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호의 한문학브런치]
밥에 싸거나 간장 찍어 먹어
조선시대 ‘밥도둑’으로 예찬
김 선물로 집안 화해한 기록도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며 우리나라 반도체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수요는 넘쳐나고 공급은 부족해 주가지수는 신고가를 경신하기에 이르렀다. 국제 정세가 불안한 현실에도 장밋빛 전망은 끊이지 않는다. 관련 분야 종사자 여러분이 이룬 위대한 성취에 경외감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근래 육지의 반도체와 함께 바다에도 반도체가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흔히 밥상에서 마주하는 ‘김’이 바로 그러하다. 과연 무엇이 그리도 대단하단 말인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언제부터 김을 먹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이미 고려시대부터 밥에 싸 먹었다는 기록이 보이니 이른 시기 주요한 반찬으로 식탁에 오르내린 것만은 분명하다. 한자어로 해의(海衣)라 하였고 조선시대 특산물 관련 기록에서 그 존재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오늘날 완도와 광천 등의 김이 명성을 자랑하는 것과 달리 과거에는 경상도 지역이 김의 특산지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김은 지난 시간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했는지 그 역사를 살펴본다.
완도 김 말리기(1971년) 현장. /셀수스협동조합
동양 역사의 대표 해조류
김은 과거 중요한 먹거리로 인식되었고 그 설명은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다만, 해의 외에도 다양한 이칭이 있었으니 한자로 기록해 다른 해조류와 헷갈리는 지점도 없지 않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은 다음과 같이 이를 고증했다.
<이아(爾雅)>에 이르기를, “윤(綸)은 허리끈 같고, 조(組)는 인끈과 같다.”라고 하였다. <통지(通志)>를 살펴보니, “‘윤’은 녹각채(鹿角菜)이고, 조는 바다의 이끼로 지금의 자채(紫菜)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 세속에서 청각채(靑角菜)라 이름한 것이 있다. 색깔은 푸르고 모양은 사슴뿔 같으며 바다에서 나니 바로 ‘윤’이다. 세속에서 해의라 이름한 것은 바다의 돌 위에 자라는 이끼이다. 빛깔이 자줏빛으로 채취한 자는 종이처럼 조각으로 만드니 아마도 이것이 조일 것이다. (이익, <성호사설> 권5, ‘윤조(綸組)’)
이익이 <이아>에 기록한 윤조를 검토한 기사이다. <이아>는 중국 고대부터 전하는 십삼경(十三經)의 하나로 문자의 뜻을 고증한 일종의 사전이다. 이익은 그중 ‘윤조’의 기술을 보고 우리나라의 무엇을 가리키는지 대입하고자 하였다. 다른 기록을 참조한 결과 윤은 청각이라 하였고 조는 김이라고 하였다. 특히 김은 자채라고 부르는 것으로 바다의 바위에 자라는 이끼라고 설명한 내용이 보인다. 개인적인 견해라 사실 여부를 확언하기 어렵지만 만약 그렇다면 인류는 이미 상고시대부터 김을 먹었다는 말이 된다.
인류가 일찍부터 김을 먹은 이유는 단연 맛이라는 원초적 본능에 기인할 것이다. 조선 중기 허균(許筠)은 김은 주로 남해에서 나지만 동해 사람들이 주먹으로 짜서 말린 것이 가장 좋다고 하였다. 18세기 유득공(柳得恭)은 김은 바다에서 나는 이끼로 해의라 부른다고 하고, 이를 햇볕에 말리면 종이처럼 얇아져 구워 먹으면 대단히 맛있다고 하였다. 정약용(丁若鏞)은 김을 자태(紫苔)라 하고 그 설명에 세속의 이름은 해의로 방언은 짐(朕)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오늘날의 ‘김’과 ‘짐’의 발음이 유사하니 그 이름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돌아본다.
울릉도의 김. /한국교육방송공사
마음을 나눈 최고의 선물
조선시대 김과 관련한 기록을 살펴보면 교유의 과정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선물로 김을 주고받으며 우의를 나눈 정황이 허다하다. 특히 그 이름으로 인해 관계를 회복한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기록을 보인다.
조목(趙穆)이 류성룡(柳成龍)을 몹시 잘못했다고 여겨 두 집안이 오래도록 서로 서신을 주고받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류성룡에게 경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집안의 사이가 점점 좋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찌 먼저 안부를 전하지 않으십니까?” 류성룡이 즉시 편지를 적고 아울러 김을 함께 보내자 조목이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영공(令公)께서 ‘해의(海衣)’를 보내시니 해의 덕분에 도리어 ‘해의(解疑)’하였습니다.” (송시열, <송자대전>(宋子大全) 권212 ‘석실선생어록(石室先生語錄)’)
송시열이 김상헌에게 전해 듣고 기록한 조목과 류성룡의 일화이다. 모두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각별한 사이였으나 국정과 관련한 일로 사이가 잠시 어색해진 일이 있었다. 류성룡은 이를 회복하려고 편지와 함께 김을 보냈고, 조목은 답신을 적어 해의를 받고 해의했다고 말했다고 하였다. 전자는 김을 가리키고 후자는 ‘의심을 풀게 되었다’는 말이다. 언어의 유희를 활용해 관계를 되돌린 사연으로, 한편에서 김을 선물할 만한 가치를 돌아볼 만하다.
