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역을 물건을 멀리 보내는 기술로 기억한다. 그러나 30여 년간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수조원대의 거래를 성사시켰던 나는 무역을 다르게 정의한다. 무역은 불확실성을 가격으로 바꾸는 기술이고, 그 불확실성을 가장 빨리 줄이는 사람이 이 싸움에서 승자가 된다. 결국 승부는 언제나 운송이 아니라 정보가 도착하는 속도에서 갈렸다. 속도는 곧 자본이고, 지연은 곧 비용이다.
역사적으로 말은 중요한 정보 전달 수단이었다. 정보 경쟁에서는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게 확보하는 것이 경쟁 우위를 좌우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무역의 원형은 이미 기원전 18세기에 완성됐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점토판에는 바이어 나니(Nanni)가 판매자 에아나시르(Ea-nāṣir)에게 보낸 항의가 남아 있다. “약속한 등급의 구리가 아니다”, “배송이 엉망이다”, “추가 배송이 지연됐다” 등의 내용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평이 아니라 구조다. 품질·납기 정보가 느릴수록 거래비용이 커지고, 그 비용이 바로 이익을 줄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크로드는 그 구조를 대륙 규모로 키웠다. 중앙아시아 소그드 상인이 남긴 고대 편지들은 사막판 ‘시장 리포트’였다. 1907년 오렐 스타인이 둔황 인근 망루에서 발견한 이 편지에는 전쟁·약탈로 시장이 붕괴했다는 소식, 파트너의 파산 경고 같은 정보가 적혀 있다. 수개월 후 도착하는 편지였지만, 먼저 받은 쪽은 손절하고 늦게 받은 쪽이 부도를 떠안는다. 요즘 기업들이 입찰경쟁을 할 때의 모습도 겉으로만 점잖게 보이지 1500년 전 소그드 상인들의 정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보전은 ‘속도’뿐 아니라 ‘왜곡’에서도 벌어졌다. 한나라 사절 감영(甘英)이 로마 영역(대진)으로 가려다 파르티아(안식) 측의 경고를 듣고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는, 중개 세력이 해상 구간의 위험·소요시간을 강조해 직접 접촉을 막았던 장면으로 자주 인용된다. 이 대목은 후한서(後漢書) ‘서역전’ 번역과 주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파르티아가 독점을 위해 의도적으로 길을 막았다”는 해석은 사료의 문장 자체가 아니라 현대 연구의 추론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정보의 비대칭(위험·거리·시간에 대한 해석)을 가진 중개자는 늘 더 큰 이익을 만든다. 그리고 가장 잔혹한 정보전은 기술 유출이다. 6세기경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승려들을 통해 누에를 밀반입하게 했다는 일화는 비단의 독점이 무너진 상징적 사건이다.
역참이 만든 ‘제국 속도’는 상인의 도로망이 된다
몽골제국의 역참은 갑자기 등장한 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느 날 발명된 행정 시스템이 아니라 유라시아 초원에서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속도의 기술이 완성된 형태였다. 스키타이와 같은 초원 민족은 이 속도를 더 넓은 공간으로 확장했다. 그들은 흑해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초원을 가로지르며 말을 갈아타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른바 ‘중계’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한 사람이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이어서 전달하는 방식은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흉노에서 시작된 유목 제국은 이미 속도를 통해 지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말 위에서 이동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거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였다. 명령은 느리게 전달되지 않았다. 전달되자마자 실행했고 실행되기 위해서는 빠르게 전달해야 했다. 정보의 속도는 곧 군사력이자 통치력이었다. 돌궐 제국에 이르면 이 이동과 전달의 기술은 비로소 ‘국가 시스템’으로 정리된다. 사신과 전령, 행정 명령이 일정한 체계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기동성이 아니라, 통치 수단으로서 통신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통신과 교통을 발전시켰다. 도로를 따라 역참과 관사를 설치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우편과 숙박 시설을 배치했다. 이 시스템은 안정적이었지만 선형 구조에 가까웠다. 속도보다는 정확하고 통제 가능한 전달이 중요했다.
몽골제국은 이 두 세계를 결합했다. 초원의 속도와 중계 시스템, 정착 제국의 행정 구조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역참은 단순한 도로망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기능했다. 30~40㎞마다 설치된 역참은 말과 인력을 교체하며 정보를 이어갔고, 이 연결은 직선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퍼져나갔다. 한 경로가 막히면 다른 경로로 우회할 수 있었고, 정보는 끊기지 않았다.
