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바르게 대응하는 태도
대중문화의 건전한 발달은 사회의 바른 질서에 달려있다. 뇌지예(雷地豫) 다음에 택뢰수(澤雷隨)가 오는 이치다. 수(隨)는 질서를 따르는 도리를 담고 있다. 현상세계에서 질서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시절 인연에 좌우된다. 시간, 공간, 그리고 사람이 관계 맺고 있는 상황의 변화가 사회질서를 결정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현상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각자의 운명은 사회변화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과 맞물려 있다.
택뢰수(澤雷隨)괘.
괘사(卦辭)는 매우 좋다. “수는 으뜸으로 형통하고 올곧으면 이롭다. 허물이 없다(隨, 元亨, 利貞, 无咎).” 주역의 최고 가치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양극성의 세상에서 좋은 것은 나쁜 것과 상대하는 법이다. 택뢰수의 잡괘인 내택귀매(雷澤歸妹), 풍산점(風山漸), 산풍고(山風蠱)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변화의 흐름은 절대 녹록하지 않다. 양극적 모순 속에서 좋은 흐름을 계속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올곧음(貞)’이다. 올곧음은 균형을 잡고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는 몸과 마음과 삶의 바른 태도다.
단사(彖辭)는 택뢰수의 전체 형국을 설명한다. “수는 굳센 양이 와서 부드러운 음 밑에서 움직이니 기뻐함이다(隨, 剛來而下柔, 動而說).” 이어 단사는 괘사를 한 번 더 반복하고, 수의 의의를 말한다. “수는 으뜸으로 형통하고 올곧으면 허물이 없다. 천하가 때에 따르니 수의 시대가 갖는 의의는 크도다(隨, 大亨, 貞无咎, 而天下隨時. 隨時之義大矣哉).”
질서의 핵심은 음양의 율려작용(律呂作用)이다. 자연의 율려는 생태적 질서에 순응하는 자연발생적 흐름이다. 그러나 인간사회의 율려는 순행과 역행의 격렬한 투쟁으로 생긴 인위적 결과물이다. 따라서 사회의 질서는 존엄한 삶과 평화를 담보하지 않는다. 사회의 생태적 질서 유지는 지극히 어려우므로, 단사에서 택뢰수의 의의를 높이 치켜세우고 있다.
상사(象辭)는 먼저 괘상을 설명한다. “못 속에 우레가 울리는 것이 수다(澤中有雷, 隨).” 상괘에 못을 상징하는 태괘(兌卦)가 있고, 아래에 우레를 뜻하는 진괘(震卦)가 있는 모습이다. 이어 상사는 질서의 본바탕을 이루는 원초적 생명력의 순환 이치를 설명한다. “군자는 이로써 밤에는 들어가서 음식을 즐기며 쉰다(君子以嚮晦入宴息).”
택뢰수에 관한 공자의 해설이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모든 생명체는 생명력의 발산과 응축을 반복하며 존재한다. 생명력의 작용과 반작용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질서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저녁에 음식과 휴식을 즐기는 일은 낮에 사용한 활동력을 회복하는 필수적인 생명 활동이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 영역, 계층 등이 지닌 특성과 상호관계에 따라 각자 생명력을 발산하고 응축하는 주기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체의 조화를 관리하는 일은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함께 유지하는 핵심이 된다.
초구(初九)의 효사는 사회의 변화를 암시하는 말로 시작한다. “관직에 변동이 있다. 올곧으면 길하다(官有渝, 貞吉).” 관직의 변동은 위계질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직종의 귀천은 큰 차이가 있다. AI 문명사회는 변화의 폭이 전대미문의 양상을 보일 것이다. 문명사적 변화의 시기에 어떻게 해야 하나? 역(易)의 기준은 올곧음이다. 올곧음은 변화에 바르게 대응하는 태도다. 바른 정신으로 변화에 대처하면, 좋은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효사의 결론도 좋다. “문밖에 나가 사귐에 공이 있다(出門交有功).”
상사는 효사의 의미를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다. “관직에 변동이 있다고 함은 바름을 따르면 길하다는 뜻이다. 문밖에 나가 사귐에 공이 있다고 함은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官有渝, 從正吉也, 出門交有功, 不失也).” 초구의 변괘인 택지췌(澤地萃)와 산천대축(山天大畜)에서 상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사회가 대전환을 이루는 시기에는 대중의 심리가 요동친다. 이때 군중심리에 휘말리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심을 확고히 하는 최선의 방책은 바른 도리를 따르는 정신과 지혜를 함양하는 일이다.
글 내용에 맞춰 챗GPT가 그려낸 이미지. (자료=뉴스버스)
육이(六二)의 효사는 비유적으로 처세의 도리를 말하고 있다. “어린 남자에게 매달리면, 장부를 잃게 된다(係小子, 失丈夫).” ‘소자(小子)’는 눈앞의 이익에 밝은 소인, 기회주의자 등을 뜻하고, ‘장부(丈夫)’는 바른 도리에 따라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대인, 군자 등을 의미한다. 겉으로는 대의명분을 얘기하는 사람 중에도 실상 마음속은 사리사욕으로 가득한 경우가 많다.
