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미래 시장, 베트남은 생산 거점…엇갈린 투자 축
삼성·SK·현대차·LG, 각기 다른 방식의 '脫중국 전략' 시도
현지 파트너십부터 공급망 장악까지 '미션의 무게'
인도·베트남 경제사절단 동행을 위한 출국 차 19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 도착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정훈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인도·베트남 순방에 동행한 이재용·최태원·정의선·구광모 회장 등 국내 4대 그룹 총수들은 같은 일정을 소화하지만, 각자의 수첩에 적힌 미션은 서로 다르다.
이번 순방은 각 총수들에게 단순한 경제사절단 참석을 넘어, 개별 그룹의 미래 전략이 걸린 현장 점검에 가깝다. 특히 그룹의 미래와 현재를 가를 인도와 베트남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다르다.
인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대신 가능성이 압도적인 시장이다. 10억 명 이상의 거대한 내수와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을 바탕으로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서 '다음 판'을 만들고 있다. 베트남은 이미 한국 기업들의 생산망이 촘촘히 자리 잡은 현실적인 공급망 거점이다.
4대 총수의 시선도 이 구도 위에 정확히 나뉜다. 인도는 '지금 들어가 선점해야 하는 시장', 베트남은 '이미 확보한 기반을 더 키워야 하는 기지'다. 같은 비행기에 올랐지만, 각자가 바라보는 목적지는 다르다. 이 차이가 바로 이번 순방의 본질이다.
4대 총수의 '미션 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번 순방에서 세 가지 키워드에 주목할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 생산기지의 고도화, 인도 시장 선점, 그리고 현지 파트너십의 확보다. 삼성전자에게 베트남은 단순한 조립 기지가 아니라 글로벌 생산 전략의 중심이다. 스마트폰 생산의 상당 부분이 이곳에서 이뤄지는 만큼, 단순 유지가 아니라 반도체·디스플레이까지 결합한 '고부가 생산기지'로의 전환이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인도에서는 완전히 다른 미션이 작동한다. 삼성전자는 이미 현지 스마트폰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했다. 남은 관건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반도체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다. 인도 시장에서 현지 대기업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특히 이번 순방에서 주목되는 장면은 이재용 회장과 인도 최대 기업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수장 무케시 암바니 회장 간 회동 여부다. 두 사람은 앞선 방한을 계기로 한 차례 만난 바 있다. 만약 이번 순방에서 재회가 성사된다면, 스마트폰 유통과 통신 인프라를 넘어 반도체까지 이어지는 협력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이재용 회장의 인도 미션이 단순 투자 검토를 넘어 '판을 바꾸는 파트너십'에 있는 이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미션 키워드는 '공급망 장악'이다. SK그룹은 완제품이 아니라 에너지, 화학, 배터리, 반도체 소재 등 산업의 기반을 쥐는 데 집중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LNG와 전력, 석유화학 중심의 인프라 투자를 통해 동남아 산업의 뿌리를 선점해 왔다. 이는 단순 사업이 아니라 향후 제조업 전반을 좌우할 ‘보이지 않는 권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인도에서는 이 흐름이 배터리와 소재로 이어진다.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공급망을 장악하면, 완성차 업체보다 더 강한 협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이 직접 나선 이번 행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판을 쥐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19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 도착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미션은 '전환'과 '확장'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인도 시장에서 이미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 상태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내연기관 중심의 경쟁력을 전기차로 어떻게 옮겨갈 것인가가 핵심 과제다. 이는 단순히 차량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배터리, 충전 인프라, 현지 파트너십까지 포함하는 생태계 전환이다. 베트남에서는 또 다른 미션이 진행된다. 아직 초기 단계인 시장을 선점해 동남아 전체로 확장할 교두보를 만드는 것이다. 정의선 회장의 수첩에는 인도에서의 '전환'과 동남아에서의 '확장'이라는 두 줄이 동시에 적혀 있는 셈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전략은 ‘투 트랙’이다. LG그룹은 베트남에서 가전과 디스플레이 생산기지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다. 그러나 진짜 미션은 인도에 있다.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서 이미 확보한 경쟁력을 발판으로, 전기차 배터리 사업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LG전자는 인도를 거점으로 하는 '글로벌 사우스'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막 열리기 시작한 인도에서 LG그룹이 배터리 공급망을 선점하면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구광모 회장의 이번 행보는 ‘지금의 수익’과 ‘미래의 성장’을 동시에 잡겠다는 계산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4대 그룹의 모든 미션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한다. 바로 인도와 베트남을 축으로 '중국 이후'를 준비하겠다는 공통된 목표다.
기회만큼의 리스크, 그럼에도 뚫어야 하는 이유
이번 순방에서 기대되는 경제적 성과는 분명하다. 각 기업의 투자 양해각서(MOU), 세제 혜택 협상, 인프라 프로젝트 등 가시적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 SK그룹의 에너지·배터리 사업,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확대, LG그룹의 배터리 진출 등이 대표적인 시나리오다.
그러나 변수도 적지 않다. 인도의 복잡한 규제와 행정 구조, 베트남의 인건비 상승, 미·중 갈등 그리고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미국-이란 전쟁 리스크 등 외부 환경은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투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어가느냐'다.
4대 총수에게 이번 순방은 단순한 외교 일정이 아니다. 총수들이 직접 움직이며 각자의 미션을 실행에 옮기는 현장이다. 이들의 선택은 개별 기업을 넘어 한국 산업의 방향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인도와 베트남이라는 두 축 위에서 각자의 수첩에 적힌 미션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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