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순 소설가·주택관리사
일요일. 무심코 커피 한잔을 들고 발코니 앞에 다다랐다. 창밖의 풍경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앙상한 가지였던 것 같았는데…. 어느새 은행나무 가로수 잎이 짙은 녹색을 띠며 내리는 봄비에 맞장구를 치며 아래위로 춤을 추고 있었다. 하긴. 올해 다섯 장째 달력을 넘겼으니. 삼 분의 일이 지나고 있는 셈이다.
오월. 가정의 달. 해마다 이 두 단어가 필자의 명치 끝을 내리누른다. 그 무게는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하신 '사람 노릇'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께 효도가 뭔지도 몰랐던 삶이 그러하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정신없이 살아내기에 바빠서 함께하지 못했던 날들이 그러하고, 형제끼리 우애 있게 지내야 하지만 나와 내 가족이 우선인 삶을 살아온 세월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누가 뭐래도 열심히는 살아왔다. 최선을 다했냐고 물으면…. 답은 '글쎄요'다.
오월의 시작점인 연휴 기간에 필자는 펄 벅의 단편소설 "비 오는 날'을 읽었다. 소설 속에서도 오늘처럼 비가 왔다. 소설의 줄거리는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갓 돌아온 청년 테첸은 서구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경험하고 돌아왔으나 집안의 최고 어른인 할아버지에게 주인공은 집안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수단이며, 주인공에게 조상 대대로 내려온 효도와 규범을 지키도록 요구한다.
테첸은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만 할아버지는 단호하고 권위적인 태도로 그의 생각을 가로막는다. 신구 세대간의 언어는 같았지만, 그안에 담긴 가지관이 완전히 달라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 주인공은 절망한다. 서구 교육을 배운 테첸은 고향에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무력한 곳이자, 이방인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그래서 비가 내렸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할아버지는 왜 손자의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나?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서? 그 또한 할아버지의 이기심은 아닐까? 소설속의 모습과 오늘날은 다를까? 아마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비록 진흙이 신발 밑창에 묻어나는 길이 아스팔트 길로 바뀌었고,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사는 시대는 도래했지만,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과 오늘 날 '나'의 모습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 테첸이 AI와 경쟁해야 하는 노동력 감소 시대에 사는 '나' 의 허우적거리는 삶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그렇다면 변화의 흐름을 '나'라는 개인이 막을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시대의 조류는 내가 원하던 원치 않던 '나'의 곁으로 다가온다. 어차피 받아들여야 할 몫이라면 흐름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고 조언하는지도 모른다. 하나씩 내려 놓되 변화에 순응하는 삶 말이다. 변화에 순응한다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고통의 측면과 앞으로 나아가는 희망의 측면을 함께 수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19세기 쇄국을 고집했던 흥선대원군은 구국의 결단이었지만,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펼치며 근대화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무역장벽을 완화했던 우루과이라운드는 관세의 수준을 넘어 농산물, 서비스, 지식재산권까지도 '개방"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빈부격차는 심화하였으나 세계 경제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IMF 시기는 또 어떤가? 대규모 실직과 중산층의 붕괴, 비정규직 확산과 고용 불안, 고소득과 저소득층 간의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아픔과 함께 하긴 했지만, 기득권의 관치금융에서 독자적인 신용평가 시스템이 도입되고, 재무 건전성이 강화되었고, 국가 차원의 리스크 관리 체계가 견고해졌다. 금융위기의 시대에는 단순히 금융 시장의 혼란을 넘어 계층 논란을 불러왔다. 비정규직 비율이 급상승했고,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이 일상화되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논란을 불러왔다. 금융위기 이후 서민들의 삶은 돈맥경화가 더욱 심해진 '살아가는 삶', 에서 '살아내야 하는 삶'으로 변모했다. 누구의 잘못인가? '나'인가?, 아니면 '시대'의 잘못인가? 누가 뭐래도 '나'는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지금, 지구촌은 온통 전쟁중이다. 세기초의 현상같기도 하다.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19세기초 변화의 흐름의 시대, 20세기 무역충돌로 인한 전쟁, 21세기 AI시대를 앞두고 벌어지는 패권전쟁이다. 전쟁으로 인해 서민들이 마주하게 될 삶의 풍경은 단순한 소득 격차가 아닌 노동의 시장변화란 점이다. 단순반복업무 및 전문적인 사무직 영역까지 AI가 대체되면서 그 기술을 활용하는 소수는 더 높은 생산성을 갖게 되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디지털 난민'이 될 우려가 있다. 말하자면 일상의 소소한 대화가 사라지는 정서적 삶의 고립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현상은 벌써 우리 주변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다. 커피숍, 식당, 심지어 민방위 훈련장이나 예비군 훈련장 같은 곳에서도 타인과 대화보다는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는 흐름에 적응할 때까지 빙하기가 있다고 한다. 이제 그 빙하기에 막 접어든 시점이다. 이 빙하기가 빨리 끝나기를. 그래서 AI 패권 전쟁 속에서 기술을 활용하되 따뜻한 시선은 잃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김화순 주택관리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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