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배터리 업계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과 가격 경쟁 심화라는 과제를 마주한 가운데 차세대 배터리 기술의 무게중심이 새로운 응용처로 옮겨 가는 모습이다. 미래 기술을 넘어 산업 전반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는 배터리 기술 경쟁축 역시 에너지 밀도 향상에서 원가 절감, 공급망 내재화, 현지 생산, 재활용 체계 구축으로 넓어지고 있다.
SNE리서치는 16일 서울 강남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Next Generation Battery Seminar 2026(NGBS 2026)'을 열고 글로벌 배터리 산업의 최신 기술 동향과 소재 기업들의 대응 전략을 공유했다.
전고체·반고체 배터리 개발 현황부터 AI(인공지능) 기반 배터리 개발 혁신, ESS(에너지저장장치)·데이터센터용 배터리 수요 확대, 양극재 포트폴리오 다변화, 유럽 현지화와 순환경제 전략까지 차세대 배터리 산업의 핵심 화두가 집중적으로 제시됐다.
NGBS 2026에서 이두연 SNE리서치 부사장이 'NEXT Gen’ Battery와 차세대 배터리 산업의 이해(UAM, 휴머노이드, 전기선박 등)'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장지현 이코노믹리뷰 기자
전고체 넘어 AI·로봇·UAM까지…배터리 적용처 급팽창
SNE리서치는 차세대 배터리가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닌 모빌리티와 AI 산업 전반에 실질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핵심 인프라임을 강조했다.
이두연 SNE리서치 부사장은 "배터리 산업은 이제 차량용 셀 경쟁을 넘어 새로운 전력 수요 산업 전반으로 적용처가 넓어지는 단계"라며 차세대 배터리 기술과 신시장 동향을 짚었다.
먼저 올해 초 열린 'CES 2026'과 주요 글로벌 전시 등 동향을 통해 전고체·반고체 배터리 개발이 한층 구체화됐다고 평가했다.
대만 프롤로지움은 FEV와 EV용 리튬 세라믹 배터리 모듈 콘셉트인 '초유체화 전고체 세라믹 배터리' 기술을 공개했다. 해당 기술은 동일한 배터리 팩 조건에서 주행거리를 1000km까지 확보하거나 차량 중량을 300kg가량 줄일 수 있는 혁신성을 보여줬다.
미국 퀀텀스케이프는 11분 만에 80% 충전이 가능한 전고체 전지 'QS5'를 두카티 모터사이클에 탑재하며 기술력을 입증했으며, 핀란드 도넛랩 역시 400Wh(와트시)/kg의 에너지 밀도와 10만회에 달하는 사이클 수명을 갖춘 전고체 전지를 발표했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도 매섭다. 상하이자동차(SAIC)는 반고체 배터리를 적용해 내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국가표준화관리위원회(SAC)는 전고체 전지 성능 평가 항목에 덴드라이트 억제 성능 등을 추가하며 표준 선점을 통한 패권 확보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배터리 기술의 진보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UAM(도심항공교통)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대차 수퍼널의 'S-A2'는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이며, 테슬라의 옵티머스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등 휴머노이드 로봇은 공장 및 가사 현장 투입을 앞두고 2~4kWh(킬로와트시)급의 고밀도 배터리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급격한 확산에 따른 ESS의 역할 변화도 핵심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 계통 안정화를 위한 BESS(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AI 데이터센터 역시 UPS(무정전전원장치)를 넘어 배터리를 전력관리 인프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수냉식(Liquid Cooling) 냉각 기술이 표준화되면서 20MWh(메가와트시)급 대용량 컨테이너 ESS가 등장하는 등 대형화 추세가 뚜렷하다. 이 부사장은 배터리 개발 과정 자체에도 AI가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SSAI와 같은 AI 플랫폼을 활용할 경우 과거 CPU(중앙처리장치) 기반으로 8500년이 걸리던 신소재 분자 구조 탐색 기간을 단 2개월로 단축할 수 있어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 시점은 더욱 앞당겨질 전망이다.
이 부사장은 "생성형 AI가 피지컬 AI로 진화하면서 로봇, 데이터센터, UAM이 모두 배터리 산업의 새 성장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NGBS 2026에서 남상청 포스코퓨처엠 센터장이 '포스코퓨처엠의 이차전지 소재 개발 전략'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장지현 이코노믹리뷰 기자
포스코퓨처엠, 포트폴리오 다변화·수직계열화로 승부
포스코퓨처엠은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배터리 수요의 구조적 확대는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의 승부는 원가 경쟁력, 소재 포트폴리오 다변화, 공급망 내재화에서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상철 포스코퓨처엠 센터장은 2025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2160만대를 기록하며 침투율 22%를 달성, 시장이 초기 도입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대중화(Mass Adoption)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 내 신차 판매 중 전기차 비중이 50%를 넘어서는 등 시장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남 센터장은 "소재 혁신과 공정 혁신을 동시에 이뤄야 레이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밝혔다.
