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미나이 생성이미지. [출처= 구글]
글로벌 자본 시장의 자금 흐름이 발전소 건설 등 에너지의 '양적 팽창'을 넘어, 전력을 연결하고 제어하는 '그리드(전력망) 인프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물리적 계통 병목 현상에 더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폭증, 중동 지정학적 위기가 맞물리면서 전력망 확보가 기업과 국가의 생존 문제로 직결됐기 때문이다.
블랙록 등 글로벌 거대 자본이 관련 밸류체인 선점에 전면적으로 나선 가운데, 국내외 증시에서도 전력기기 및 케이블 산업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250%가 넘는 폭발적인 수익률을 달성하며 자본시장의 확실한 '알파' 투자처로 급부상하고 있다.
◆발전소 지어도 연결 못 해…극심해진 계통 병목
최근 공개된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글로벌 재생에너지 설비는 5149GW에 도달해 전체 발전 설비의 절반(49.4%)에 육박했다. 그러나 주식 및 대체투자 시장의 자금은 발전 설비 자체를 넘어 전력망 인프라 영역으로 집중 유입되고 있다.
이러한 자본 이동은 단기적 테마 투자가 아닌 글로벌 매크로 환경의 구조적 변화에 기인한다. 1차적 원인은 기존 전력망의 물리적 한계다.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LCOE) 하락으로 경제성은 확보됐으나, 발전 용량 증가 속도가 송전망 확충 속도를 초과하면서 극심한 계통 병목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미국 내 전력망 연결을 대기 중인 발전 및 ESS 용량은 약 2290GW(발전 1400GW·저장장치 890GW)에 달한다. 신규 프로젝트가 계통 연결을 요청한 시점부터 상업운전(COD)에 돌입하기까지 걸리는 대기 시간 중간값은 과거 2년 미만에서 최근 4년 이상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전력망 확충이 선행되지 않는 한 발전소 투자의 기대수익률(IRR) 훼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AI 생존 경쟁과 지정학적 위기가 불붙인 인프라 투자
여기에 구조적 수요 폭증과 거시적 공급망 충격까지 더해지며 전력망 인프라로의 자본 유입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최근 리포트에서 2030년까지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23년 대비 220%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과거 예측치(175%)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AI 패권 경쟁을 벌이는 빅테크에게 전력 확보는 사실상 생존 문제가 됐다. 풍부한 잉여 자본(CAPEX)을 보유한 빅테크들은 전력망 업그레이드를 기다리기보다 직접 투자에 나서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70억 달러 규모로 발전소와 직접 장기 전력구매 계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미국과 이란의 갈등 격화로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정이 가시화된 점도 전력망 투자의 명분과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화석연료 공급망 붕괴 우려가 에너지 자립과 전력 효율화의 필요성을 증폭시킨 셈이다.
대한전선이 미국에서 케이블 포설을 하고 있다. [출처=대한전선 ]
◆전력 인프라 ETF 수익률 고공행진…뭉칫돈 블랙홀
주식 시장에서도 전력 인프라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며 폭발적인 수익률을 시현하고 있다. 나스닥에 상장된 'GRID ETF'의 운용자산(AUM)은 약 78억 달러 규모로, 1년 전 대비 58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관련 ETF들의 성과 역시 매섭다. 지난 3일 기준 'KODEX AI전력핵심설비'는 최근 1년 새 무려 253.4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상품의 순자산총액은 약 1조 8000억원에 달하며, 3개월 평균 거래대금 역시 1436억원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HANARO 전력설비투자' 역시 같은 기간 250.19% 급등하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어 'KoAct 글로벌친환경전력인프라액티브'(136.83%), 'TIGER 글로벌AI전력인프라액티브'(120.49%) 등도 세 자릿수 수익률을 달성하며 호조를 보였다.
◆송배전망 투자, 선택 아닌 생존…K-전력기기 수혜 랠리 기대
시장에서는 AI 시대의 도래로 전력 인프라 투자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닌 생존 문제로 직결되면서, 관련 밸류체인의 구조적 성장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I 사업자들에게 전력은 핵심 비용 요소이므로 경제성 확보도 중요하지만, 현재는 가격을 불문하고 실효 전력 공급 가능성 자체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장남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구체적인 수혜처로 송·배전망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지목했다. 그는 "송전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765kV 초고압 송전 및 장거리 초고압직류송전(HVDC) 투자가 미국, 유럽에서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등으로 본격화되고 있다"며 "이는 국내 전선 및 전력기기 밸류체인의 폭발적인 수주 증가를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1GW급 초대형 데이터센터의 증가로 배전단에서는 기존 다단계 교류 배전망의 한계를 극복할 '800V DC 아키텍처' 전환이 필수로 떠오르고 있다"며 "고부가가치 전력전자 설비와 직류 전용 기기라는 새로운 거대 시장이 열리면서, LS일렉트릭, 산일전기 등 관련 기술을 선점한 국내 업체들이 집중적인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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