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시작된 축구대회 현재까지 이어져
지산초 분교로 분리 개최, 15년만 통합
마을 사라져도 화합 문화는 그 자리에
"광주전남도 하나…서로 이해해나가야"
1932년 열린 지산면 축구대회에서 축구대회장에게 우승기를 전달되고 있다.사단법인 지산체육회 제공
전남과 광주가 역사적인 통합으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거듭난 지금 1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공동체 정신을 이어온 이들이 있어 울림을 주고 있다.
비록 행정구역은 바뀌었더라도 ‘지산지역한마당축구대회’란 이름을 간직한 채 매년 추석마다 주민들 간 화합을 다지고 상생을 도모해 온 이들의 이야기는 통합 이후 갖가지 논란이 일고 있는 현 상황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지난 21일 광주특별시 북구 본촌동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사단법인 지산체육회 관계자들은 올해 제103회 지산지역한마당축구대회(이하 지산축구대회)를 준비 중이었다.
김동윤 현 회장부터 김준호 전임회장 등 이들은 50대 중반부터 70대 중반까지 나이는 물론 북구 양산동, 용두동, 연제동, 용전동 등 사는 곳도 다양했으나 스스로에 대해 ‘지산 사람’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 가르친 것은 아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추석 명절마다 가족 손을 잡고 찾았던 지산축구대회가 이들을 하나로 묶었다.
24살 쌍둥이 아들들과 대회에 나간다는 김현수 청장년회장의 경우 할아버지부터 시작해 4대째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김현수 회장은 “4대째는 당연하고 찾아보면 5대도 많을 거다. 모두 아버지가 선수로 참가하고, 어머니가 선수들과 주민들 먹을 음식 장만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며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대회를 보고 자랐고, 나이 들어서는 지역 선배들이 열심히 대회를 꾸려나가는 것을 보았기에 우리들 역시 이 전통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21년부터 시작된 지산축구대회의 역사는 광주의 행정구역 변천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광주군 우치면과 본촌면의 마을 대항 축구대회로 시작했던 것이 1931년 지산면으로 통합되면서 1932년 11회 대회부터 지산면 축구대회로 치러졌다. 1935년 광주군이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지산면도 광산군에 속하게 됐으나 1957년 광주시로 편입되며 본촌동이 됐다.
광주에서 ‘구제’가 실시되면서 1973년 서구에 편입됐으나 1980년부턴 북구 관할이 됐다. 현재는 건국동과 양산동 일대가 옛 지산면에 해당된다. 행정구역은 수없이 바뀌었으나 ‘지산’이라는 이름아래 주민들은 매년 추석 명절마다 모여 축구대회라는 이름의 마을잔치를 벌였다.
40년만에 광주와 전남이 다시 하나가 되면서 지역간 화합과 상생을 바라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100년이 넘은 오랜 시간동안 행정구역이 바뀌고 동네 이름이 바뀌어도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을 이어온 옛 지산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사진은 올해 추석을 맞아 열리는 제103회 지산지역 한마당 축구대회를 준비 중인 지산체육회 김동윤(왼쪽부터) 회장, 신기택 사무국장, 서종열 총무, 신동백 장년회장, 김현수 청장년회장. 김준호 전임회장이 대회 성공을 기원하는 포즈를 취하는 모습.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당초 빈 텃밭에서 경기하던 것이 지산초등학교가 들어서며 학교 운동장이 주 경기장 역할을 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절에도 축구공 대신 짚과 천으로 만든 공을 만들어 찼고, 주민들은 돼지를 잡아 회포를 풀었다.
지산초에서 대회가 치러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산초 졸업생들이 주도해 대회를 이끌어나갔다.
부침도 있었다. 도시화로 인해 양산동 쪽 인구가 늘어나고 학교도 분교 되면서 오히려 지산초보다 다른 학교의 학생수가 더 많아지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15년 간 지산체육회와 양산체육회로 조직이 양분돼 각자 대회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산초 졸업생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2003년 두 체육회가 통합되고 대회도 KT&G광주제조창 운동장에서 열리게 됐다. 대회 역시 지산초 졸업생뿐만 아니라 광주북초, 주암초, 양산초 졸업생들이 함께 준비하게 됐다.
신동백 장년회장은 “당시 양산동 청년들을 일일이 만나 우리가 한 지역이고 함께 한 대회이니 다시 함께 하자고 설득했다”며 “우리가 원래 지산인이라는 뿌리를 강조했더니 모두가 이해해 줬다”라고 회상했다.
지난 2023년 9월 29일 KT&G광주연초제조창 운동장에서 열린 제100회 지산지역한마당축구대회에서 내빈들이 시축을 하고있다.사단법인 지산체육회 제공
15년 만의 통합은 대회의 풍경도 바꿨다.
당초 마을잔치의 성격을 겸하고 있던 대회였으나 마을의 자존심도 걸려있었기에 따로 합숙도 하고 경기도 과열돼 마을 간 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있었다.
김준호 전임회장은 “한번 떨어졌다가 다시 합쳐지니 없던 정도 생긴 것 같다”며 “대회가 따로 진행될 당시에 서로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선후배 관계도 몰랐는데, 통합하면서 학교마다 기수가 정해지니 예전만큼의 갈등이 줄어들었다. 통합 이후에는 모두 즐겁게 공을 차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지산체육회는 100년 이상 진행된 대회의 지속성을 위해 문화재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
지산 지역민과 체육회의 노력으로 대회를 이어왔으나, 대회의 가치를 더욱 널리 알려 젊은 층의 참여를 이끌고 대회를 200년 가까이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체육회 관계자들은 행정통합으로 40여 년 만에 하나가 된 광주특별시에 대한 기대감도 전했다.
김동윤 회장은 “우리 대회 역시 100년간 이어지며 많은 부침이 있었다. 행정구역이 바뀌고, 도심화로 동네가 쪼개지고, 일자리를 찾으러 타 지역으로 떠난 사람도 많다”며 “하지만 지역 선배들의 노력과 희생, 그것을 보고 자라며 전통을 이으려 한 후배들, 그리고 추석마다 축구대회라는 이름의 ‘만남의 장소’가 있기에 사람들이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 같다”라고 했다.
김 회장은 “전남광주도 원래 하나였다 쪼개지고, 다시 뭉치지 않았나. 지산처럼 한 동네사람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모두 한 지역사람임을 변하지 않는다”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소통하다 보면, 특별시도 성공적으로 100년 200년 갈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지산축구대회는 추석당일인 오는 25일 오전 10시 개회식을 시작으로 26일까지 KT&G광주제조창 운동장에서 진행된다.
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박소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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