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상법 개정 후 첫 주총... 기업들 선제적 이사회 규모 축소 '방어전'
정관 변경 통한 이사 상한선 축소 15곳... 기득권 지키기 '꼼수' 지적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 정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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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한 3차 상법 개정안 통과 이후 열린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앞다퉈 이사회 규모를 축소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 이사회를 개방하겠다는 법 개정 취지와 다르게,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빗장을 걸어 잠그고 방어 조치에 나서면서 이른바 '상법 개정의 역설'이 현실화했다.
7일 금융투자업계와 재계에 따르면 이번 정기 주총 시즌에서 상장사들의 전체 이사 규모는 전년 대비 2.6%가량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기업들이 사외이사가 아닌 '사내이사'부터 쳐내는 방식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카카오, 삼성, 미래에셋 등 주요 그룹사들은 이번 주총을 기점으로 선제적으로 사내이사 수를 줄여 전체 이사 규모 자체를 낮추는 전략을 취했다. 현행 상법상 사외이사 수는 전체 이사 수의 일정 비율 이상을 의무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무작정 이사회 덩치를 키워 우호 지분을 확보하려던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아예 전체 이사의 모수를 줄임으로써 사외이사 최소 선임 기준을 동반 하락시킨 것이다. 외부 주주가 추천한 껄끄러운 인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물리적 여지를 원천적으로 좁혀버린 고도의 방어 전략이다.
정관 변경을 통한 노골적인 진입 장벽 구축 움직임도 뚜렷하게 확인됐다. 올해 주총 안건 가운데 이사회 관련 정관 변경을 상정한 기업은 무려 184곳에 달했다. 그중 15개 상장사는 실제 정관상 이사 수 상한선을 명시적으로 축소하며 이사회 문을 굳게 닫았다. 롯데케미칼, GS글로벌, 한진칼, LS 계열사, 셀트리온, 한국앤컴퍼니 계열 등이 대표적이다. 효성그룹의 경우 효성, 효성티앤씨, 효성화학, 효성첨단소재 등 주요 계열사에서 이사 수 축소를 강행하며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이처럼 기업들이 제도적 빈틈을 노려 지배구조 방어막을 높이는 사이, 정작 주총 현장에서는 부진한 주가와 경영 성과를 질타하는 주주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기업들이 상법 개정을 의식해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을 부랴부랴 늘렸지만, 주주와 경영진 사이의 근본적인 불신을 씻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주총장 분위기는 냉랭했다. 회사가 제시한 '100조원 이상의 현금 확보 목표'를 두고 환원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장기 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이라는 사측의 설명에도 주주들의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 주총에서도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네이버는 경영진이 직접 나서 인공지능(AI) 등 미래 전략을 설명했지만, 주주들의 관심은 온통 더딘 수익화 속도와 주가 하락에 쏠려 있었다. 카카오는 아예 주총의 성격 자체가 전략 설명의 장에서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하는 청문회 성격으로 변질되는 모습까지 보였다. LG전자 주총 역시 개방적인 소통 시도에도 불구하고 현재 실적과 신사업 간의 괴리를 지적하는 날 선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대규모 주주가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며 상대적으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주총 시즌은 상법 개정이라는 외부 충격에 직면한 대기업들이 겉으로는 주주가치 제고를 외치면서도, 이면에서는 기득권 방어에 급급한 모순적인 태도를 고스란히 노출한 무대가 됐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으로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을 우려한 기업들이 이사회 규모를 축소하는 꼼수로 선제적 방어벽을 높이고 있다"며 "제도적 맹점을 악용해 외부 감시를 원천 차단하려는 시도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사회 축소 전략이 장기적으로 기업의 체질 개선과 가치 제고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시장의 면밀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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