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을 그들의 공식 국호인 ‘조선’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르고, ‘주적’ 표현을 대체하는 등 새로운 대북 정책을 제시했다. 상대를 존중하는 언어가 신뢰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이지만, 문제는 이상과 현실은 다르며, 남북 관계는 선의만으로 움직이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은 경험적으로 축적되어 온 사실이다. 주목할 대목은 같은 정부 내부에서조차 이러한 구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통일부의 4자 대화와 평화 체제 구상 등을 ‘이상주의에 근거한 희망’이라며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했고, 충분한 부처 간 조율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통일부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는 방안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라며 정쟁의 빌미가 될 가능성을 우려했고, “우리의 선의대로 하는 것이 과연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플러스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대통령도 대북 정책은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와 국가적 합의를 전제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남북 관계는 일반적인 국가 간 외교와도 다르다. 북한은 핵무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군사적 긴장을 완전히 해소하지 않은 채 대남 전략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해 왔기 때문에 우리의 일방적인 유화 제스처가 반드시 상호 신뢰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이를 체제 선전이나 협상력 제고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그동안 남북 관계에서 북한이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행태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호칭 변경과 같은 상징적 조치도 상대의 실질적인 태도 변화와 맞물릴 때 의미를 갖는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언하며 우리를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표현한다고 해서, 우리도 북한을 ‘북조선’ 대신 ‘조선’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들의 전술에 휘말릴 여지가 다분하다. 비핵화나 군사적 긴장 완화에는 아무런 변화 없이 우리만 먼저 원칙과 용어를 바꾸는 모습은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며, 국제사회에도 잘못된 신호를 보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대북 정책은 정권의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이다. 국내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사안이라면 더욱 폭넓은 국민적 공감과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둘러 정책을 추진했다가 불필요한 이념 갈등만 키운다면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본래의 목적도 달성하기 어렵다. 국가안보는 냉철한 현실 인식 위에서 지켜진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성급한 상징 정치가 아니라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신중하고 균형 잡힌 대북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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