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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박영서의 외신 다이제스트] ‘무기 부자’ 사우디의 굴욕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기 부자’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사우디는 지난해 832억달러(약 113조원)를 국방비로 썼다.

박영서 논설위원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기 부자’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사우디는 지난해 832억달러(약 113조원)를 국방비로 썼다. 덕분에 미국산 F-15SA 전투기와 패트리엇·사드(THAAD) 방공체계, M1A2S 에이브럼스 전차에다 중국제 둥펑(DF)-15 탄도미사일까지 첨단 무기가 즐비하다. 그런 사우디가 군화조차 없어 샌들을 신고 다니는 예멘 후티 반군에게 쩔쩔매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첫째는 무기 수준과 실제 전투력 사이의 괴리다. 사우디군은 실전 경험과 훈련이 부족한데다 육·해·공군을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합동작전 능력도 취약하다. 이런 문제의 배경에는 쿠데타 방지와 왕정 보호에 초점을 맞춰 발전해온 군 조직이 있다. 특정 군부 세력에 힘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방부 산하 정규군 외에도 국가방위군과 왕실근위대, 국경수비대 등으로 무장력을 분산시켜 놓았다. 이러니 지휘체계가 복잡하고 조직 간 협조도 어려운 것이다. 군 인사에서도 능력 못지않게 왕실에 대한 충성도가 중시돼 지휘관의 전문성이 낮다. 값비싼 무기를 대량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그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이유다.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둘째는 전쟁 방식의 차이다. 후티 반군은 10년 넘는 내전을 거치며 게릴라전과 산악전, 미사일·드론전을 익혔다. 이란의 지원을 받아 탄도·순항미사일, 자폭 드론, 무인정까지 전력(戰力)을 다변화했다. 여기서 ‘비용의 역설’이 생긴다. 후티는 상대적으로 값싼 드론을 계속 날리면 된다. 사우디는 이를 막기 위해 고가의 요격미사일과 방공망을 24시간 가동해야 한다. 후티의 드론은 단 한두 대만 방공망을 돌파해도 사우디 석유시설, 공항 등 인프라에 큰 피해를 주는 동시에 심리적 충격까지 극대화할 수 있다. 방어자는 100번을 막아도 한 번 놓치면 실패로 기록된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공습경보가 울렸다는 사실 자체가 사우디의 고민을 보여준다.

셋째는 외부 전력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다. 사우디는 예멘 전쟁에서 자국군을 대규모로 투입하기보다 예멘 정부군과 수단 출신 병력 등에 지상전을 상당 부분 맡겨왔다. 자국군 사상자가 늘어날 경우 왕정이 떠안아야 할 정치적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이 있다. 하지만 돈으로 확보한 병력에게 전투 의지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공군이 아무리 강해도 땅을 점령하고 지키는 것은 결국 지상군이다.

여기에 사우디의 군사 시스템은 미국에 크게 의존한다. 후티의 공세가 거세지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미국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고, 미국은 군사 자문단을 보내 위성 기반 표적정보와 실시간 전황 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후티 공격에 직접 나서는 데는 선을 그었다. 지상전은 외부 병력에, 정보와 작전 지원은 미국에 의존하는 구조가 사우디의 ‘전투 자립’을 가로막고 있다.

사우디가 맞닥뜨린 위기는 단순히 후티의 공세가 거세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군 내부의 구조적 취약성이 전장에서 한꺼번에 드러난 결과다. 군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현재의 안보 위기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방비를 많이 쓰고 첨단 무기를 갖췄다고 해서 강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보력과 지휘체계, 숙련된 병력과 정신력, 독자적 작전 능력이 함께 갖춰져야 비로소 무기는 힘이 된다. 세계적인 ‘무기 부자’ 사우디가 가난한 후티 반군에 고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돈으로 무기는 살 수 있어도 강한 군대까지는 살 수 없는 법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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