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연계 해커 조직의 가상자산 공격 방식이 기존 스마트컨트랙트 취약점 중심에서 사람과 공급망, 오프라인 네트워크까지 노리는 형태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최근 공격은 단순 기술 해킹을 넘어 내부 신뢰관계와 조직 운영 체계 자체를 겨냥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어 국내 가상자산 업계와 보안업계의 경계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블록체인 보안 기업 서틱은 최근 ‘스카이넷(Skynet) 북한 가상자산 위협 보고서’를 공개하고, 지난 10년간 북한 연계 해커 조직의 공격 패턴과 자금 세탁 흐름, 조직적 운영 구조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연계 조직은 2016년 이후 현재까지 총 263건의 공격을 통해 약 67억5천만 달러 규모의 가상자산을 탈취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2025년 한 해 동안 발생한 북한 연계 공격 피해 규모는 약 20억6천만 달러로, 전 세계 가상자산 해킹 피해액의 약 60%를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대표 사례로는 2025년 발생한 바이비트 해킹 사건이 꼽혔다. 피해 규모는 약 15억 달러로,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 단일 해킹 사건으로 기록됐다. 보고서는 탈취 자금의 86% 이상이 한 달 안에 믹서와 크로스체인 브리지, 탈중앙화거래소(DEX), 장외거래(OTC) 네트워크 등을 거쳐 세탁된 것으로 분석했다. 단순 탈취가 아니라 대규모 자금 세탁 체계까지 갖춘 산업화된 공격 구조라는 의미다.
보고서는 북한 해커 조직의 가장 큰 변화로 ‘공격 경로의 전환’을 지목했다. 과거에는 스마트컨트랙트 취약점이나 프로토콜 오류를 노리는 기술 중심 공격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인간 심리와 조직 내부 신뢰체계, 외부 공급망을 함께 노리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2022년 발생한 로닌(Ronin) 브리지 해킹 사건은 대표적인 사회공학 기반 공격 사례로 분석됐다. 공격자들은 LinkedIn 허위 채용 공고를 이용해 내부 엔지니어에게 접근했고, 피싱 방식으로 악성코드를 설치해 약 6억2천500만 달러 규모 자산을 탈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5년 바이비트 사건에서는 공급망 공격이 핵심 전술로 활용됐다. 공격자들은 거래소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바이비트가 사용하던 서드파티 멀티시그 플랫폼 ‘세이프(Safe)’ 개발자의 장비를 침해한 뒤 정상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변조하는 방식으로 공격을 수행했다. 강력한 보안 체계를 갖춘 핵심 기업 대신 연결된 외부 협력사와 플랫폼을 우회 경로로 활용한 셈이다.
올해 발생한 드리프트(Drift) 프로토콜 사건은 공격 방식이 오프라인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꼽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격자들은 약 6개월 동안 업계 행사와 컨퍼런스에 직접 참석하며 핵심 관계자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했다. 일부는 실제 투자자처럼 행동하며 프로젝트 내부 접근 권한을 확보했고, 이후 오라클 조작과 거버넌스 권한 장악을 통해 공격을 실행한 것으로 분석됐다.
북한 조직의 내부 침투 전략도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보고서는 수년간 북한 IT 인력들이 위조 신원을 활용해 해외 IT 기업과 디파이(DeFi) 프로젝트에 원격 근무 형태로 침투해 왔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장기간 내부 직원으로 활동하며 정보 수집과 내부 지원 역할을 수행했고, 일부 사례에서는 직접 자금 탈취에도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 사례로는 내부 인력이 프로젝트 자금을 직접 탈취한 ‘먼처블스(Munchables)’ 사건이 언급됐다.
최근에는 블록체인을 명령·제어 인프라로 활용하는 방식도 등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조직은 ‘이더하이딩(EtherHiding)’ 기법을 활용해 악성 페이로드를 스마트컨트랙트 거래 데이터 안에 숨겼다. 이 방식은 퍼블릭 블록체인을 활용하기 때문에 기존처럼 서버를 차단하거나 폐쇄하는 대응이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국내 정보당국도 북한의 가상자산 공격 고도화를 경고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국가사이버안보센터는 최근 공개한 연례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지난해 약 2조 원 규모의 가상자산을 탈취했다고 밝혔다. 또한 딥페이크 기반 화상면접 위장 취업, 스마트폰 원격 초기화, 공급망 침투 등 새로운 공격 기법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급망 보안 강화와 내부자 검증 체계, 블록체인 기반 자금 세탁 추적 기술 고도화가 시급하다. 한국·미국·일본 등 주요 국가들도 최근 북한의 가상자산 탈취 대응을 위해 공동 경고와 국제 공조 체계를 확대하고 있으며, 민관 협력 기반의 위협 인텔리전스 공유가 핵심 대응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