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시인
꽃의 계절, 봄이다.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들이 아우성치듯이 피어난다. 온갖 나무와 꽃들이 저마다 고운 색의 옷을 입고 봄 단장을 하느라 분주하다. 발밑에 풀들도 연두색 옷을 입고 푸릇푸릇 쳐다본다.
우리 집 작은 꽃밭에도 매일 축제다. 나는 보던 책을 던지고 꽃속으로 들어 간다. 동백, 매화, 앵두꽃이 새 옷을 입고 꽃잎을 흔들며 웃는다. 앙증맞은 야생화와 겨우내 거실에서 통통하게 살찐 다육이들이 서로 만나 반갑다고 수런거린다. 먼저 온 바람이 꽃잎을 만지며 인사를 한다. 서둘러 나온 마음을 옆에 내려놓고 형형색색으로 단장된 꽃들을 본다.
꽃들의 모양과 색깔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과학이 발달하고 AI로 못하는 게 없는 세상이지만 자연신이 만든 꽃은 어느 디자이너나 화가의 그림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독창적이다.
꽃들은 피어날 때를 알고 져야 할 때를 제대로 지킨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한다. 부귀영화라는 자리가 잠깐이라는 것도 안다. 잠깐 피어 있다 시들어 떨어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고의 권력자는 그렇지 못하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자신만을 고집하며 탐욕을 가진다. 꽃과 나무만도 못한 사람이다.
지구 한쪽에선 전쟁의 포화속에 학교와 집이 파괴되어 새싹 같은 어린이들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죽었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 인생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식물의 주기를 닮았다. 식물처럼 눈에 확연히 보이지 않을 뿐, 우리가 하는 일이 싹이 피듯 시작하고 꽃과 무성한 잎을 달고 열매를 거두고, 겨울을 만나 다 잃기도 한다. 풀과 꽃은 계절이 바뀌면 돌아오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 죽은 아이들도 봄날에 내미는 새싹과 피는 꽃처럼 아무 일 없단 듯이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묵은 가지에서 새싹이 돋고 땅에서 풀이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면 무언가 돌아오는 일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한 바퀴 원을 그리듯 다시 빙 돌아오는 봄을 보면 마음이 유연해진다.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번성괴 쇠퇴 등 서로 상반되는 것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보게 된다. 이 양극단의 현상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인생이 가파른 언덕만 넘어가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평탄하고 수월한 길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지금 맞닥뜨린 난국에 희망을 가지고 헤쳐 나갈 힘을 얻는다.
봄날에 식물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 삶의 모습도 생각해 본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저 풀과 나무처럼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살다 보면 폭풍우처럼 흔들리는 삶으로 올바름을 잃었을 때가 있었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겸손한 마음을 갖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내가 가진 것이 보잘것없이 아무 의미가 없는데 집착을 하고 편견을 가졌었다.
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삶의 고비를 넘어오느라 받은 상처와 아픔들을 치유 받는다. 내 삶의 고단함도 어느 순간 꽃처럼 피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 보지만 이것도 욕심 같아진다. 식물을 좋아하는 나는 이렇게 꽃을 가까이 두고 각박한 현실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꽃을 보는 순간 마음이 시냇물처럼 맑아지며 선해지고 삶에 찌든 나 자신을 정화시키고 반성한다.
추운 겨울, 봄이 올 것 같지 않았는데 계절은 어김없이 때가 되면 오는 것이 신기하다. 추위를 이겨낸 꽃이 경이롭다. 이렇게 핀 꽃은 세상에 나와서 짧은 생을 살다 간다. 기쁨이 되고 슬픔이 되어 준 꽃, 사람처럼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듯이 꽃도 마찬가지다. 며칠 만에 생과 사를 치르며 말없이 떨어지는 모습도 아름답다.
나는 식물들의 삶처럼 꽃을 피우며 푸른 신록을 달고 열매를 맺는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고 있다. 남은 생, 마지막 통과의례인 아름다운 나목으로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 아름다운 봄날에 난폭하고 어둡고 무겁고 이해가 안 되는 전쟁이 끝나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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