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오늘날 전 세계는 ‘식량의 무기화’와 ‘기후 재난’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2025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인구의 약 8.2%인 7억 2천만 명이 기아에 직면했다. 이는 전쟁, 분쟁, 기후 위기, 식량 생산 감소 와 국제 공급망 붕괴 등이 잇따르며 식량의 자급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정도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024년 기준 47.9%다. 밀과 콩의 자급률은 각각 1%, 28% 내외다. 쌀 자급은 가능하지만, 다른 주요 곡물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 국제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도 힘들어진다.
이제 식량문제는 국가 존립의 기반이 됐다. 한때 ‘산업화의 뒤안길’로 치부되던 농업이 이제는 첨단기술과 전략 산업의 중심에 선 것이다. 우리 농업의 발전을 생각하며 몇 가지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한다.
먼저, 밀·콩·사료용 곡물의 자급률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생산 장려가 아니라 재배면적 조정, 생산 기반 확대, 소득보장 등이 결합 된 종합 전략이어야 한다. 아울러 국가 차원의 비축 시스템을 고도화해 국제 가격 변동과 수급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릴 때 국내 비축과 안정적 수입선 다변화는 최소한의 안전판이 된다.
둘째, 생산성을 최적화하는 ‘기후 적응형 농업’을 견인해야 한다. 가뭄과 폭우, 이상고온 등 기후 변화는 농업 생산성을 위협하는 최대 변수다. 고온, 가뭄, 집중호우에 대응할 수 있는 품종 개발과 재배 기술 혁신이 병행되어야 한다. 화학 비료와 농약 의존을 줄이는 저탄소 친환경농법을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스마트 농업으로 전환해 드론으로 병충해를 감시하고, IoT(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센서가 토양의 수분과 영양을 실시간 분석하며, AI 기반의 정밀 농업 생산 기술을 접목해야 한다. 데이터에 기반한 스마트 농업은 노동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고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
셋째, 농민 소득의 안정 없이는 어떤 농촌도 지속될 수 없다. 농민 소득의 불안정은 곧 농촌의 소멸로 이어지며, 이는 국가 경제의 기반을 흔드는 일이다. 특히 농산물 가격 변동성은 농가 경영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공공 비축과 수급 조절 기능을 강화하고, 주요 품목에 대한 가격 안정 제도를 정교화해야 한다. 동시에 농지의 규모화, 장기 저리 금융 확대, 세제 지원 등을 통해 농가의 자립 경영 역량을 높여야 한다. 농업은 단순히 땅을 일구는 일이 아니라, 생태를 관리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에 걸맞은 사회적 보상의 구조적 지원이 중요하다.
넷째, 농촌 사회 유지를 위한 인적 자본 축적이 되어야 한다. 인구 고령화와 청년의 이탈이 심화되면서 농촌은 점차 공동체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귀농·귀촌이 확산되도록 스마트팜 창업과 농촌형 스타트업을 육성해야 한다. 청년 농업인에게는 귀농·창업 자금지원과 현장 중심의 농업 교육을 강화하고, 실패 부담을 줄이는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의료, 교육, 교통 등 생활 인프라를 확충해 가족 단위의 이주가 되도록 해야 한다. 농촌은 단순한 ‘생산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가 공존하는 ‘매력 있는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것이 농촌인구 유입의 핵심이다.
다섯 번째, 국제 협력과 글로벌 농업전략이 요구된다. 기후 위기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과제다. 국제 농업 연구 협력을 통해 기후 적응 기술을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스마트 농업 모델을 공동 개발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개발도상국과의 협력을 통해 농업 현대화 경험을 나누는 것은 인도적 책임이자 새로운 협력 시장을 여는 전략이 될 수 있다. 과거 한국의 농지개혁이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던 것처럼, 토지 개혁과 농업 현대화의 경험은 세계적으로도 가치 있는 ‘K-농업’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산업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은 결국 땅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산다. 식량과 농업 체계의 안정 없이는 경제 성장도, 사회 복지도, 국가 안보도 유지될 수 없다. 이제 농업은 더 이상 1차 산업이 아니라 국가의 ‘안보산업’이다. 또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전략적 자산’이다.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농업도 여기서 소외돼서는 안 된다. 정책적 역량을 결집해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기술 혁신을 통해 기후 위기를 돌파하며, 청년들이 꿈을 펼치는 농촌을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지속 가능한 K-농업의 미래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전국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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