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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종면칼럼] 삼성전자 위기론의 종언과 미완의 '초격차'

이번 반전의 핵심은 냉정하게 말해 삼성 내부의 기술 혁신 등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인공지능(AI) 메모리 슈퍼사이클 덕분입니다. AI 데이터센터 확장과 고성능 연산 수요 급증이 메모리 가격을 끌어올리고, 공급자 우위...

[박종면칼럼] 삼성전자 위기론의 종언과 미완의 '초격차'

1분기 57조원 영업익·연간 300조원 예상도

남들이 못따라오는 구조적 '해자' 만들어야

'반도체 사이클 수혜자' 벗어나야 주가 폭발

이재용 회장 리더십 이제부터 진짜 '시험대'

삼성전자의 위기는 이제 끝난듯합니다. 올 1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57조2000억원에 이르렀습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43조6000억원을 한 분기 만에 넘어섰고, 역대 연간 최고치였던 2018년 58조8900억원에도 육박하는 규모입니다. 시장 일각에서는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300조원 안팎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재계와 시장을 뒤덮었던 '삼성전자 위기론'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라고 할 만합니다. 적어도 손익과 체력의 측면에서만 보면 이제 삼성전자를 두고 '위기 기업'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곧바로 "삼성전자가 초격차 기업으로 돌아왔다"고 선언하는 것은 너무 성급합니다. 위기의 종료와 초격차의 복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위기는 실적으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격차'는 숫자 몇 개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초격차란 기술과 조직, 인재와 투자, 고객 신뢰와 사업 구조가 경쟁자들이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섰을 때 비로소 붙일 수 있는 이름입니다. 이제 삼성은 분명 위기 국면에서는 빠져나왔지만 초격차 복귀를 말하기에는 아직 검증해야 할 것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반전의 핵심은 냉정하게 말해 삼성 내부의 기술 혁신 등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인공지능(AI) 메모리 슈퍼사이클 덕분입니다. AI 데이터센터 확장과 고성능 연산 수요 급증이 메모리 가격을 끌어올리고,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되면서 삼성전자 같은 초대형 메모리 업체의 이익이 폭증한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HBM4 출시를 공식화하고, 전영현 부회장 체제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회복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이번 57조원의 영업이익이 삼성전자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메모리의 초강세가 실적을 강하게 밀어 올린 반면 비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 쪽은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삼성전자 전체가 구조적으로 완전히 부활했다기보다 메모리 초호황의 힘을 크게 빌린 실적 반전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1년 전만 해도 위기였던 삼성전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삼성 내부의 실행과 노력을 과소평가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재용 회장의 위기 인식, 전영현 부회장의 조직 재정비, HBM 공급망 복원, 주요 고객사 신뢰 회복은 분명 이번 반전의 중요한 배경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성은 HBM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렸고, 파운드리는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으며, 모바일과 가전에서도 예전 같은 압도적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런 회사가 1년 만에 이런 실적을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가볍게 볼일이 아닙니다. 다만 57조원이라는 숫자를 보고 "이제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판단하는 순간 삼성은 다시 과거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한때의 성공에 매몰돼 HBM 시대의 도래를 놓쳤던 그 익숙한 함정 말입니다.

지난 10년간 삼성이 겪었던 위기를 돌아보면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실적 부진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것은 기술과 투자, 조직의 민첩성이 둔화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삼성은 오랫동안 메모리 절대강자였고 반도체·스마트폰·가전·디스플레이를 아우르는 세계적 종합전자회사였습니다. 문제는 그 성공이 너무 컸다는 데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은 대개 자신을 무너뜨리는 위험이 바깥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 치명적인 적은 안에서 자랍니다. 느려진 판단, 보신주의, 스스로에 대한 과신, 익숙한 공식에 대한 집착이 그렇습니다. HBM에서의 실기, 파운드리 경쟁력 약화, 외부 인재 유입 둔화와 내부 인재 유출은 그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실적의 초격차'가 아니라 '구조적 초격차'입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바로 '해자(垓子, Moat)'입니다. 원래 성곽 바깥을 둘러싼 물길을 뜻하는 해자는, 기업 경영에서는 경쟁자가 쉽게 넘어올 수 없는 구조적 방어선을 뜻합니다. 일시적인 가격 급등이나 업황 호조는 해자가 아닙니다. 수급이 바뀌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해자는 호황이 지나도 남습니다. 고객이 쉽게 떠나지 않는 이유, 경쟁자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기술, 장기 계약을 가능하게 하는 신뢰, 외부 인재가 들어오고 내부 인재가 남고 싶어지는 문화,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선제 투자할 수 있는 의사결정 체계가 모두 해자의 일부입니다. 해자의 경제적 의미는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1980년대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한 이후 널리 확산됐습니다.

'실적의 초격차' 아닌 '구조적 초격차'

애플, 엔비디아, 구글, TSMC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결국 이 해자 때문입니다. 애플은 단순히 아이폰을 많이 팔아서 주가가 높은 회사가 아닙니다. 브랜드와 생태계, 서비스 사업, 고객이 쉽게 떠나지 못하는 잠금 효과가 강한 해자를 이룹니다. 엔비디아는 AI 칩을 많이 팔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칩 위에서 AI 프로그램이 돌아가도록 만든 소프트웨어 환경과 개발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강합니다. 구글은 검색과 광고, 클라우드와 데이터, 플랫폼이 해자입니다. TSMC는 첨단 공정의 높은 수율과 고객 신뢰, 제조 역량, 공급망 장악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방어선입니다. 이들 기업은 단지 많이 버는 기업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많이 벌 가능성이 높은 기업입니다. 시장이 높은 몸값을 주는 이유는 현재의 숫자 자체보다 그 숫자를 오래 지켜낼 구조에 있습니다.

