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와 관련하여 대법관 제청권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충돌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과거에도 정권과 대법원장이 대법관 인선을 놓고 갈등을 빚은 사례는 많았다. 그러나 이번 사안이 과거와 다른 점은 제청 전 합의에 이른 것이 아니라, 제청된 후보자를 반려하고 다시 제청을 요구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제청권과 임명권은 권력분립이라는 헌법 원리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하는 권한이다.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무력화해서도 안 되지만, 대법원장의 제청권 역시 대통령의 헌법상 임명권과 완전히 분리된 절대적 권한으로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임명권과 제청권의 우열을 둘러싼 공방이 아니라, 대법관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법원은 국민의 기본권과 사회적 갈등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곳이다. 대법관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법관 한두 명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법적 판단이 대법원에 의해 최종 결론 지어지는 상황에서, 대법관의 공백은 사건 심리와 판결의 부담이 다른 대법관들에게 집중되고, 사건 처리와 재판의 충실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최근 대법원에는 정치·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은 대법원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하기를 기대한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대법원장 모두 사법부의 독립과 함께 국민의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과 대법원장은 서로의 권한을 지키는 데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 제청권과 임명권의 헌법적 의미를 존중하면서 가능한 한 신속하게 협의해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법관 제청과 임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을 예방할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사법부 독립 또한 특정 기관의 권한을 지키기 위한 구호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원칙이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이를 잊지 않는다면 해법은 결코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권한 다툼이 길어질수록 국민의 피해만 커진다. 양측은 하루빨리 대화를 통해 해법을 마련하고, 빈자리를 메워 대법원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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