상사에서 공자는 이 점을 한마디로 정리하고 있다. “어린 남자에게 매달리면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다(係小子, 弗兼與也).” 변화의 시기에 새로운 모색을 하는 집단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바른 도리가 없는 사람들이 모이면, 아무리 좋은 계획도 결국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소인과는 큰일을 도모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육이의 변괘는 중택태(重澤兌)와 중산간(重山艮)이다. 물질적 유혹을 경계하고 멈춤의 도리를 알 때, 바른 변화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육삼(六三)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있다. 효사에 처세의 도리가 있다. “장부에 매달리면 어린 남자를 잃는다. 따라가 구하면 얻을 수 있다. 올곧음에 거해야 이롭다(係丈夫, 失小子, 隨有求得, 利居貞).”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사소한 이익은 버리는 법이다. 육삼이 취할 바른 방향은 아래를 지향하는 물질적 쾌락이 아니라, 위를 추구하는 정신적 즐거움이다. 따라서 위로 향하면 바른 도리를 구할 수 있다.
상사는 효사의 의미를 한마디로 함축하고 있다. “마음의 뜻은 아래를 버린다는 것이다(志舍下也).” 사적인 욕망을 비움으로써 널리 사회를 이롭게 하는 공익을 얻을 수 있다. 육삼의 변괘인 택화혁(澤火革)과 산수몽(山水蒙)에서 지혜를 얻어보자. 대혁신의 자세로 자신의 허물을 고치고, 어리석음을 밝혀야 한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근본 이유는 깨달음에 있다. 올곧음을 지키는 바른 자세는 존재의 이유를 망각하지 않는 정신이다.
구사(九四)의 효사는 육삼과의 관계를 말한다. “따라와 얻음이 있다. 올곧음이 있더라도 흉하다(隨有獲, 貞凶).” 육삼이 위로 향해 구사를 따르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구사로서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구사가 양기를 누르고 올곧이 제자리를 지킨다고 해도, 육삼과 누리는 즐거움은 도리가 아니다. 상사도 이런 이치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와 얻음이 있다고 함은 그 뜻이 흉하다는 말이다(隨有獲, 其義凶也).”라고 풀이한다.
그렇다면 구사는 어찌해야 할까? 효사의 결론은 구사의 처지에서 바른 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도에 머물러 밝음을 유지한다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有孚在道, 以明, 何咎).” 원문의 ‘부(孚)’는 관념적인 믿음이 아니라, 생명의 섭리를 품고 있는 직관적인 믿음이다. 진실은 보편적 섭리에 대한 믿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온다. 상사는 올바른 믿음에서 바른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믿음으로 도에 머무르는 것이 밝은 공이다(有孚在道, 明功也).” 구사의 변괘인 수뢰준(水雷屯)과 화풍정(火風鼎)도 이러한 이치를 말하고 있다. AI 시대에는 낡은 관념을 버리고, 보편적 도리로 사회질서를 구축하자.
구오(九五)의 효사는 좋다. “아름다움을 믿으니, 길하다(孚于嘉, 吉).” 원문의 ‘가(嘉)’는 경사스러운 잔치를 의미한다. 구오는 양효로서 양위에 있고, 중도가 있다. 더욱이 대응하는 육이와 정응하고 있다. 기쁨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위치다. 한바탕 잔치를 벌일 만하다. 이때 즐거움을 누리는 도리는 절제의 미덕이다. 부족함 못지않게 지나침도 삼가야 한다.
상사도 이 점을 말하고 있다. “위치가 정중하다(位正中也).” 중정(中正)의 도리가 진리이고, 그 은혜가 선함이고, 그 표현이 아름다움이다. 이 점에서, 진선미(眞善美)는 하나로 통한다. 구오의 변괘는 중뢰진(重雷震)과 중택태(重澤兌)다. 즐거움이 지나치면, 질서가 무너진다. 따라서 매사에 절제하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육(上六)은 변화의 끝자락이다. 효사는 이때의 처신을 말한다. “붙잡아 매고 그에 따라서 매인다(拘係之, 乃從, 維之).” 상육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구오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다. 그러나 위태한 상황이므로, 뭔가 뜻을 굳건히 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효사의 마지막은 이것을 말한다. “왕이 서산에서 제사를 지낸다(王用亨于西山).” 제사는 고대에 정신을 응집하는 최고의 의례였다.
상사는 상육의 상황과 대처가 모두 위치에 달려있음을 말한다. “위가 궁하기 때문이다(上窮也).” 변화가 임계점에 이를 때는, 외형적 변화보다는 내면의 성찰이 중요하다. 상육의 변괘는 천뢰무망(天雷无妄)과 지풍승(地風升)이다. 일상에서 간과하기 쉬운 작은 허물도 경계하고 절도를 지켜 나아갈 때, 닥쳐오는 재앙을 막을 수 있다.
서동석
은 동서통합 사상가인 에머슨을 통해서 정신문화에 입문했다. 특별한 인연으로 수행(修行)을 연구한 이후, 수행의 원리를 다방면으로 해석하고 개인과 사회를 혁신하는 데 적용하고 있다. 주역에 관한 새로운 해석도 이러한 차원에서 하는 중이다. <주역 인생전략>을 비롯해 <경계를 넘어 통합을 보다>, <나를 찾을 결심>, <융합창의력과 인간교육>, <어둠을 밝히는 지혜>, <미국의 정신 에머슨> <AI 시대의 생존전략, 수행>등 15권 이상의 관련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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