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립보고서] ④ 두 경로의 고립
* 취재팀을 이끈 신중언 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저널리즘혁신학과에서 교수진의 지도를 받아 기사를 기획·취재·보도했습니다. 지난해 12월, 7회에 걸쳐 <매일신문>에 연재된 이 기사는 2026년 3월 제28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촛불상을 수상했습니다. 아래는 원래 보도를 일부 수정·보완한 기사입니다.
대구 남구 대명3동 주택가에서 노인들이 모여 있다. 매일신문 제공
집을 이룬 붉은 벽돌의 빛이 바랬다. 집과 집을 잇는 전봇대엔 오래된 전단이 겹겹이 붙었다. 골목에 들어선 상점은 낡은 간판을 내걸었고, 그 글자는 드문드문 지워졌다.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대구 남구 대명3동의 골목은 조용하다. 담배를 입에 문 노인도, 보행기를 끌며 걷는 노인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먼발치서 재개발 아파트 현장의 공사 소음만 가끔 들렸다. 누군가 앓는 소리 같았다.
한때는 대구 최고 부촌, 지금은 '고립 밀집지'
32년 된 다세대 주택 3층 집은 대낮에도 어둑했다. 안부를 확인하러 온 복지사가 물었다. “전등 좀 켜도 될까요.” 김향숙(67) 씨는 손사래를 쳤다. “안 돼요!” 그는 전깃불을 매우 싫어했다. “작년에 우리 아저씨가 벌건 대낮에 불 켜놓고 가 버렸거든요. 침대에 거꾸로 누워 있길래 자는 줄 알았지. 그 뒤로 불을 켜기가 무서워.”
남편이 먼저 떠나고 혼자 남은 집은 고장투성이다. 며칠째 수도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변기는 깨졌고, 세탁기엔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밥솥마저 반년 전 고장 났다. 새로 장만할 돈이 없어 라면으로 매 끼니를 때운다. 먹고 자고 씻는 생활이 온통 망가졌어도 병원엔 4년 넘도록 가지 않았다. “무섭잖아요. 갈 때마다 병이 하나씩 생기니까. 돈도 없는데….”
대구 남구 대명3동의 낡은 다세대 주택에서 사는 김향숙(67) 씨는 방이 어두워도 불을 켜지 않고 산다. 매일신문 제공
향숙 씨는 평생을 대명동에서 살았다. 다세대 주택만 전전했다. 선천적으로 척추가 약해 멀리 걷지도, 직업을 갖지도 못했다.
그가 어렸을 적엔 대구의 대표적 부촌이 대명동이었다. 1970~80년대, 대명동 언덕마다 지역 기업가와 명망가들의 저택이 들어섰다. 1990년대 이후 동네가 돌변했다. 아파트 건축 바람이 불었고, 대구 변두리의 신시가지 개발도 본격화됐다. 1990년대 중반, 인근 대학의 캠퍼스가 대구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젊은이들도 떠났다. 동네는 빠르게 쇠락했다.
“옛날에는 유명한 부잣집 양옥이 줄지어 있었지. 기업하는 사장님들, 돈 많은 집안들이 다 거기 살았거든. 나도 어릴 때는 부족함 없이 자랐어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집안은 넉넉했다고 향숙 씨는 말했다.
계단 때문에 방에 갇혀 지낸다
좋은 시절은 잠깐이었다. “이 동네에 남은 건 나처럼 오래된 것들뿐이야. (여기 사는) 주민들도 늙은 사람이거나 혼자 사는 사람이고.” 향숙 씨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늙어 혼자 된 그에게 지금의 집은 적합하지 않다. 가파른 계단이 특히 그렇다. “이건 2주 전에 넘어진 거.” 그는 새파랗게 멍든 왼쪽 눈두덩이를 가리켰다. 몇 달 전에는 계단에서 굴러 머리가 깨졌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까지 힘겨워진 이후, 향숙 씨의 세계는 좁아졌다. 평생 대명동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이제 대문 앞에 잘 나서지 않는다. 그가 누리는 공간은 좁은 방 안 침대 위로 쪼그라들었다. 그의 시간도 단출해졌다. 침대에 드러누워 지내는 하루 내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낡은 집에서 혼자 지내는 이들은 고립사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간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명동 전체 건축물 1만3000여 호 가운데 약 70%에 해당하는 9200여 호가 3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이다. 20년 이상 된 것을 더하면, 80% 넘는 건물이 낡고 늙었다.
노후주택 밀집지의 전형적 유형은 단독 또는 다세대 주택이다. 대명1·3·9동의 주거 가운데 약 77%가 단독·다세대 주택이다. 낡은 건물에 사는 이들은 주로 혼자 사는 노인이다. 대명1·3·9동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평균 30%고, 1인 가구 비율은 58% 정도다. 주민 절반 이상이 혼자 살고, 열 명 중 세 명은 노인인 셈이다. 대구 평균(65세 이상 21.5%, 1인 가구 40.4%)을 크게 웃돈다.
