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이 삼성전자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의장 인사말을 하고 있다.[출처=삼성전자]
[편집자주] 인공지능(AI)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전영현 체제’ 전환 이후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반성문'으로 시작된 위기 진단은 설계 경쟁력 강화와 조직문화 혁신으로 이어지며 체질 개선의 출발점이 됐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한 기술 경쟁력 회복과 장기 공급 계약(LTA) 확대 등은 시장 지배력 회복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TSMC와의 격차, 파운드리 수익성, AI 거품론 등 넘어야 할 과제도 여전히 적지 않다. 전영현 체제 2주년을 맞은 삼성 반도체의 전략과 성과, 남은 과제를 짚어본다.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매출액 133조, 영업이익 57조원의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50조원을 크게 웃도는 영업이익을 거두면서 전사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호실적의 배경으로는 전영현 부회장이 약 2년 전부터 추진해온 구조 개편의 성과가 본격화한 결과라는 평이 나온다. '반성문'에서 출발한 위기 진단은 설계 경쟁력 강화와 조직문화 혁신으로 이어졌고 궁극적으로 삼성 반도체의 체질 변화를 이끌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의 '전영현 체제'가 다음달 2주년을 맞는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4년 5월 미래사업기획단장이던 전영현 부회장을 DS 부문장으로 전격 투입하는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이는 7년 만의 반도체 부문 복귀이자 메모리사업부장까지 겸직하도록 한 이례적인 인사였다.
당시 삼성 반도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기술 리더십에 균열이 생긴 상황이었다. 특히 같은 해 3분기 잠정실적 발표 직후 전 부회장은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면서 고객·투자자 등에 고개를 숙였다.
삼성전자 수뇌부가 실적 발표와 관련해 별도 메시지를 낸 것은 처음으로 업계에선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수장으로서 대내외 위기론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했다.
전 부회장은 취임 직후 현장을 직접 점검하면서 삼성전자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전 부회장의 첫 번째 처방은 '설계'였다. 그는 HBM 경쟁력 저하의 원인을 단순 패키징이 아닌 '기초 체력'인 D램 설계에서 찾았다. 이미 양산 단계에 들어간 D램 회로를 전면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삼성전자 반도체 [출처=삼성전자]
◆'반성문'이 바꾼 방향…'전영현 체제'로 구조 개편
설계 변경은 수조원대 비용과 수년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 부회장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체질 개선에 방점을 찍었다. 동시에 차세대 공정 전환에도 속도를 냈다. 기존 공정 안정화 대신 한 세대 앞선 기술로 직행하는 전략을 택하면서 이른바 '추격'이 아닌 '격차 축소'에 집중했다는 평가다.
기술 못지않게 전 부회장이 주목한 것은 조직 문화였다. 전 후뵈장은 삼성 반도체의 경쟁력 저하 원인으로 '사일로(Silo·부서 이기주의) 구조'와 '보고 중심 조직'을 지목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C.O.R.E. 워크'다.
'C.O.R.E'는 조직간 시너지를 위해 소통하고(Communicate), 직급·직책과 무관한 치열한 토론으로 결론을 도출하며(Openly Discuss),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Reveal)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철저하게 실행한다는(Execute) 의미다. 부서 간 장벽을 낮추고 의사결정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특히 임원 중심 보고 체계를 축소하고 실무 엔지니어 중심 토론 문화를 복원하는 데 공을 들였다. 설계·제조·패키징 조직 간 유기적 협업을 강화하면서 HBM 개발 체계도 재정비했다.
이러한 체질 개선의 결과는 올해 1분기 성적표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1년 전 HBM3E 시장에서 경쟁사에 1년 가까이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삼성전자는 6세대 HBM4 개발에서 세계 최고 속도인 초당 11Gb를 가장 먼저 달성하면서 판도를 뒤집었다. 다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HBM 시장 주도권 회복과 파운드리 사업 수익성 개선, TSMC와의 격차 축소 등이다.
전 부회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반도체 시장은 AI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전례 없는 슈퍼사이클이 가시화되고 있다"면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예측이 어려운 지금 상황을 오히려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경쟁 우위를 공고히 하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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