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연간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내놓으라며 5월 총파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측이 제시한 보상안을 거부하고 나선 행동이다. 파업은 삼성전자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오랜 부진을 딛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수출 한국호(號)의 엔진이 꺼지는 사태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미중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밀려오는 엄중한 시기라는 점이 우려를 더한다. 뉴스웍스는 삼성전자 노사의 주장과 간극을 해부하고, 총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대한민국 경제와 글로벌 반도체 질서에 미칠 파장을 5회 시리즈로 심층 점검한다.
최승호 초기업 노조 위원장이 17일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채윤정 기자)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삼성전자 노사가 '협정근로자 지정'과 '블랙리스트' 두 쟁점을 놓고 정면충돌하고 있다. 사 측은 법원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한편, 제조·기술 인력을 파업에서 제외하는 '협정근로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비조합원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직원이 초기업노조 조합원으로 드러나면서 노조를 향한 비판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사 측은 노동조합법상 안전상의 이유로 파업에 참여할 수 없는 협정근로자 범위에 제조·기술 인력을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협정근로자 범위는 노사 간 단체협약(협정)을 통해 정하도록 돼 있다.
반면 노조는 "제조·기술 인력은 단체협약상 협정근로자가 아니라고 이미 도장을 찍은 부분"이라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협정근로자 포함 여부는 파업 참여권의 범위를 건드리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이번 논란의 결론이 향후 노사 협상의 중요한 변수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노조원들이 17일 개최한 과반노조 공식 선언 기자회견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채윤정 기자)
◆제조·기술 인력 없으면 생산 차질 불가피…협정근로자 지정 가능성도
노동조합법 제38조 2항은 장비 손상 및 원료·제품 변질 방지를 위한 작업은 중단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안전 관련 직종이나 장비 보전 등에 해당하는 인력을 파업에 참여할 수 없는 협정근로자로 지정하도록 한 근거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는 화학 물질을 많이 다루는데, 관련 인력이 (파업으로) 현장에 없는 상황에서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노조 측의 입장은 다르다. 최승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제조·기술 인력은 단체협약상 협정근로자가 아니다. 이들의 파업 참여는 단체협약 기준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기·가스 부문의 안전을 위해 회사가 비조합원 명단을 요청하면 노조가 명단을 공유할 것"이라며 "회사 요청에 적극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구분하기 위해 조만간 노조원의 명단과 월급을 공개하는 '체크오프' 활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이번 총파업은 생산 차질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법적으로 정당하게 보장받은 쟁의권을 활용하는 것"이라며 "제조·기술 인력의 협정근로자 지정은 2027년 협의 사항에서 다시 논의하라"고 사 측에 요구했다. 이어 "가처분 신청 심문 기일이 잡힌 만큼, 이를 법정에서 명확히 전달하고 법적 판단을 받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사 측이 파업을 앞둔 시점에서 파업 참여 가능자를 줄이기 위해 이 같은 요구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제조·기술 인력이 5만명에 달하는 만큼, 이들이 빠지면 파업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논리다.
반면 사 측은 제조·기술 인력이 그동안 단체협약상 협정근로자로 지정돼 있지는 않았지만, 파업 시 반도체 라인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위해 이 부분의 수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사 측은 "제조·기술 인력이 업무에서 빠지면 매일 1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파업 시 웨이퍼 투입 과정에서 설비 고장이 생길 수 있는데, 이는 협력사가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파업 중에도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서는 기술·제조 인력의 투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인터락(설비 작동을 특정 조건에서 방지하거나 중단하는 장치·시스템)이 걸리거나 품질 불량이 발생할 경우 이를 판단하는 주체가 엔지니어인데, 설비 엔지니어가 빠지면 조치를 취할 사람이 없어 생산라인이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에 원활한 생산을 위해서는 기술·제조 인력이 파업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제조·기술 인력이 '협정근로자' 범위에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원 판단을 받게 될 협정근로자 논란은 향후 노사 협상력의 균형을 좌우할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사진제공=삼성전자)
◆노조 "비조합원 여부 확인 과정"…블랙리스트 파장 확산
비조합원 '블랙리스트' 작성 논란도 삼성전자 노사 간 쟁점으로 떠올랐다. 삼성전자가 임직원 정보를 무단 수집한 직원을 수사기관에 고소한 가운데, 초기업노조가 "조합원이 이 사건에 관련돼 있다"고 사실상 인정하면서 노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한 조합원이 개인정보를 활용해 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명단으로 정리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직원 A씨는 사내 시스템 2곳을 통해 약 1시간 동안 2만회 이상 임직원 정보를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집된 정보에는 임직원의 이름·소속 부서·인트라넷 ID 등이 포함돼 있다. A씨가 자동 반복 프로그램 '매크로'를 사용해 대규모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확보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최 위원장은 이 사건에 대해 "노조원들이 상호 비조합원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오히려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회사 측에 문제가 있다. 사 측은 이를 협상 전략으로 활용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발언이 초기업노조의 조직적 관여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사기관이 초기업노조와 조합원의 행위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개인정보보호법상 노조 가입 여부는 개인의 신념과 정치적 성향을 나타내는 정보로, 엄격히 관리해야 할 '민감 정보'로 분류된다. 당사자 동의 없이 이를 수집·명단화해 제3자에게 유포하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해석이다.
블랙리스트 작성과 파업 강행을 둘러싼 여론도 부정적이다. 삼성전자 주주토론방과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블랙리스트 만드는 삼성전자 노조 해체를 전 국민이 원한다", "노조 위에 직원과 주주, 회사가 있는 것인데 노조가 주인 행세를 하려 한다", "관련자들을 전부 해임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파업이라니 황금 같은 시간을 날릴 것이냐" 등의 비판 글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5일 60대 박모 씨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것도 이런 정서와 맞닿아 있다. 박 씨는 "때로는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며 "현재의 성과가 그대들만의 초과 능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물심양면 이어진 전 국민의 성원과 양보, 희생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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