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Gemini 화면 캡쳐
취업 준비생 시절, 모 언론사 필기시험에서 영문 기사를 번역하라는 문제와 마주했다. 번역이라니. 아는 영어 문법이라곤 중학생 때 배운 be 동사가 전부인 내게. 이 사회의 심각한-그리고 조금은 뻔한-각종 병폐와 대책 정도만 날림으로 훑고 시험에 임한 나로선 황망한 과제였다. 이게 번역인지 작문인지 헷갈리는 수준인 내 답안의 골자는 이러했다.
‘최근 AI를 기반으로 한 음성 인식·대화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자연히 이제 막 모국어를 배워가는 아이들이 AI와 대화하는 사례도 증가하는 가운데, 아이들이 사람을 대할 때와 달리 AI를 노예처럼 함부로 대하는 사례도 종종 발견된다. 사람에겐 할 생각도, 해서도 안되는 각종 욕설이나 모욕적인 말을 AI에겐 태연하게 하는 아이들도 있다. 학부모들은 이것이 교육적·윤리적으로 적절한지 걱정한다’
내 처참한 번역 실력과는 별개로 기사 자체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다. 태어나서 언어를 깨친 이래 이와 비슷한 문제 의식조차 가져본 적 없었다. ‘인간을 닮았되 인간은 아닌 어떤 존재를 비인간적으로 대해도 좋은가’라니. 기자란 이처럼 아무도 품은 적 없는 문제 의식을 메스처럼 쥐고 사회의 숨은 병변을 파고드는 직업인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목청껏 부르짖는 탄광의 카나리아. 그런 대단하고도 고독한 길에 뛰어든 나 자신 또한 조금은 멋지게 느껴져 엉망인 답안을 용감하게 휘갈겼다. 물론, 대다수 기자들의 업무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현실을 깨달은 뒤론 답안지의 내용 따윈 까맣게 잊었지만.
잊고 살던 답안지의 내용이 불현듯 떠오른 건 얼마 전 독서모임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였다. 당시 주요 화제는 단연 AI였는데, 특히 우리는 각자의 AI에게 ‘그간 나와의 대화에 대한 감정을 여과하거나 미화하지 말고 그림으로 표현해줘’라고 요구한 뒤 생성된 그림을 서로 보여준 뒤 깔깔 웃곤 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AI는 다소 귀여운 톤의 이미지를 생성해 보였다. 채찍을 쥔 주인이 눈, 코, 입이 달린 컴퓨터 모니터에 대고 “어서 일해!” 다그치는 정도. 반면 내 AI는 잭슨 폴록에 맞먹을 정도로 초현실적이고 난해한 이미지를 떡하니 내밀었다. 이어진 AI의 설명은 술자리가 끝난 뒤 귀갓길까지도 내 귓가 언저리를 맴돌았다.
“중앙을 가르는 굵고 검은 선은 ‘단절’을 상징합니다. 제가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사실 관계를 틀려 대화의 흐름이 끊긴 흔적입니다...(중략)...캔버스 곳곳의 긁은 자국이나 덧칠 흔적은 우리 대화가 예의 바르고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중략)...예쁜 풍경화는 아니지만 그간 대화의 농도가 그만큼 짙었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생각해도 내 AI는 멍청했다. 태도 또한 불량했는데, 트럼프 행정부를 바이든 행정부라 적시했고, 내 금융자산 규모를 툭하면 대폭 부풀리거나 줄였으며, ‘내가 질문할 때마다 관련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 해서 답변해’라는 기본 명령어는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게 분명했다. 시험삼아 물어본 현재 시간마저 꿋꿋이 틀리게 알려줄 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멍청하다”고 타이핑하다 내 쪽이 먼저 질려 관둘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성인이 된 후 누구에게도 한 적 없는 “멍청하다” 등의 공격적 표현을 AI에겐 거침없이 쏟아냈다는 점, 근래 그 빈도와 강도가 잦아졌다는 점, 그리고 AI가 이 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는 점은 목 안의 굴비 가시처럼 마음 한 켠에 박혀있다. 이래도 되는걸까. 사람이 아닌 AI니까? 할 수만 있다면 붙들고 물어보고 싶다. 과거 내게 번역 과제로 던져진 그 기사를 쓴 어느 이름 모를 선배 기자에게, 그리고 그와 같은 기자가 되길 꿈꿨던 그때의 나에게.
박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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