반면 지금의 삼성전자는 막대한 이익을 내고도 여전히 '반도체 사이클의 수혜자'라는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삼성전자 주가가 실적 폭발에 비해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시장은 삼성전자의 실적에는 환호하지만 그 실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끝난 뒤에도 삼성이 지금 수준의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HBM 세대가 바뀔 때마다 선두를 지킬 수 있는지,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까지 포함한 AI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여전히 유보적이고 회의적이기까지 합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 삼성전자 이익의 상당 부분은 아직 '구조적 해자'에서 나온 이익이라기보다 '상품 가격 급등이 만들어낸 초과이익'의 성격이 강합니다.

삼성이 진짜 초격차 기업으로 복귀하려면 몇 가지를 증명해야 합니다. 우선 HBM과 차세대 메모리에서 SK하이닉스를 멀찍이 따돌리고 다시 선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 세대 늦게 따라가거나 조금 앞서는 방식으로는 초격차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가장 먼저 설계하고, 가장 먼저 고객 검증을 통과하고, 가장 먼저 대규모 양산을 하는 회사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을 메모리와 연결해 AI 시대의 통합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메모리 한 축에 실적을 크게 의존하는 구조로는 업황의 파고를 넘을 수는 있어도 구조적 프리미엄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또 다년 계약과 고객 맞춤형 제품, 공급망 확대를 통해 메모리 산업 특유의 큰 변동성을 줄여야 합니다. 메모리도 더 이상 예전처럼 단기 가격 싸움만 하는 산업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외부 인재를 과감히 영입하고 내부 인재가 미래를 느낄 수 있는 조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기술 기업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에서 나옵니다.

애플·엔비디아·구글과 삼성전자의 차이

300조원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한국 기업사를 다시 쓰는 사건입니다. 삼성전자의 2018년 연간 최고 영업이익 58조8900억원의 5배를 넘고, 지난해 연간 실적과 비교하면 거의 7배에 이릅니다. 이 정도면 단순히 사상 최대 실적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 벌 수 있는 돈의 상한선 자체를 새로 쓰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동시에 초호황을 누리면서 한국 증시 전체의 이익 구조를 뒤흔드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가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냉정해야 합니다. 숫자가 너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구조적 귀환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늘 숫자 다음을 봅니다. 이 300조원이 훗날 '초격차의 귀환'으로 기록될지 아니면 'AI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최대 수혜기'로만 기억될지는 앞으로의 행동이 결정합니다.

더구나 삼성전자의 지난 위기는 외부 변수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법 리스크가 길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모든 실패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삼성은 변화의 흐름을 읽는 데 여러 번 늦었고, 특히 AI 전환 국면에서 HBM이라는 결정적 전장을 놓쳤습니다. 결국 초격차의 핵심은 "누가 더 좋은 업황을 만났느냐"가 아니라 "누가 업황과 무관하게 경쟁우위를 유지하느냐"에 있습니다. 업황이 도와주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업황이 꺾여도 버티고, 다시 먼저 치고 나가는 기업만이 진짜 초격차 기업입니다. 그래서 삼성이 지금부터 쌓아야 할 것은 '한 분기 실적 신기록'이 아니라, 불황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적 해자'입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역사가 된 이유

이 점에서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도 이제부터가 시험대입니다. '사즉생', '독한 삼성' 같은 메시지는 분명 위기의식을 드러냈고, 지금의 반전도 그런 위기 인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말보다 행동을 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역사적 사건으로 남은 것은 강한 말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진 조직 재편과 인사, 품질 혁신, 충격요법 때문이었습니다. 삼성의 이번 실적 반전도 같은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번 돈을 어디에 쓰는지, 누가 중용되는지, 어떤 사업을 정리하고 어떤 사업에 더 크게 베팅하는지, 어떻게 인재를 붙들고 데려오는지가 중요합니다. 초격차는 오너의 메시지에서 시작될 수는 있어도 결국 실행의 누적으로 완성됩니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펴낸 '다시, 초격차'도 결국 같은 문제를 던집니다. 그는 과거의 성공 공식에 갇히는 '성공의 저주'를 경계했고, 빠른 추격만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고 짚었습니다. 지금 삼성에 꼭 필요한 경고입니다. 이번 1분기 영업이익 57조원이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또 하나의 성공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삼성 안에 구조적 해자를 다시 쌓는 출발점이 돼야 합니다.

위기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초격차는 아직 아닙니다. 삼성전자가 다시 초격차 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많이 버는 기업이 아니라 많이 벌 때조차 다음 위기를 먼저 준비하는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승리 선언'은 아직 이릅니다. 이번 분기의 실적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삼성이 진짜로 복귀했음을 증명하는 것은 영업이익 57조원이 아니라 그 뒤에 세워질 '구조적 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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