포스코퓨처엠은 시장 변화에 발맞춰 기존 NCM(니켈·코발트·망간) 중심에서 LFP(리튬·인산·철) 및 수명이 대폭 향상된 나트륨이온배터리(NFPP) 소재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특히 리튬 과잉 망간 기반 양극재(LMR)와 미드니켈(Mid-Ni) 기술을 통해 보급형 시장의 경제성과 고성능 시장의 효율성을 동시에 잡겠다는 복안이다.
음극재 부문에서도 독보적인 기술력이 강조됐다. 저비용 흑연화 공정을 통한 인조흑연 생산, 최근 차세대 소재로 각광받는 증착형 실리콘(Si-C) 등 고성능 제품군을 확보해 충전 속도와 에너지 밀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남 센터장은 포스코그룹이 보유한 최대 강점으로 리튬, 니켈 등 핵심 광물 확보부터 전구체 생산, 양·음극재 제조, 리사이클링까지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Vertical Integration) 체제를 꼽았다.
연구개발 과정에는 AI와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극 도입해 신소재 발굴 기간을 단축하고 제조 공정의 효율을 혁신함으로써 글로벌 배터리 소재 시장에서 독보적인 리더십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다.
남 센터장은 "우리는 단순한 소재 공급사가 아니라 양극재와 음극재를 최적 조합해 고객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라며 "소재·공정 혁신, 강한 밸류체인 통합, 통합형 공급 역량이 포스코퓨처엠의 핵심 비전"이라고 말했다.
NGBS 2026에서 오동구 에코프로비엠 상무가 '에코프로비엠의 차세대 양극재 개발영향'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장지현 이코노믹리뷰 기자
에코프로비엠, 유럽 현지화·재활용 강화가 다음 승부수
에코프로비엠은 전기차 시장이 가격 중심으로 재편되는 국면에서도 하이니켈 양극재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편, 하이볼티지 미드니켈(HVM)·LFP·LMR·나트륨이온배터리(SIB)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혀 시장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오동구 에코프로비엠 상무는 "과거 하이니켈과 LFP의 구도가 비교적 명확했지만 이제는 중간 영역에서 HVM, LMR, SIB 등이 새롭게 침투하며 시장이 다변화하고 있다"며 "고객 요구에 맞춘 최적 솔루션 제공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30년 기준 양극재 시장은 EV용 약 482만톤, ESS용 약 150만톤 규모로 전망되며 EV에서는 하이니켈 비중이 40%대 수준에서 형성되고 ESS는 사실상 LFP가 주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코프로비엠은 하이니켈 시장 개척자로서 확보한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부터 엔트리급 세그먼트까지 아우르는 '풀 라인업' 체제를 가속화하고 있다. 기존 NCA 중심에서 NCM으로 제품군을 확장하고 니켈 함량 94% 이상의 울트라 하이니켈 제품을 통해 에너지 밀도 극대화와 소재 비용 절감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가격과 성능의 균형을 맞춘 중저가형 솔루션이다. 단결정 기술을 적용한 4.5V(볼트) 고전압 미드니켈 양극재와 니켈 함량을 40% 이하로 낮추면서도 망간 비중을 높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LMR 소재 개발 현황을 공유했다.
국내 최초로 오창에 연간 4000톤 규모의 LFP 전용 라인을 구축해 고객사 샘플 대응 및 양산을 진행 중이며, SIB 등 차세대 소재에 대해서도 중국 경쟁사 동등 이상의 성능을 확보하기 위한 도핑 및 코팅 기술 고도화에 매진하고 있다.
글로벌 거점 전략은 유럽 시장에 집중된다. 헝가리 데브레첸에 건설된 제1공장은 연간 5만4000톤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출하를 시작했다. EU(유럽연합)의 핵심원자재법(CRMA)과 배터리 규정 등 역내 생산 및 재활용 원료 사용 의무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오 상무는 "2030년 이후 양극재는 반드시 현지화를 달성해야 한다"며 "헝가리 캠퍼스가 삼성SDI, CATL, 이브에너지 등 주요 고객사와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유럽 시장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코프로 그룹은 리사이클링부터 양극재 생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클로즈드 루프 시스템(Closed-Loop System)'으로 차별화 전략을 꾀한다는 방침이다. 폐배터리에서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을 회수해 다시 신규 배터리 소재로 투입하는 이 체계는 자원 순환을 넘어 강력한 원가 경쟁력의 원천이 될 전망이다.
오 상무는 "유럽 시장은 이제 로컬 포 로컬(Local for Local)과 재활용 의무가 동시에 강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현지 생산, 통합 밸류체인, 폐배터리 재활용까지 결합해 고객의 공급 안정성과 원가 경쟁력을 함께 높이겠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