아파트가 평균적 주거지로 자리 잡은 이후 노후주택가는 악순환에 빠진다. 건물 가치와 주거 매력이 낮으므로 동네에 들어와 살겠다는 이가 적다. 부동산 거래가 끊어지면, 재개발을 통한 주거 개선의 동력도 사라진다. 결국 공공기관이 나서서 이들 주택을 매입하여 관리한다. 이 동네에 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한 임대주택이 유난히 많은 이유다.
LH 대구경북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명동 일대의 LH 매입임대주택은 1801호다. 이는 대구시 남구 전체 물량(2058호)의 87.5%를 차지한다. 대구 전체(1만 150호)에서도 17.7%나 된다.
내 손으로 고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허진호(63·가명) 씨는 16년 전부터 대명9동의 LH 매입임대주택으로 들어와 살고 있다. 진호 씨의 손은 두껍고 투박하다. 반평생을 목수로 일한 흔적이다. 젊은 시절 그는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거푸집과 내장 인테리어를 만들었다. 부서진 가구를 고치고, 삐걱거리는 문짝을 바로잡는 일이 그에겐 너무 쉬웠다. 나이가 들자 달라졌다. 자기 손으로 고칠 수 없는 것이 생겼다. 깨진 가정과 무너진 관계는 끝내 돌이킬 수 없었다.
진호 씨의 하루는 방 한켠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액자 속에서 백 일을 넘긴 갓난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다. 지금쯤 어엿한 아가씨로 자랐을 터이지만, 그의 기억은 그 웃음에 멈춰 있다. 20여 년 전 이혼한 뒤로 딸을 본 날이 한 손에 꼽는다. 전처는 중국인이었다. 아이는 중국으로 건너가 자랐다.
진호 씨는 이혼에 대해 말을 아꼈다. “아내가 밤마다 집을 비워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노래방 도우미로 일했다더군요. 물론 나도 잘한 건 없었어요.” 이후의 삶은 낯설었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법을 그는 알지 못했다. 차라리 자신을 망치기로 했다.
어느 날, 죽어버리려고 술을 마셨다. 밥엔 손도 대지 않고, 소주만 들이켰다. 잠들고 나면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거라 믿었다. 술을 마시고 토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렇게 20일을 버티다 119에 전화를 걸었다.
깨어나 보니 응급실이었다. “38만 원 내고 가세요.” 병원 직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술 먹고 죽으려던 사람한테 돈이 어디 있느냐”며 버텼다. 결국 돈을 안 내고 퇴원했다. 사흘 동안 병원에 누워 실랑이를 벌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결심했다. 살아야겠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살아야겠다.
외로운 틈에 스민 안부와 그리움
진호 씨는 술을 끊고 다시 돈을 벌었다. 여인숙에 살면서 일용직 목수로 일했다. 그러다 2009년에 ‘주거 상향 지원 사업’의 수혜자로 선정돼 대명9동의 LH매입임대주택인 낡은 빌라로 이사했다. 어떻든 살고 싶었지만,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 2020년 교통사고로 허리에 철심을 박았다. 노동 능력을 잃어버리니, 모든 관계가 끊어졌다. 병원에 갈 때 빼고는 집에만 있었다.
외로움이 만든 틈을 종교가 파고들었다. 올해 들어 진호 씨는 기독교 계열 신흥 종교의 신도가 됐다. 일주일에 세 번 나간다. 한 번 가면 세 시간 동안 예배한다. 그러면 하루가 금방 끝나서 좋다. 요즘 그의 꾸준히 안부를 묻는 건 그들뿐이다. “예배를 하루라도 빠지면 꼭 전화가 와요. 집 앞까지 찾아오기도 하고요. 날 이렇게 챙겨주는 곳이 어디 있겠어요? 특별히 요구하는 것도 없더라고요.”
진호 씨가 의지하는 게 하나 더 있다. 카카오프랜즈 캐릭터다. 그의 스마트폰에는 장성한 딸의 사진이 있다. 딸은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몇 년 전, 전처와 겨우 연락이 닿았을 때 받은 사진이다.
“계속 보니 예뻐 보이더라고.” 그는 자신의 오토바이 헬멧을 보여줬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진호 씨는 잠시 웃음을 짓다가 오토바이에 걸터앉았다. 허리를 다친 뒤부터 오토바이는 그의 다리나 다름없었다. 헬멧을 천천히 눌러쓰고 시동을 걸었다. 가로수 그림자 속으로 진호 씨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가장 마지막까지 보인 것은 알록달록한 헬멧이었다.
