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
▲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
전력은 단순한 시장재가 아니다. 공급과 가격의 안정성, 혹은 그 변동성 자체가 사회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공공재다. 최근의 전쟁과 지정학적 갈등은 이러한 사실을 국민 모두에게 다시금 환기시켰다. 에너지 공급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에너지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인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반도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더 문제이다. 이 산업들의 발전은 에너지가 가진 근본적 불안정성 문제를 한층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앞으로 더 많은 전력을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더 높은 수준의 공급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전력의 ‘양’과 ‘질’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이러한 과제를 감당할 수 있도록 잘 정비되어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전의 발전 부문이 6개의 공기업으로 분할된 후 이 공기업들은 규모의 경제도 실현하지 못하고 서로와 제살깎아먹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 분할 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는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을 반복해 왔다. 경쟁과 통합, 민간과 공공, 효율과 공공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수십 년째 되풀이되고 있으며, 변화된 환경에 부합하는 구조적 해법은 여전히 명확히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발전공기업의 역할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그동안 공기업 발전의 상당 부분을 담당해 온 석탄화력발전소는 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폐지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안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발전공기업의 역할은 심각할 정도로 제한적이다. 정부가 시장과 민간을 활용하여 에너지전환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발전공기업은 주변부로 밀려나고 그 역할은 더욱 미미해질 것이다.
발전공기업의 역할이 위축되면, 과연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에너지전환이 가능할 것인가. 또한 에너지 문제에 대한 국가의 전략적 대응 능력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긍정적일 수 없다. 무엇보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전력망이 사실상 고립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전력산업을 일반적인 경쟁 산업과 동일한 논리로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발전공기업이 에너지전환을 주도하는 것이 에너지 안보를 위해 매우 중요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국가 주도의 전략 아래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속화하며, 일관된 정책 방향과 대규모 투자 역량을 결합해 에너지 체계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빌전공기업의 적극적인 역할이 산업 전반의 경쟁력과 경제 성장을 결정하는 관건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외환위기 직후 분할된 현재의 발전공기업 체제는 한계에 봉착해 있다. 개별 기업 단위로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투자와 장기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어렵고, 기업 간 중복 투자와 비효율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가 차원의 에너지전환을 책임질 실행 주체가 분산되어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정책과 실행 사이의 괴리를 구조적으로 확대하는 요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정부 최고 수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기업 구조 전반에 대해 분산된 운영 체계가 불필요한 중복 투자와 비용 증가를 초래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여러 공기업이 유사한 기능과 사업을 나누어 수행하는 현재의 구조는 규모의 경제를 살리지 못한 채 행정적·재무적 비효율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전력산업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발전공기업을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한편 발전공기업의 경우 통합의 필요성을 단순히 ‘비효율 제거’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규모의 확보’다. 재생에너지, 특히 해상풍력과 같은 분야는 초기 투자 규모가 크고 사업 기간이 길며, 기술적·재무적 리스크도 높다. 이러한 사업은 분산된 개별 공기업이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발전공기업 통합은 단순한 조직 슬림화나 비용 절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재편이어야 한다. 자본과 기술, 인력을 결집하여 재생에너지 사업의 개발–건설–운영 전 과정을 책임지는 통합적 주체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발전공기업은 해상풍력과 같은 초대형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으며, 에너지 안보 강화와 산업 경쟁력 제고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물론 통합 과정에서 비효율과 경쟁 약화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따라서 투명한 거버넌스 구축, 성과 중심의 운영 체계 마련 등 보완 장치 역시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분산 구조가 가진 한계를 고려할 때 통합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인 방향에 가깝다. 발전공기업 통합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대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적 실행 주체’를 형성하는 전략적 선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국 전력산업은 지금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대통령이 지적한 공기업 구조의 비효율 문제를 해소하는 동시에, 에너지전환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대형화 전략을 결합해야 한다. 분산과 경쟁의 논리를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통합을 통해 실행력을 확보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은 없다. 발전공기업 통합을 통해 전환을 주도할 역량을 확보하고, 그 위에서 한국 전력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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