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투자 비중 두자릿수로 끌어올리며 신약개발에 올인
약가 개편이 촉발한 R&D 생존 전략…자체 플랫폼 구축·AI 활용 등 다변화
이미지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메디칼업저버 문윤희 기자] 국내 상위제약을 중심으로 연구투자(R&D) 비중을 확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제네릭 중심의 매출 구조를 유지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려진 35개 코스피 제약기업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2025년 평균 R&D 비율은 10.20%를 나타냈다. 이 중 1000억원 이상을 R&D에 투자한 기업은
유한양행
(2432억원),
한미약품
(2290억원),
대웅제약
(2199억원),
종근당
(1858억원), GC
녹십자
(1718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1558억원), 동아에스티(1175억원), JW중외제약(1079억원) 등 8개사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에서는 대웅제약이 15.8%로 가장 높았고, 한미약품(14.8%), 유한양행(11.1%), 종근당(11.0%) 순을 보였다.
이 수치가 더욱 눈에 띄는 이유는 배경 때문이다. 종근당은 영업이익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R&D 투자를 전년 대비 18.0% 늘렸다. 단기 실적보다 장기 파이프라인을 택한 셈이다. 한미약품 역시 R&D 비용을 2024년 2098억원에서 2025년 2290억원으로 확대하며 투자 비중을 14%에서 14.8%로 끌어올렸다. 회사 운영을 둘러싼 갈등에도 제약사 본연의 신약 개발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반면 투자 규모를 절대액 기준으로 줄인 기업도 있다. 유한양행은 전년 대비 264억원 줄어든 2424억원을 투입했고, 매출 대비 비중도 13%에서 11%대로 낮아졌다. 이는 렉라자 기술료 유입으로 매출이 크게 늘어난 결과이기도 하다.
한미약품, 비만·항암 '투 트랙'으로 파이프라인 확장
상위 제약사 중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을 가장 꾸준히 높게 유지하는 곳은 한미약품이다. 2025년 기준 14.8%, 금액으로 2290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입했다. 현재 한미약품 R&D의 최전선에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가 있다. 임상 3상에서 위약 대비 우월한 체중 감소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한 이 약물은 식약처 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허가가 승인될 경우 국내 기업이 개발한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로는 첫 상업화 사례가 된다.
한미약품은 당뇨병 적응증 확대를 위한 3상 임상계획 승인도 얻어낸 상태다. 한미약품은 GLP-1·GIP·글루카곤을 동시에 겨냥하는 차세대 삼중작용제 HM15275, 근손실을 최소화하는 신개념 비만 치료제 HM17321, 표적항암제 파이프라인 확장까지 외연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2030년 매출 2조9000억원이라는 중장기 목표의 근거가 바로 이 파이프라인들이다.
대웅제약은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에서 상위 제약사 중 1위(15.8%)를 유지하고 있다. 절대 금액은 전년 대비 소폭 줄었지만, 매출에서 연구개발이 차지하는 밀도는 업계 최고 수준이다.
주목받는 파이프라인은 특발성 폐섬유증(IPF) 치료제 후보물질 베르시포로신(DWN12088)이다. PRS(Prolyl-tRNA Synthetase) 효소를 선택적으로 억제해 콜라겐 합성을 직접 차단하는 기전의 경구용 신약으로, FDA로부터 희귀의약품 및 신속심사(패스트 트랙) 지정을 받은 물질이다.
미국과 한국에서 글로벌 임상 2상이 진행 중이며, 독립적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IDMC)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안전성이 확인됐다.
대웅제약은 펙수클루(성분명 펙수프라잔), 엔블로(이나보글리플로진)로 자체 신약 개발의 첫 번째 챕터를 썼다. 베르시포로신은 세계 최초 신약을 목표로 하는 다음 챕터다. AI 신약개발 자체 시스템 다비드(DAVID)·데이지(DAISY) 구축도 개발 효율을 높이는 핵심 도구로 활용 중이다.
종근당은 지난해 R&D 비중이 처음으로 11%를 넘어섰다. R&D 투자 금액도 전년 1574억원에서 1858억원으로 284억원이 늘었다. 상위 제약사 중 증가폭이 가장 컸다.
종근당의 현재 주력 파이프라인은 콜레스테롤에스테르 전달 단백질(CETP) 저해제 CKD-508이다. 여기에 ADC(항체약물접합체), 유전자치료제 등 차세대 기술 플랫폼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영업이익 하락 압박 속에서도 R&D 예산을 18% 가까이 늘리며 연구 투자에 확신을 수치로 증명했다.
유한양행, '넥스트 렉라자' 찾기···오픈이노베이션 고도화
유한양행의 R&D 전략은 오픈 이노베이션의 고도화다. 스타트업이나 바이오벤처에서 초기 유망 물질을 도입해 전임상·초기 임상 단계에서 가치를 높인 뒤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수출하는 방식을 정교하게 진화시키고 있다. 표적단백질분해(TPD) 개발 역량을 보유한 사이러스테라퓨틱스에 추가 투자를 단행하고, 경구형 비만·당뇨 파이프라인 보유 기업에도 지분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GC녹십자는 2025년 R&D 비용이 소폭 감소했지만, 투자 방향성은 더욱 선명해졌다.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혈우병 치료제 알리글로 매출 1500억원을 달성한 경험을 발판으로 연구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한미약품과 공동 개발 중인 파브리병 치료제 GC1134A, 산필리포증후군 치료제 등 희귀질환 글로벌 임상이 핵심 파이프라인이다. 경쟁이 낮고 미충족 수요가 높은 희귀질환은 규모가 크지 않아도 글로벌 시장에서 유의미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분야다.
상위제약기업을 중심으로 연구투자 비중이 확대되는 근원에 대해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기업의 성장동력은 신약에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자사의 경우 신규 모달리티 창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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