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사이클 산업 특성 속 고정비化 우려와 투자 여력 위축 가능성
-대기업 성과급 ‘영업이익 N%’ 확산 시 보상 인플레이션·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전망
삼성전자 노조 투쟁 결의대회/연합뉴스
[뉴스로드] 성과급 제도를 둘러싼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단계로까지 번진 가운데,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 15% 고정 성과급 제도화’를 놓고 산업계 전반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회사 측이 제시한 ‘유연한 보상 체계’와 노조의 ‘고정 비율 제도화’가 정면충돌하면서, 이번 협상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과 국내 임금·보상 구조 전반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회사 측은 현행 성과인센티브(OPI) 제도를 유지하되, 실적이 좋을 때는 별도의 특별보상을 추가하는 구조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이 어려운 시기에는 기존 OPI만 지급하고, 호황기에는 초과 성과를 별도 인센티브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경영실적에 따라 총보상 규모를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에 방점을 찍은 설계다.
특히 메모리 사업부의 경우 경쟁사 대비 동등 이상 수준의 지급률을 보장하는 체계라는 점에서, 실질 지급액이 글로벌 경쟁사보다 낮지 않도록 설계됐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일정한 기준과 공식은 두되, 업황과 실적 변동을 제도 안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구조라는 평가다.
반면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의 15%를 고정 비율로 성과급에 배분하는 제도화’는 사실상 성과급을 고정비에 가깝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글로벌 테크 기업 가운데 영업이익의 특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성과급으로 지급하도록 명문화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반도체처럼 실적 변동성이 큰 사이클 산업에서 고정비 비중이 과도하게 커질 경우, 업황이 꺾이거나 적자 전환 시기에 경영 리스크가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수적인 반도체 산업에서 자본 운용의 유연성이 떨어지면 중장기 경쟁력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묶어두면, 불황기에 투자 여력이 줄어 미래 경쟁력 확보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성과급 구조는 국내 산업계 전반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해온 만큼, 이번 협상의 파급력은 반도체를 넘어 전 산업으로 확산될 공산이 크다. 노조 요구대로 ‘영업이익 15%’가 제도화될 경우, 다른 대기업과 IT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까지 ‘영업이익의 N%’를 둘러싼 보상 인플레이션 압박에 직면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최근 카카오(영업이익 10%), 삼성바이오로직스(20%), 현대차·LG유플러스(30%) 등에서 ‘영업이익의 몇 %를 성과급으로’라는 식의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비율 고정 제도를 공식화하면, 빠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다른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과 공공부문까지 영업이익 분배 요구가 확산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처럼 시장 영향력이 큰 기업이 성과급 고정 비율 모델을 도입할 경우, 재무여력과 업종 특성이 전혀 다른 기업들까지 이를 따라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면서 인건비 부담이 과도하게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는 기업 전반의 투자 여력 위축, 고용 불안, 비용 구조 경직화로 이어져 경기 하방기 충격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시장 측면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이 고정 비율 기반의 높은 성과급 체계를 구축하면,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중소·중견기업과 협력사의 보상 수준은 상대적으로 더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보상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되고, 우수 인력의 대기업 쏠림 현상도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협력사와 중소기업은 인력난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되고, 산업 생태계 전체의 균형과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우려다. 반도체·IT 대기업이 성과를 독식하고, 공급망 하단부 기업들은 인건비·원가 부담만 떠안는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자동으로 성과급으로 배분하는 경직된 모델이 아니라, 업황·투자 계획·재무 여력 등을 종합 반영하는 ‘유연한 제도 설계’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가 기존 OPI 제도를 유지하되 초과 성과분에 대해 특별포상을 더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이 같은 현실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방식은 성과 공유의 원칙과 기준은 명확히 하면서도, 반도체 산업 특유의 경기 변동성과 대규모 투자 수요를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노사 모두가 수용 가능한 수준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되, 기업이 위기 국면에서 생존과 투자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자는 취지다.
삼성전자는 기존 성과급(OPI) 제도에 대해서는 “노사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과정에서 노사가 어떤 접점을 찾느냐에 따라, 국내 대기업의 성과급 관행과 노동시장 구조, 나아가 반도체 산업의 중장기 경쟁력 지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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