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성 재능대 글로벌태권도학과장
[한국대학신문 임지연 기자]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보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비난과 고통도 실컷 겪었습니다. 철학자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성공의 꼭대기에서 느끼는 공허함이란 것이 분명히 있어요. ‘아, 이거 내가 안 해도 되겠구나’ 싶은 순간도 있었죠. 지금은 그 교만을 내려놓고, 후진을 양성하는 보람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 그게 제 인생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80kg급 결승, 경기 종료 1초를 앞두고 터진 문대성의 뒤후려차기 한 방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선명한 한 획을 그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국회의원, 태권도 행정가로 전방위를 누볐던 그가 이번에는 인천 재능대학교 글로벌태권도학과 초대 학과장으로 부임, 학과를 이끌고 있다.
글로벌태권도학과는 이남식 재능대 총장과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문 학과장은 처음 총장실에서 나눈 대화를 또렷이 기억한다. 두 사람이 공유한 것은 단순한 학과 신설 계획이 아니었다.
문 학과장은 “태권도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대학의 미래를 이끌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자는 총장님의 비전에 깊이 공감했다. ‘글로벌태권도학과’라는 이름도 이남식 총장님이 직접 제안했다”며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학과가 나아가야 할 방향, 그 자체를 담은 이름이다. 전문대학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총장님의 확고한 의지가 그 안에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문 학과장은 이 학과를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닌 ‘태권도 외교 플랫폼’으로 규정,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수도권이라는 지리적 이점, 대학의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자신이 수십 년간 쌓아온 국제 네트워크를 묶어 새로운 판을 짜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그는 앞서 가장 강조하는 교육의 핵심 가치는 따로 있다. 바로 ‘철학’과 ‘인성’이다.
“제 교육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술 이전에 사람을 만든다’는 겁니다. 태권도는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니에요. 스스로 발전하는 자율성, 태권도를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는 창의성, 그리고 예의와 봉사 정신, 이 세 가지가 갖춰진 사람이라면 어느 무대에서든 통합니다. 학생들이 단순히 운동 잘하는 선수에 머물지 않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리더로 성장하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현장에서 제자들을 지도하며 그는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 한 사람의 삶과 가치관 형성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의 가장 큰 매력을 발견했다고. 재능대의 건학 이념인 ‘자율, 창의, 봉사’ 역시 그의 교육 철학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문 학과장이 설계한 커리큘럼 역시 기존 대학 체육교육과 궤를 달리한다. 핵심은 선수 은퇴 이후의 삶까지 대학이 책임진다는 발상이다. 그가 구축한 진로 트랙은 △AI 태권도 △태권도 산업 △태권도 외교 △해외 사범 △전문 지도자의 다섯 가지다. 이 커리큘럼은 학생들이 선수를 그만둔 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대학이 줘야 한다는 것에서 착안했다.
문 학과장은 “기존 대학들과 달리 재능대는 교육과정과 시스템을 완전히 새롭게 구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며 “그래서 태권도 용품과 마케팅 같은 비즈니스 영역, 국제기구와 스포츠 행정 분야, 해외 현장 지도자 파견, 국내외 우수 코치 양성까지 졸업 후 갈 수 있는 길을 다섯 갈래로 확실하게 열어주고자 교육과정을 심도있게 고민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교육과정은 ‘AI 태권도’ 트랙이다. 그는 대학 내 ‘AI 태권도 연구소’를 설립해 AI를 태권도에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 중이다.
문 학과장은 “감에 의존하는 훈련 방식은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데이터 분석을 통한 과학적 훈련 시스템을 도입하고, 판정의 공정성을 높이는 기술 연구를 병행해야 한다”며 “IT와 스포츠가 결합된 미래형 태권도 교육을 재능대가 선도할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면 도태된다. 학생들이 미래 스포츠 산업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기술과 철학을 함께 가르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9월, 재능대 글로벌태권도학과에는 필리핀, 핀란드, 멕시코, 미국, 스페인 등 5개국에서 선발된 태권도 유망주들이 입학한다. 문 학과장이 직접 발로 뛰며 자신의 국제 네트워크를 가동한 결과다. 다만 재능대는 단순히 학생 수를 채우는 유치를 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자국에서 실력이 검증된 인재들을 엄선, 이들에게 한국어와 태권도 정신을 함께 가르쳐 졸업 후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한국을 알리는 ‘지한파’ 리더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진짜 목표다.
“우수한 유학생들이 LA 올림픽에서 재능대의 이름을 걸고 활약하고, 이후 고국으로 돌아가 한국을 알리는 리더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습니다. 그 그림이 완성될 때, 재능대가 전 세계 태권도 교육의 메카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다만 문 학과장은 유치에 그치지 않고 대학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제도적 뒷받침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문 학과장은 “비자 발급의 문턱을 낮추고, TOPIK 성적 같은 정량적 지표보다 잠재력과 실기에 주목하는 유연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정부의 유학생 유치 정책이 4년제 대학 위주로 설계된 측면이 있어 실무 교육 중심인 전문대학의 특성화 학과들이 혜택에서 소외되는 현실도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문 학과장은 “입시에 있어서도 전문대학보다는 지방이라도 4년제 대학의 타이틀을 고집하는 인식이 여전하다”며 “재능대는 수도권의 지리적 이점, 합리적인 등록금, 무엇보다 학생들이 언제든 기댈 수 있는 교수진이 있다. 굳이 멀리 있는 지방 대학보다 확실한 비전이 있는 이곳에서 꿈을 펼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인터뷰 내내 ‘과정’의 가치를 역설한 문 학과장은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성취보다 소중한 것은 그 과정에서 겪은 실패와 극복의 경험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비난과 욕을 먹어가며 버텼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며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를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경험과 네트워크를 아낌없이 나누겠다. 여러분이 세계라는 넓은 무대에서 마음껏 발차기를 할 수 있도록 ‘든든한 언덕’이 되겠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