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글로벌 챔피언 기업을 키우기 위해 기업결합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 인수·합병(M&A) 승인 여부를 결정할 때 반독점과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에만 초점을 맞추던 것에서 벗어나, 혁신과 지역 내 투자 등 성장 가능성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춘 기업을 키우지 않고는 미국·중국 기업과의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집행위원회가 기업결합 심사 기준을 20여 년 만에 가장 크게 완화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EU가 심사 장벽을 낮춰 M&A를 장려하려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거대 기업에 맞설 유럽의 챔피언 기업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유럽 기업들은 글로벌 산업, 특히 기술 분야에서 미·중에 뒤처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 가운데 유럽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프랑스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미스트랄을 제외하면 규모를 갖춘 혁신기업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충격을 포함해 공급망 질서 재편 등의 과정에서도 유럽 경제는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EU의 합병 심사 기준 개선에 대한 산업계의 요구는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2019년 독일 지멘스와 프랑스 알스톰이 철도 분야 세계 1위인 중국의 중궈중처(CRRC)에 맞서기 위해 추진했던 철도 사업 부분 합병이 EU의 승인 거부로 무산된 것에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강력히 반발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미·중 기업과의 격차를 걱정하는 유럽의 고민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반도체·조선·자동차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선전하고는 있지만,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 AI 경쟁력 역시 기술과 인프라, 고급 인재 등 모든 분야에서 미·중에 뒤처져 있다. 플랫폼·바이오·우주 등 신산업 분야의 글로벌 챔피언 부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하고, 경제 체질을 바꾸는 일은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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