실제로 김은 당대 최고의 선물로 여겨졌고 여기저기 주고받은 정황이 시문을 통해 보인다. 무게가 가벼워 유통이 편리하고 말린 음식이라 보관이 쉽다. 무엇보다도 맛이 좋아 일용할 양식으로 반드시 쓰임이 있다. 이에 김을 선물 받고 사례한 작품이 한둘에 그치지 않으니 이를 감사한 이유도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고려시대 이색(李穡)은 흰밥에 김을 싸서 먹고는 치아에 남은 그 향취를 기념했고, 조선 중기 이경석(李景奭)은 햇나물을 싸서 먹으니 술기운이 쉽게 달아난다고 하였다. 이처럼 값진 선물이 되었으니 누군들 사양할 수 있겠는가.
울산의 김 양식장(1969년). /한국정책방송원
누구나 즐긴 밥도둑 반찬
김의 장점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데 있다. 박윤묵(朴允默, 1771∼1849)은 이를 몸소 체험하고 기록을 통해 김을 예찬한 인물이다.
내가 호진(湖鎭: 평신진)에 부임했을 때 나이가 쇠약해 이가 빠지고 남은 것도 흔들려 고기가 있어도 씹기에 몹시 어려웠다. 마침 한겨울을 맞아 우연히 김을 얻었다. 이것은 이끼의 종류로 대발에 붙여서 말린 것이다. 밥에 싸서 먹으니 담박하고 또 부드러웠다. 치아를 수고롭게 하지 않고 입맛에 알맞으며 삼키기도 쉬웠다. 비록 금빛 부추나 옥빛 생선회라 한들 어찌 이보다 낫겠는가. (박윤묵, <존재집> 권12, ‘해의를 읊다.(賦海衣)’)
박윤묵은 1835년(헌종 1) 평신진첨사(平薪鎭僉使)에 제수되었다. 충청도 서산(瑞山) 일대에 자리했던 진지이다. 이미 65세로 적지 않은 나이인지라 스스로 밝힌 것처럼 치아가 온전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틀니나 임플란트조차 할 수 없었으니 그 어려움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러한 와중에 김을 얻게 되었고 밥에 싸 먹자 불편함이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게다가 맛도 좋아 진미가 따로 없다며 최고의 만족감을 표출했다.
과연 조선시대 김은 최고의 반찬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했다. 18세기 이의봉(李義鳳)은 중국으로 사신 가는 연행길에 지친 몸을 쉬어가며 기름과 간장을 먹여 말린 김을 먹었다. 물과 함께 먹으니 기름진 팔진미보다 낫다고 하여 간식으로 유용함을 증명했다. 물론, 이처럼 김을 단순하게 즐긴 것만은 아니다. 19세기 이규경(李圭景)은 기름소금에 구운 김 가루로 주먹밥을 만들어 먹으면 제격이라 하였다. 김의 쓰임새가 한둘에 국한되지 않음을 알겠다.
해의(海衣)를 해의(解疑)하다
본래 자연에서 많은 양의 김을 구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김을 먹는 과정에는 이를 채취했던 어떤 백성의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선조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느 시점부터 김의 양식법을 알아냈다. 19세기 후반 곽종석(郭鍾錫)은 바닷사람들이 대나무 가지를 강과 바다가 교차하는 곳에 꽂아두면 기운이 엉겨 김이 자라나 이를 채취하는 풍속이 있음을 증언했다. 바다의 반도체로 자리매김한 기원이 유구함을 돌아보게 한다.
오늘날 김은 더욱 널리 쓰여 그 가치를 한정할 수 없다. 튀겨 만든 김부각은 바삭바삭 달콤하고, 고명으로 올린 김가루는 고소하기 그지없다. 조미김은 그 자체로 짭짤한 스낵이 되고 밥에 얹어 먹으면 좋은 반찬이 된다. 필자는 누가 뭐라 해도 김밥을 좋아한다.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고 먹기에도 간편하다. 굳이 그 가치를 돌아보자니, 다른 나라의 관광객들이 이를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해의(海衣)를 살펴보고 이제야 해의(解疑)했다.” 앞으로 김의 위대함을 절대 의심하지 않으련다.
김세호 경상국립대 한문학과 교수
☞필자 소개 : 한문을 조금 읽을 줄 아는 21세기 현대인입니다. 옛사람을 좋아하며 고서를 뒤적입니다. 고전이 제일 재미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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