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한 원인을 정책 실패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주식과 부동산을 예로 들거나, 개혁 후퇴 때문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정책이나 개혁의 문제였다면 논란과 조정의 국면이 이어졌지, 짧은 시간에 지지에서 반대로 돌아서는 급진적 양상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반전의 기원은 지지율이 최고조에 달한 4월 초에 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68%에 달했던 그 순간 이재명 대통령은 과해지기 시작했다. 정책과 제도를 통해 일하는 것에서 벗어나 개인 SNS로 민감한 사안마다 ‘도덕적 훈계’를 하고 나선 것이다. 시민들이 지난해 대선에서 대통령 자리를 허락한 것은 그가 존경할 만한 도덕성이나 윤리성을 가져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차원에서는 논란만 많았다.
사람들은 윤석열 정권에 책임을 묻고자 이 대통령을 선택했다. 도덕적인 문제에 의심은 들었지만, 정부 운영에서는 지난 정권보다 나을 것으로 기대했다. 집권 이후 올해 초까지는 좋았다. 자신의 사법 문제를 정부 운영의 실적으로 보상하려는 노력도 긍정적인 인상을 줬다.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워 시민사회를 강박하는 일이 그때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신뢰를 받았고 그 결과 집권 첫해보다 둘째 해에 지지율이 더 크게 상승했다.
바로 그 순간 대통령이 달라졌다. 높은 지지율과 지방선거 압승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으려는 듯이 무리하게 행동했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한 것처럼 경계심을 가졌고 신뢰 대신 비판적 주시로 돌아섰다. 이 대통령이 ‘여론은 자신의 편’이라고 과신한 것에서 ‘오만의 문제’가 발원했다.
정치철학의 역사에서 오만(Hubris)은 흥미로운 주제다.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잊고 나의 옳음을 타자에게 강요할 때 오만에 빠진다고 보았다. 이런 일은 부나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을 당연시하며 타인의 가난과 고통을 게으름과 악행의 귀결로 돌릴 때 오만해진다. 그런 오만은 네메시스(Nemesis)라고 불리는 신성한 복수나 응징을 초래하는데, 고대 비극 작가들은 이 주제를 즐겨 다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통치자의 오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뤘다. 오만은 “상대에게 수치심을 줌으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는 행위다. 오만은 분노를 부른다. 특히나 “공개적으로 수치심을 부과”하는 오만은 더 큰 분노를 부른다. 이 대통령은 그런 실수를 했다. 단순한 실수였을까.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실수보다는 어떤 계획에서 비롯된 일로 보인다. 지지율이 어느 정도 오르면, 그때 이 대통령은 여론을 직접 움직여 자신의 안위 문제를 곧바로 해결하려 한 것이다.
4월의 높은 지지율이 그 신호탄 역할을 했다.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자신의 사진을 경쟁적으로 내거는 것을 보면서 때가 왔다고 확신했다. ‘계획’이 아니라 ‘실수’였다면 그 뒤 여론이 나빠진 것을 고려해 유연한 조정기를 가지려 했어야 맞다. 하지만 그런 후퇴 대신 어떻게든 계획을 실현하려 조바심을 냈다. 그것이 국회의장의 개헌 발언과 당대표 경선 개입, 공소취소를 추진할 법무부 장관의 인선으로 나타났다. 야당이 반대하고 사람들이 분노하고 지지율이 떨어져도 물러서지 않았기에 상황이 여기까지 왔다.
문제는 분노가 증오로 넘어갈 때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분노란 통치자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기를 원하는” 감정을 본질로 한다. 증오는 다르다. 증오는 통치자가 무엇을 느끼든 말든 상관없이 눈앞에서 “없어지기를 원하는” 감정이다. 저항이나 항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지위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증오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대중적 분노가 증오로 넘어가면 대통령이 무엇을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돌아가야 한다. 집권 초처럼 정부의 실적과 성과로 차근차근 신뢰를 다시 쌓아가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와는 달리 권력은 훨씬 “활기차고 대담한 성격”을 갖기에 그로부터 비롯된 오만을 치유하기가 용이하다고 말한다. 치유책으로 오만 대신 ‘위엄’을 추구하라고 권고한다. 위엄도 오만이긴 하나, “온건하고 점잖은 오만”이다. 그 정도의 오만은 대중이 용서한다. 하지만 공소취소와 개헌에 대한 미련은 위엄도 아니고 온건한 오만도 아니다. 자신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선택이다. 그 길은 네메시스의 저주를 피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늦기 전에 처음의 정부 운영 방식으로 회귀해야 한다.
박상훈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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