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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삶이 다하는 날까지 연구하는 평생 연구자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거둔 그는 음성분석 전문가로도 유명세를 탔다. 그가 처음 연구한 분야는 영상인식이었다. 석박사 논문도 자동차에 눈을 달아서 자유롭게 달리는 자율운행...

삶이 다하는 날까지 연구하는 평생 연구자

[인생노트:조동욱 충북교육감 예비후보]

돌 무렵 소아마비로 장애…부모님의 지극정성으로 극복

공부·연구 매진해 AI·데이터 사이언스 분야 독보적 성과

음성분석으로 유명세…대학강단 떠난 현재도 연구 매진

조동욱 충북교육감 예비후보가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 ‘담쟁이의 국수이야기’에서 손님이 주문한 국수를 들고 있다. 오진영 기자

조동욱(66) 전 충북도립대 교수의 66년여 인생은 ‘역경’과 ‘극복’으로 함축된다.

서울의 한 유복한 가정의 6남매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그는 돌 무렵 소아마비를 앓아 소위 말하는 ‘앉은뱅이’가 됐다.

대학교를 다니던 20대까지 매년 겨울방학마다 계속된 수술과 엄청난 물리치료로 다소 부자연스럽더라도 보조기구 없이 걸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 하지만 장애를 비하하는 친구들의 놀림과 주변의 차가운 시선은 피해갈 수 없었다.

"제가 태어난 때는 정상인이 태어나도 나라에서 귀찮아하던 시절인데 장애인은 오죽했겠어요. 어떻게 보면 장애인은 사실 나라 밖 아이들이었어요. 수술과 치료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도 모두 부모님이 부담해야 했어요."

그의 초등학교 시절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놀림의 대상이자, 물리적인 폭력과 괴롭힘에도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채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이 같은 주위 환경에서 장애인이라는 틀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다행히 친구들의 놀림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점차 잦아들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는 주먹이 센 놈이 대장이었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부터는 공부를 잘하면 좀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장애가 성장의 엄청난 방해가 됐지만, 또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 것 같아요."

그가 장애를 극복하고 대학 강단에 서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헤쳐나올 수 있었던 힘은 부모님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40대에 낳은 늦둥이 막내아들, 그것이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비가 올 때마다 우산을 들고 학교 경비실 앞에 서 계시곤 했다. 제발 학교를 찾아오지 말라는 그의 투정에도 매일 점심시간마다 따뜻한 도시락을 배달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으신 분이 어머님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도 싫었지만, 사소한 것 하나라도 함께 해 주신 부모님이 있어 역경을 극복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는 말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스물일곱 살 겨울 마지막 수술을 받았어요. 그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저는 ‘엄마 나 수술받기 싫어, 너무 힘들어’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다른 말씀 안하시고 ‘내가 더 힘들거든’이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저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수술실로 들어갔어요."

조 전 교수는 이제 장애가 극복 대상이 아닌 ‘저 앉은뱅이였어요. 그런데 지금 걷는 건 멋이죠’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경지가 됐다.

조동욱 충북교육감 예비후보가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 ‘담쟁이의 국수이야기’에서 충청매일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진영 기자

몸이 불편했던 그가 일반인을 이길 수 있다고 판단 것은 공부와 연구였다.

악착같이 공부와 연구에 매진해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성적 우등생으로 졸업한 조 전 교수의 연구 실적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한국통신학회 LG학술상(2회),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공학분야 우수논문상, 세계인명사전 4년 연속 등재 등 연구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조 전 교수의 충북도립대 제자 2명이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기도 했다. 차상위 계층으로 형편이 어려웠던 학생들에게 그는 종종 ‘나는 지체 장애를 극복했잖아, 너희는 경제 장애를 극복할 수 있어’라고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대학 은사인 이만영 교수를 꼽았다. 정보통신 정보보호분야(암호학) 석학으로 삼성에서 사장으로도 일했던 이 교수는 명절에도 대학에 나와서 연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학생들의 본분을 연구라고 생각하셨던 이 교수가 다른 연구실 소속이었던 조 전 교수가 연구논문을 쓰면 꼭 불러서 격려해 주곤하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거둔 그는 음성분석 전문가로도 유명세를 탔다.

그가 처음 연구한 분야는 영상인식이었다. 석박사 논문도 자동차에 눈을 달아서 자유롭게 달리는 자율운행 분야였던 조 전 교수는 어느날 병원에서 만난 후배 의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환자 목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아픈지 감이 온다는 것이었다. 이에 착안해 목소리 정보로 질병을 진단하는 연구하던 그는 어쩌다가 국내 유력 정치인과 김정일, 김정은, 트럼프, 바이든까지 음성을 분석하는 전문가로 유명해졌다고 미소지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차례 담화를 발표했는데 1차 담화는 그냥 낭독한 것 같고, 2차 담화는 좀 풀이 죽었다가, 3차 담화는 국민하고 한판 붙자는 것이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할 때 불안하지만, 당당한 목소리였다고 분석한 기억도 있습니다. 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방송사에서 유력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을 분석해 달라고 해서 곤혹스러운 상황을 겪기도 했었습니다."

조 전 교수는 대학 강단을 떠난 현재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과학 관련 칼럼을 연재할 정도로 지독하게 연구를 즐긴다. ‘죽어라고 일하고 연구하면 편히 쉴 날이 있다. 죽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쉬기만 한다. 지금부터 쉴 필요는 없다.’는 말을 인생 철학으로 삼는 그는 삶이 다하는 날까지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싶은 평생 연구자다.

조동욱은

- 1959년 서울

- 서울 후암초등학교

- 서울 용산중학교

- 서울 용산고등학교

- 한양대 전자공학과

- 한양대 대학원 공학박사

- 충북도립대·서원대 교수

- 한국통신학회 부회장

-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 한국산학연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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