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주석
[한국강사신문 박순웅 칼럼니스트] 장부를 쓸수록, 적히지 않는 것들이 더 또렷해집니다.
장부에는 숫자가 남습니다. 내가 가진 자산, 갚아야 할 부채, 벌어들인 연봉입니다. 숫자는 남지만, 그 숫자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삶의 장부를 써 왔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게 한 과정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복식부기 저울 위에 원인과 결과를 함께 올려보며, 한쪽에는 감정을, 다른 한쪽에는 그 감정을 만든 이유를 적어보았습니다.
나를 버티게 하는 것과 지치게 하는 것을 가려 보았고, 내 삶을 운영하는 기준을 세워보았으며, 다른 장부와 맞닿아 있는 자리도 살펴보았습니다. 아직 하지 못한 사과는 장부에 올리고, 확정되지 않은 마음은 포스트잇 한 귀퉁이에 붙여두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이 적어보았지만, 다 적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장부에 기록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회계에서는 숫자로 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따로 적어둡니다. 그것을 주석이라고 합니다. 숫자가 결과를 보여준다면, 주석은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맥락을 설명합니다. 왜 이런 숫자가 남았는지, 무엇을 함께 읽어야 하는지, 숫자만으로는 놓치게 되는 사정들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감사보고서를 펼쳐보면, 재무제표보다 주석의 분량이 더 많을 때도 있습니다.
삶의 장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삶의 주석이 필요합니다.
나의 연봉은 장부에 숫자로 남지만, 그 숫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버텨온 시간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함께 보낸 시간은 셀 수 있지만, 그 시간 속 마음은 남지 않습니다. 하나의 선택은 결과로 남지만, 망설임은 적히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만의 기준은 무엇인지도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내 삶이 어디로 이어질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부를 쓰기 시작하면, 비로소 적히지 않는 것들이 드러납니다.
숫자로는 남지 않는 인생의 기록들, 그것이 무엇이든 삶의 주석으로 적어두면 됩니다.
그럼에도 끝내 삶의 주석으로도 적지 못하는 것 하나쯤은,
마음속 장부에 남겨 두어도 좋겠습니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박순웅 칼럼니스트는 공인회계사로서,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하듯 삶을 구조적으로 해석하는 글을 쓰고 있다. 삼일회계법인과 대주회계법인을 거쳐 현재는 한미회계법인의 파트너 회계사로 회계감사와 경영자문을 수행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스타트업 30분 회계』, 『스케일업 30분 회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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