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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백투더주간한국] 1968년 "KAL이 한진에 넘어간다던데?"

오는 12월 17일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품고 ‘통합 대한항공’으로 출범한다. 기단 규모만 약 230~235대 수준이 되는 통합 대한항공은 세계 10위권의 ‘메가 캐리어’(초대형 항공사)로 올라서게 된다. 물론 글로벌 10위권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백투더주간한국] 1968년 "KAL이 한진에 넘어간다던데?"

[편집자주] 1964년 9월 27일. 국내 첫 주간지 ‘주간한국’은 32면의 타블로이드판 시사주간지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창간 후 4년 뒤 주간한국은 41만 5000부를 인쇄하면서 국내 일간지 및 종합지 등 모든 정기간행물을 통틀어 최대 부수를 발행했습니다. 오락이 배고프던 때 당시 8면이던 일간신문으로는 요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대중가요가 지면에 소개된 것은 주간한국이 처음이었습니다. 삼성 이병철 회장과 유일하게 생포된 무장간첩 김신조를 단독 인터뷰한 것도 주간한국이었습니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플랫폼이 난무하는 현시대에 과거 주간한국의 기지와 재미, 엉뚱한 착상 등을 되살릴 수 있는 콘텐츠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시대가 변해도 소재만 다를 뿐 주간한국 전성기의 제작 기법은 현재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주간한국 19768년 11월 24일(제218호)자 10면에 보도된 대한항공 관련 기사. 사진=주간한국DB

[주간한국 박현영 기자] 오는 12월 17일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품고 ‘통합 대한항공’으로 출범한다. 기단 규모만 약 230~235대 수준이 되는 통합 대한항공은 세계 10위권의 ‘메가 캐리어’(초대형 항공사)로 올라서게 된다. 물론 글로벌 10위권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대한항공은 인수 과정에서 많은 고난과 역경을 거쳐야 했다.

앞서 대한항공은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들여 수년간 협상을 진행했다. 독과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매각 및 중복 노선 및 슬롯 반납 등도 감수해야 했다. 양사 임직원 갈등과 마일리지 통합 등 소비자 우려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또 재무 부담과 관련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통합 항공사로 시너지를 내기도 전에 아시아나항공 빚 부담을 지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어려움을 담담히 받아내는 모습이다. 이미 2020년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의부터 예상했던 상황이라는 것. 대한항공 측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에 많은 고민을 했으나 창업 이념인 ‘수송보국(수송을 통해 국가에 이바지한다)’을 바탕으로 양 항공사와 관련 업체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보전하고 대한민국 항공 산업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한항공이 강조한 수송보국은 이미 60여 년 전에도 국내 항공 산업에 큰 영향을 준 바 있다. 대한항공이 공기업인 ‘대한항공공사’일 당시, 1969년 3월 한진그룹(당시 한진상사)은 과감히 대한항공을 인수했다. 당시 여론은 ‘항공사=국위(국가 권위)’ 인식에, 항공사 민영화를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당시 한진상사는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할 적기로 판단했다. 대한항공공사도 1968년 늘어나는 적자와 이어지는 사고로 변화가 절실했던 시점이기도 했다. 결과론적으로도 당시 한진의 대한항공공사 인수는 한국 항공 산업의 꼭 필요했던 결정으로 남았다.

주간한국 1968년 11월 24일자(제218호) 10면에는 ‘KAL이 한진에 넘어간다던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한진상사의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약 3개월 앞두고 나온 전망 기사다. 기사 속 당시 분위기를 살펴보면, 정부는 대한항공공사 민영화를 낭설이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한진은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으며 인수 준비에 나선 모습이 보인다.

다만 당시 주간한국은 항공사 민영화가 대한항공공사의 문제를 모두 풀 것으로 전망하진 않았다. 기사에는 “KAL(대한항공공사)의 민영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적자와 말썽의 덩어리처럼 생각됐던 KAL이 민영화라는 탈을 쓰면 이 모든 것이 그대로 풀려 없어질 것인지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한진상사가 이미 항공사 운영 준비를 마친 최우선 기업이라는 것 역시 부인하지 않았다. 기사는 “KAL의 후계자로 알려진 한진은 이미 한국항공이라는 민간항공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만큼, 민항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던 팀”이라고 인정했다.

기사에 따르면 한진상사는 1968년 당시 월남(남베트남)에서 에어택시업(헬리콥터 사업)을 시작, 큰 작업장을 만들었다. 이때 코니 4발기(4개 프로펠러 여객기)를 사들여 에어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서울~사이공(베트남 호찌민)’ 간 국제선 부정기 운항 중이었다. 이때 한진상사는 민항 운영에 자신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진상사는 정부에 서울-사이공 취항을 정식으로 신청했다. 특히 정기취항 허가를 해주면 약 700만 달러가 드는 보잉 727기급의 제트 여객기를 들여와 취항하겠다고 정부에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먼저 비행기를 사오면 허가해 주겠다”며 거절했다. 주간한국은 “대한항공공사가 동남아 노선을 취항할 기회가 있다고 보고, ‘실력있는 한진’과 경쟁을 미리 막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해석했다.

문제는 거절이 이어지는 동안 대한항공공사에 악재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대한항공공사가 미국으로부터 시간당 570달러라는 비싼 가격으로 임대해 온 코니 4발기는 3개월 만에 1억여 원의 빚더미만 남기고 뜨지 못했다. 임대 가격이 비싼 이유도 있지만, 서울-타이베이-홍콩 노선을 정기 취항하면서 노선 조사나 판매 촉진을 무시해 승객이 모이지 않은 점이 컸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코니 기를 임대할 때 커미션(중개료) 부정 사건이 있었고, 공사 경영진이 바뀔 만큼 사태가 커져 버렸다. 여기에 미국 하와이 알로하항공사로부터 임대해 온 페어차일드기 2대가 잇따라 사고에 휩싸이고, 1967년 8월 도입한 DC-9기(제트기)가 원인 모를 고장으로 창고에 들어가게 되면서 적자가 극심해졌다. 착실한 경영으로도 어려웠을 대한항공공사는 잇따른 사건으로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주간한국은 “이때부터 민영화 문제는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개발도상국의 민항이 대부분 국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공통된 ‘틀’을 벗어나 적자와 경영 불합리에 지친 정부는 착실히 민영화를 전제로 한 자체 정비를 남모르게 해왔다”며 정부의 긍정적인 분위기도 전했다. 특히 “서울-사이공 간의 정기 취항 신청, 보잉727기의 도입 등 민항에 참여 의사를 보인 한진이 여기 KAL의 후계자로 나타난 것”이라며 한진이 매우 유력하다고 관측했다.

물론 당시 여론은 항공사 민영화를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프랑스가 해마다 의회 등의 반대에도 에어프랑스를 국영항공사로 운영하고 있는 점은 민영화 반대의 단골 소재였다. 또 기존 비행기로도 흑자 전환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인데 한진이 막대한 돈을 들여 제트기를 도입할 것인지 물음표를 그리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결과로만 보면, 대한항공공사의 민영화는 한국 항공 산업 발전을 불러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실제 1969년 항공기 8대였던 대한항공은 60여 년이 지난 현재 230여 대의 세계 10위권 항공사로 발돋움했다. 현재도 대한항공은 메가 캐리어로서 글로벌 초대형 항공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박현영 기자 hypar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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