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팔아도 역마진 결손부터 메워야" 선언
"주주 배당 재원은 되고 계약자 배당은 안돼"
헌법소원·삼성생명법·신뢰 상실 '역풍' 우려도
이재용·정현호·박학규 '삼성 수뇌부' 결단해야
삼성생명이 마침내 전자공시를 통해 논란이 많은 유배당 보험상품 계약자 배당 문제에 대한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삼성전자가 최근 올해 상반기 16조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히자 삼성생명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더 팔더라도 유배당 계약자들에게 돌아갈 추가 배당 재원은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공식화했습니다. 삼성전자 주가가 올 들어 폭등해 시가총액이 1200조 원을 넘나들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51%의 가치도 100조 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따라서 이 공시는 사실상 계약자 배당은 절대 없다는 '방어 선언'이라고 봐야 합니다.
삼성생명이 1980년대에 집중적으로 취득한 삼성전자 지분 8.51%의 평균 취득단가는 현재 주가로 환산하면 주당 1072원 안팎이고 장부상 총 취득금액은 5444억 원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돈의 출처입니다. 1990년 이전 국내 보험시장은 유배당 보험이 거의 전부였고, 따라서 삼성생명이 이 주식을 살 때 쓴 돈의 대부분은 유배당 보험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였습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가 '껌값'이던 시절 유배당 계약자들의 보험료를 바탕으로 지분을 확보했고, 그 지분은 지금 100조 원대 자산으로 불어났습니다. 오늘의 논란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삼성생명이 최근 공시에서 공개한 유배당 계약 현황을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유배당 보험계약은 148만 건이고 1986년부터 2022년까지 31차례에 걸쳐 지급한 계약자 배당은 총 3조9000억 원입니다. 반면 같은 기간 삼성생명이 이익잉여금으로 메운 유배당 결손은 누적 11조3000억 원에 달합니다. 회사는 유배당 계약의 평균 보장수익률이 7%인 반면 자산운용수익률은 4% 수준에 머물러 역마진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그동안 회사가 대신 메워왔으니 지금도 먼저 결손부터 털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또 삼성생명은 금산법 준수를 위해 지난해 삼성전자 주식 425만2000주, 2330억 원어치를 처분했지만 그 매각이익을 유배당 계약에 배분해도 전체 손익은 여전히 결손이어서 추가 배당 재원은 생기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앞으로도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소각하고, 삼성생명이 금산법 준수를 위해 삼성전자 지분을 추가 매각하더라도 같은 이유로 계약자 배당 재원은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입니다.
공시를 통해 드러난 삼성생명의 속내
이 같은 방침 아래 삼성생명은 지난 19일 이사회를 열고 즉각 움직였습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16조원 자사주 소각으로 삼성화재와의 합산 지분율이 금산법상 상한인 10%를 넘길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삼성전자 주식 733만5931주, 0.13%를 블록딜 방식으로 선제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3월 18일 종가 기준 삼성생명의 처분액은 약 1조3020억 원입니다. 삼성생명은 유배당 상품 계약자 배당 요구가 나올 때면 "삼성전자 지분은 함부로 못 판다"고 했는데 금산법 앞에서는 먼저 팔았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삼성전자 지분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됩니다.
삼성생명의 자기모순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도 유배당 계약 계정은 여전히 결손이어서 배당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삼성전자 지분 매각이익을 주주환원 재원에는 적극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습니다. 매각이익이 주주 배당 재원은 될 수 있지만 유배당 계약자 배당 재원은 될 수 없다는 이중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계약자 몫은 회계상 '자본'으로 묶어두고 주주 몫은 현금으로 나눠주는 구조입니다. 이쯤 되면 회계가 아니라 '회피와 꼼수'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이 지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51%, 100조 원은 과연 누구 몫입니까? 이 지분은 이재용 회장 등 삼성 오너 일가의 사재로 취득한 자산이 아닙니다. 삼성생명 주주들이 따로 출자해 산 것도 아닙니다. 핵심 취득 재원은 유배당 계약자들이 납입한 보험료였습니다. 다만 삼성생명은 오랜 기간 자산운용 과정에서 회사의 고유계정 자금과 보험계정 자금이 혼합돼 운용됐고, 따라서 현재의 경제적 귀속을 단순히 '전부 유배당 계약자 몫'으로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삼성 측 논리를 100% 수용하더라도 지금의 삼성전자 지분 평가익 100조 원의 출발점이 유배당 계약자 보험료였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삼성전자 지분 평가익 100조, 누구 몫인가
삼성생명과 보험업계는 계약자 배당과 관련해 그동안 주주 70, 유배당 계약자 30 또는 주주 40, 유배당 계약자 30, 무배당 계약자 30이라는 논리를 펴왔습니다. 이 비율이 법에 그대로 박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감독규정과 업계 관행, 그리고 회사의 자본 혼합과 투자 위험 부담 논리를 근거로 그렇게 주장해 왔습니다. 쉽게 말해 "돈의 출발은 계약자였지만 오랜 운용 과정에서 현재의 이익 전부를 계약자 몫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삼성생명의 논리는 약해집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1200조 원을 넘긴 가격대를 기준으로 보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8.51% 가치는 100조 원을 훌쩍 넘고, 투자 원금도 5444억 원에 불과해 평가익 역시 100조 원을 넘습니다. 따라서 삼성생명 주장대로 30%만 유배당 계약자 몫으로 잡아도 대략 30조 원이 됩니다. 여기에 삼성생명이 주장하는 누적 결손 보전액 11조3000억 원을 모두 인정하더라도 19조 원 정도 남습니다. 이미 이 계산만으로도 "줄 돈이 없다"는 말은 근본부터 흔들립니다.
