 모른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말없이 피어나는 백합처럼.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더 많이 이루는 일이 아니라, 마침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노자와 예수의 만남’은 바로 그 돌아감의 길목에서 우리에게 잠시 멈추어 서라고 권한다.
그리고 두 스승의 오래된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한 가지를 다시 듣게 한다. 인간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존재라는 사실을.
글:김수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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