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쏘나타 왜 샀나 싶다. 3만 원에 부산 왕복하는 2천만 원대 역대급 하이브리드 세단.”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 신차가 출시됐나 보네. 가격이 꽤 괜찮은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내용을 읽어봤더니 중국 자동차를 소개하는 광고성 기사였습니다. 속으로 '낚였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곧바로 기사를 덮었습니다. 며칠 후 비슷한 제목의 기사들이 또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 이전 기사를 클릭한 것을 알고 AI 알고리즘이 작용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랜저 필요 없겠다.”, “현대차 왜 샀나 싶다.”로 시작되는 기사였습니다. 이 또한 중국 자동차를 홍보하는 광고형 기사였습니다. 이러한 광고는 겉으로 보면 자동차 정보를 전달하는 기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일정한 구조가 보입니다. 특정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말하자면 ‘프레임’을 이용한 기사형 광고입니다. 프레임 이론이 접목된 홍보는 미디어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틀(frame)을 통해 현실을 해석하도록 만듭니다. 같은 사실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메시지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중국차가 저렴하다”라는 문장과 “쏘나타보다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문장은 사실상 같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만 독자가 받아들이는 인상은 전혀 다릅니다.
경기 평택항에 선적대기 중인 수출용 차량들@자료사진 연합뉴스
후자의 경우 '내가 괜히 비싼 차를 산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프레임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중국 자동차 광고 기사들을 보면 일정한 패턴이 반복됩니다. 먼저 ‘충격적인 가격’을 강조합니다. 그다음 국내 차량과 비교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옵션과 성능을 강조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를 평가하는 기준도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가격 대비 옵션’. 이 기준이 기사 전체를 지배하게 됩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가 광고가 아니라 ‘기사’의 형태로 전달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광고라고 생각하면 일정한 경계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뉴스 기사라고 생각하면 훨씬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기사형 광고는 일반 광고보다 설득력이 높습니다.
이러한 기사형태의 광고가 전통적인 신문이나 방송보다 온라인 뉴미디어에서 더 많이 등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온라인 매체는 광고, 협찬, 클릭 기반 수익에 크게 의존합니다. 기업이 제공한 보도자료나 홍보 메시지가 기사 형태로 재생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 포털 중심의 뉴스 유통 구조가 결합됩니다. 자극적인 제목일수록 클릭이 늘어납니다. “그랜저 왜 샀나.”, “쏘나타 필요 없다.” 이런 표현은 그 자체로 강력한 클릭 유도 장치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반복 노출의 영향입니다. 심리학에는 ‘단순 노출 효과’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람은 어떤 대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그 대상에 대해 익숙함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던 브랜드도 계속 기사와 영상에서 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러운 선택지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식을 바꾸는 과정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프레임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일은 드뭅니다. 사람들의 인식은 대체로 천천히 움직입니다. 지금 우리는 중국 자동차의 품질에 대해 여전히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사형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실제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면 인식은 서서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결정적인 사건이 등장하면 이미지와 인식을 한 번에 바꿔 놓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타이거 우즈가 현대차 제네시스 GV80을 몰다 사고를 당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저 차가 그렇게 안전한 차였나”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브랜드에 대한 인식은 그런 한 번의 사건을 계기로 급격하게 전환되기도 합니다.
특정 국가의 자동차 산업을 경계하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기사라는 형식을 빌려 만들어지는 메시지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정보처럼 보이는 문장이 사실은 어떤 방향으로 우리의 판단을 이끌기 위해 설계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쏘나타 왜 샀나 싶다.”
이 문장을 보았을 때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동차 광고가 아니라,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반복적 메시지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미디어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기사와 홍보의 경계는 더 흐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은 메시지를 읽는 능력입니다.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만든 문장은 생각보다 오래 우리의 인식을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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