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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서촌다움'을 탐낸 브랜드들…서촌 '소호의 길' 걷나

미국 뉴욕 맨해튼의 소호. 글로벌 패션·명품 매장이 즐비한 지금과 달리 1950년대 말에는 낡은 공장과 창고가 모인 거리였다. 1960년대 제조업체가 떠난 빈 건물에 예술가들이 찾아왔다. 임대료가 싸고 천장이 높은 데다 햇빛이 잘 들어 작업실로 쓰기 좋았기 때문이다.

15일 서울 창성동에 있는 ‘아디다스 퍼포먼스 서촌’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솔 기자

미국 뉴욕 맨해튼의 소호. 글로벌 패션·명품 매장이 즐비한 지금과 달리 1950년대 말에는 낡은 공장과 창고가 모인 거리였다. 1960년대 제조업체가 떠난 빈 건물에 예술가들이 찾아왔다. 임대료가 싸고 천장이 높은 데다 햇빛이 잘 들어 작업실로 쓰기 좋았기 때문이다. 갤러리가 하나둘 문을 열자 관광객과 자본이 뒤따랐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자 1970년대 5000명에 달했던 예술가 상당수는 자신들이 살려낸 동네에서 밀려났다. 문화가 땅값을 올리고, 오른 땅값이 문화를 만든 사람을 내보낸 ‘소호 효과’였다.

서울에도 소호의 길을 걷는 동네가 있다. 서촌이다. 궁궐과 한옥이 간직한 과거, 독립서점과 노포가 만든 현재, 젊은 창업자의 작은 가게가 실험하는 미래가 한 골목에 공존한다. 넓게 뻗은 자하문로에서 몇 걸음만 들어가면 낮은 골목과 오래된 주택이 나타나고, 고개를 들면 인왕산의 숲이 보인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걸음을 늦추고 자신만의 취향과 감성을 찾았다. 그런 ‘서촌다움’을 최근 스포츠 브랜드가 잇달아 빌려 쓰기 시작했다.

◇스포츠 브랜드가 빌려 쓰는 ‘서촌다움’

지난 10일 서울 창성동. 낮은 주택이 이어진 골목 모퉁이를 돌자 검은색 삼선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올해 2월 문을 연 러닝 특화 매장 ‘아디다스 퍼포먼스 서촌’이다. 목재로 꾸민 매장에서는 러닝화를 빌려 신고 경복궁 일대를 달려볼 수 있다.

통의동으로 걸음을 옮기자 더 많은 스포츠 브랜드 간판이 차례로 나타났다. 프로스펙스는 이달 7일 기존 건물의 구조를 살린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었다. 유리 외벽 너머 골목 풍경도 매장의 일부가 됐다. 조금 더 걸으면 살로몬의 트레일러닝 거점과 10일 문을 연 러닝화 브랜드 마운트투코스트의 쇼룸이 나온다.

브랜드가 탐낸 서촌다움은 빠르게 비싸지고 있다. 지난해 북·서촌 공공 한옥 방문객은 54만 명에 달했다. 2024년 3분기부터 올 2분기까지 서촌 중대형 상가의 ㎡당 월 임대료는 2600원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평균 상승액(1900원)보다 37% 높다. 전국 평균(200원)의 13배다.

높은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브랜드와 달리 매장에서 번 돈으로 월세를 내야 하는 독립서점과 공방, 작은 음식점은 임대료가 오를수록 버티기 어려워진다. 한강 작가가 통의동에서 운영한 독립서점 ‘책방오늘’이 대표적인 예다. 책방오늘은 올해 7월 문을 닫았다. 서점이 입주한 건물이 팔려 이 건물 세입자가 모두 쫓겨났다.

◇서울의 얼굴 지우는 ‘문화적 자살’

서촌은 2010년 전후 이미 한 차례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다. 서울시는 2016년 자하문로·사직로변을 제외한 지역의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카페, 제과점의 신규 입점을 제한했지만 스포츠용품점과 패션 매장 같은 소매점은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새로운 브랜드의 진입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기존 건물의 구조를 살린 매장은 낡은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고 관광객과 소비자를 끌어들인다. 문제는 서촌의 핵심 콘텐츠인 오래된 식당과 서점, 공방이 빠진 자리에 기업이 기획한 인위적인 ‘서촌 콘셉트’의 쇼핑 공간만 남게 될 것이란 우려다.

도쿄가 야나카와 네즈의 좁은 골목과 목조주택, 오래된 소규모 상점을 ‘옛 도쿄’의 매력으로 내세우는 것처럼 관광도시의 경쟁력은 지역마다 깃든 생활의 역사와 풍경에서 나온다. 서울이 동네마다 비슷한 브랜드 매장으로 채워지면 외국인에게 보여줄 고유한 얼굴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지역의 문화를 팔아 사람을 불러 모은 끝에 그 문화를 조성한 사람과 공간이 삭제되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자살’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어떤 가게를 남기고 어떤 매장을 들일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상업화의 비극은 상권이 실패할 때만 벌어지지 않는다. 너무 성공한 나머지 사람들이 처음 그곳을 좋아한 이유를 상실하는 것도 비극이다.

강윤지 기자 yunto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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