딸이 좋아하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스티커가 붙은 헬멧을 쓰고 허진호(63·가명) 씨는 오토바이를 탄다. 매일신문 제공
아들한테 수십 번 전화하는 할머니
대명동 일대의 고립은 달서구 송현1·2동에서도 닮은 꼴처럼 나타났다. 이 지역에도 낡은 단독·연립 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송현1·2동 전체 건축물(5900여 호) 가운데 20년 이상 된 건물이 약 95%에 달한다. 30년 이상 노후건물로 좁혀도 3500여 호다. 송현1·2동의 단독·다가구·다세대 주택 비율은 41.2% 정도다.
197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조성된 대규모 저층 단독주택지인 이곳은 예전엔 ‘신도시’로 불렸다. 이후 재개발 사업이 번번이 좌초하여,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장화자(77) 씨도 이 동네에 산다. 송현1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그는 엉금엉금 기어 화장실로 간다. 지난해 침대에서 떨어진 뒤 허리를 다쳐 걷질 못한다. 화자 씨는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있다. 생각과 마음의 기력도 떨어졌다. 치매가 시작된 지 5년, 그의 인지 능력은 매일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그를 돌보는 사람은 요양보호사가 유일하다. 60대 중반의 요양보호사는 하루 세 시간만 화자 씨의 곁에 머문다.
아들은 서울로 떠난 지 오래다. 아들 얼굴을 보는 날은 1년을 잡아도 한 손에 꼽는다. 화자 씨의 휴대전화 통화 목록에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아들에게 전화를 건 기록이 남는다. 치매 탓에 전화를 자꾸 건다. 아들은 근무 중이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화자 씨를 보며, 요양보호사는 자신의 휴대폰에 이웃집 주인 번호를 저장해뒀다. 가끔 화자 씨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가 있다.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난 건 아닌지, 60대 중반의 요양보호사는 항상 걱정한다.
대구 달서구 송현1동의 다세대주택에 사는 장화자(77) 씨는 혼자 TV를 보며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매일신문 제공
노후주택가의 '혼합 고립'⋯ '장기 단절'과 '단기 취약' 교차
이들 노후 주택가에는 두 경로의 고립이 공존한다. 취재팀이 노후주택 거주 고립 가구 1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거주 기간은 2년 이하 단기 거주자(66.7%)와 10년 이상 장기 거주자(22.2%)로 양분됐다. 단기 거주자는 저렴한 월세를 찾아왔지만, 이웃과 관계망을 형성하지 못한 채 고립되는 유형이다. 장기 거주자는 사별, 자녀 출가 등 생애 사건을 거치며 관계망이 소진된 경우가 많다.
‘혼합 고립’의 결과, 대구의 노후 주택가 밀집지에는 혼자 사는 이들이 많다. 인구 1천 명마다 고독사 위험에 놓인 이들의 숫자를 조사한 대구시 자료를 보면, 대명1동과 송현2동 16.0명, 송현1동 15.8명, 대명3동 14.4명, 대명9동 13.7명 등 노후주택가에 해당하는 동네의 고독사 위험군이 유난히 높다.
이들의 사회적 관계망도 매우 얇다. 취재팀이 노후주택 거주 고립 가구 1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2년 이하 단기 거주자 12명 가운데 가장 가깝게 느끼는 사람으로 '이웃'을 꼽은 응답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응답자의 절반은 ‘꾸준히 연락이 닿는 가족이나 지인이 1명 이하’라고 답했다. 일주일 기준 '10분 이상 누군가와 대화한 날'이 2일 이하인 경우도 44%(8명)에 달했다.
대구시 서구 사회적 고립 가구 지원센터의 신은경 과장은 “노후주택 지역에는 낮은 월세를 찾아 모여든 취약계층이 밀집해 있는데,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해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예 감지되지 않는 고립도 많다고 신 과장은 말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더라도 불안정한 거주 형태 때문에 (관공서와)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빈집이나 폐건물에 거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신 과장은 말했다.
고립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관계가 끊기고, 병들고, 가난이 이어지는 시간이 길게는 수십 년간 쌓이며 서서히 자라난다. 그 끝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죽음’으로 매듭지어진다.
매일신문
은 2024년 11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1년 동안 고립 가구가 몰린 대구의 영구임대아파트, 원룸촌, 노후 주택가, 쪽방촌을 직접 찾아가 주민들의 삶을 기록했다. 고립 위기 1인 가구 57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진행해, 사회관계망, 고립의 경로, 질병 이력, 홀로 산 기간 등을 확인했다. 취재 기록을 토대로 사회복지 전문가들과 함께 주거유형별 고립이 어떻게 형성되고 이뤄지는지 분석했다.
자신의 신상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 취재원이 익명 인용을 요청한 경우엔 원래 이름과 다른 가명을 사용했다. 같은 이유로 기사에 등장하는 일부 건물 이름은 원래와 다른 가칭을 사용했다. (편집자 주)
<기사 순서>
① 모여 살다 홀로 죽는다
② 우리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③ 외딴섬에 사는 젊은 이방인
④ 붉은 벽돌만큼 오래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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