더 보수적으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51%의 절반만 매각해도 실현 매각익은 50조 원이 되고, 그중 30%면 15조 원이 됩니다. 15조 원에서 그동안의 결손액 11조3000억 원을 차감해도 4조 원 정도가 남습니다. 삼성생명 논리를 100% 이상 수용하고도 계약자에게 돌려줄 돈이 생긴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지분을 팔아도 배당은 어렵다"고만 말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회계의 문제가 아니라 '배 째라'는 식의 주장과 다를 게 없습니다.
삼성생명이 이렇게 버티는 가장 큰 이유는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번 유배당 계약자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하면 "왜 이제야 주느냐", "왜 그동안 자본으로만 쌓아뒀느냐", "왜 주주 배당은 하면서 계약자 배당은 안 했느냐"는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집단소송과 국회의 입법 압박까지 더해질 수 있습니다. 삼성 입장에서는 얼마의 계약자 배당이 문제가 아니라 그 순간부터 시작될 거대한 논란이 더 두려울 것입니다.
삼성생명이 배당 못하겠다는 이유와 모순점
또 하나의 이유는 지배구조 불안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과장된 측면이 큽니다. 삼성전자 지배구조는 삼성생명의 8.51% 한 축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삼성물산(5.05%), 삼성화재(1.49%), 이재용 회장(1.65%)을 포함한 삼성 일가 보유분(4%)이 다층적으로 결합돼 있습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상속세 마련과 금산법 대응 차원에서 일부 지분을 처분했지만 삼성전자 지배구조가 흔들렸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1000조 원을 넘기고 실적과 시장 신뢰가 지배력의 핵심이 된 시대에 일부 지분 처분이 곧바로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이어질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일부 지분을 정리해도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혹시라도 '호국 기업' 삼성전자를 해외 행동주의 펀드 등이 공격한다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연금, 국내 기관투자가, 개미투자자들이 나서 삼성전자를 지켜줄 것입니다.
지금처럼 삼성생명의 '100조 원 자산'을 일군 유배당 계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미룬 채 버티기로 일관할 경우 뒤따를 문제도 분명합니다. 우선은 법적 충돌입니다. 이미 현행 보험업감독규정이 계열사 지분 보유 한도를 '취득원가 기준'으로 계산해 계약자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 가능성이 공개적으로 거론됐습니다. IFRS17 이후 일탈회계가 중단되면서 2010~2011년 유배당 소송에서 삼성생명이 승소했던 전제, 곧 "매각하지 않았으니 아직 계약자에게 귀속될 이익이 없다"는 논리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이 문제는 삼성생명 내부의 회계 계산이 아니라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가 동시에 개입하는 공적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음으로 우려되는 것은 입법 충돌입니다. 이른바 '삼성생명법'은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액을 취득원가가 아니라 시가로 평가해 총자산의 3%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법안이 다시 힘을 받게 되면 삼성생명은 지금처럼 통제 가능한 일부 자발 매각이 아니라 훨씬 더 거칠고 더 큰 규모의 강제 해법을 맞게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픈 대목은 신뢰의 상실입니다. 삼성과 이재용 회장, 이찬희 준법감시위원장은 늘 책임경영과 법 준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유배당 보험계약자처럼 가장 오래 40여 년을 기다려온 사람들 앞에서는 회계와 법률의 방패 뒤로 물러서는 모습만 보인다면 사람들은 삼성이 과연 누구의 돈으로 무엇을 지켜왔는지 다시 묻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삼성전자 지배구조를 든든하게 지키는 일등 공신은 148만 삼성생명 유배당 계약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끝없는 버티기로 일관한다면 삼성은 지배구조는 지킬지 몰라도 고객과 국민 다수의 신뢰는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늘이 준 기회 걷어차면 생기는 일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이 타협과 절충입니다. 삼성생명의 홍원학·이승호 사장과 이재용 회장, 정현호 상임고문, 박학규 사업지원실장 등 삼성그룹 수뇌부는 "1주도 못 판다"는 식의 경직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삼성전자 지분을 일정 규모 단계적으로 처분해 먼저 유배당 계정의 누적 결손을 정리하고, 남는 금액은 고령의 계약자들에게 배당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이것은 삼성전자 지배구조를 무너뜨리는 결정이 아니라 국회 입법과 헌법소원, 집단소송이라는 훨씬 더 큰 충격을 피하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지금처럼 삼성전자가 강할 때, 삼성전자 주가가 높을 때, 삼성전자에 대한 시장의 지지가 두터울 때 일부를 내놓는 것이야말로 삼성 스스로 가장 낮은 비용으로 오랜 숙제를 정리하는 길입니다.
이 대목에서 금융당국의 책임도 가볍지 않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이후 금융 소비자 보호 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올해 업무계획에서는 소비자 보호를 금감원의 최우선 가치로 확립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삼성생명 유배당 계약자 문제야말로 보험산업에서 가장 상징적인 소비자 보호 사안임을 알아야 합니다. 회계 정상화와 공시 개선에만 머물고, 정작 148만 건 계약이 걸린 권리 문제에는 한 발 물러서 있다면 소비자 보호라는 구호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 '사기'에는 '천여불취 반수기앙(天與不取 反受其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늘이 준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면 오히려 화를 입는다"는 뜻입니다. 지금 삼성 앞에 놓인 선택이 바로 그렇습니다. 삼성생명은 이미 삼성전자 지분은 팔고 있습니다. 남은 것은 누구 몫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교한 방어 논리가 아닙니다. 늦기 전에 한발 먼저 움직이는 결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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