이 구조는 오늘날의 인터넷과 닮았다. 몽골제국은 도로를 만든 것이 아니라, 정보를 흘려보내는 구조를 설계했다. 그 결과 유라시아 대륙은 처음으로 하나의 시간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전까지 몇 달이 걸리던 정보가 며칠, 때로는 일주일 안에 전달되었고 상인과 권력자는 같은 시장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헝가리 전선에서 몽골 군대의 승전보가 8000㎞ 떨어진 몽골초원까지 일주일 만에 전달되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 그 자체가 아니다. 누가 그 속도를 설계하고 통제하는가이다. 몽골은 속도를 만들었고, 그 속도를 통해 제국을 지배했다. 그리고 그 속도 위에서 상인들은 처음으로 지역 시장이 아니라 세계시장을 상대로 거래하기 시작했다. 무역의 역사는 물건이 이동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보가 얼마나 빠르게 이동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몽골의 역참은 그 흐름을 바꾼 전환점이었다. 길이 아니라 속도가 세계를 연결한 순간이었다.
상인은 국가의 통치 인프라를 가장 먼저 돈으로 바꾸는 집단이다. 역참은 단순 우편이 아니라, 말·숙박·식량·통행권을 표준화해 거리의 불확실성을 낮춘 통신·물류 플랫폼이었다. 몽골제국의 역참은 단순한 우편이 아니다. 중국-중앙아시아-중동-러시아 유라시아 전역을 30~40㎞마다 릴레이 구조로 연결했으며, 하루 200~300㎞가량 전달할 수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5G 통신, 인터넷과 다름없다. 그 제도가 몽골제국의 일원인 고려에 들어왔다. 고려 상인은 처음으로 멀리 있는 시장의 소식을 듣게 됐고 더 넓어진 세계시장의 흐름 속에서 거래 결정을 내려야 했다.
제국은 정보를 먼저 받고 그 속도를 유지하는 비용은 주변부가 부담한다. 속도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청구서가 붙는다. 고려는 전체 인구의 약 6%가 역참 운영에 동원됐다. 파발마는 고려에도 달렸지만, 그 속도를 통제한 것은 고려가 아니라 몽골제국이었다. 고려는 세계와 연결됐지만, 그 연결의 조건과 방향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한·중·일 동아시아 바다의 정보 전쟁
동아시아에서 정보전은 바다와 항구에서 더 노골적으로 벌어졌다. 바다는 단순히 물류가 이동하는 통로가 아니라, 정보·위험·가격이 동시에 흐르는 네트워크였다. 8세기, 장보고가 완도에 설치한 청해진은 이 구조를 가장 먼저 이해한 사례였다. 그는 단순히 무역 거점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신라·당·일본을 잇는 해상 정보망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해적을 제압해 항로의 안전을 확보하는 동시에, 어떤 항로가 위험한지, 어느 항구의 물가가 오르는지, 언제 출항해야 이익이 나는지와 같은 정보를 장악했다.
이 점은 해적의 역사와도 깊이 연결된다. 동아시아 바다는 오랫동안 해적의 활동 무대였다. 당나라 연안과 한반도 서해, 일본 규슈를 오가는 항로에는 해적이 상존했다. 해적은 단순한 약탈자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정보 비대칭을 이용한 집단이었다. 어떤 배가 언제 출항하는지, 어떤 배가 비싼 화물을 싣고 있는지, 어느 항로의 경비가 약한지 같은 정보가 없으면 해적은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상인에게 ‘안전한 항로’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가격을 낮추는 핵심 정보였고, 장보고는 바로 이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해적을 제거하는 동시에 상인들을 자신의 네트워크로 끌어들였다.
고려에 들어서면 이 구조는 문헌에서 확인된다. 『고려도경』은 송나라 사신 서긍이 1123년 고려에 머물며 관찰한 기록이다. 그는 대식국(아라비아권) 상인의 방문과 함께, 고려가 직접 교역하기보다 송 상인을 통한 중계무역 구조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고려의 국제무역 중심지였던 벽란도에는 송나라, 일본, 아라비아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리 그 자체가 아니라, 거리에서 발생하는 정보와 위험의 비용이다. 누가 그 정보를 더 빨리 확보하느냐에 따라 같은 물건도 완전히 다른 가격이 된다. 직접 항해하지 못하는 고려 상인은 송나라 상인을 통해 거래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가격은 정보의 속도와 신뢰의 수준에 따라 달라졌다.
조선 후기로 가면 정보전은 더 경영에 가깝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바다의 정보망은 더욱 조직화됐다. 특히 남해와 서해를 따라 형성된 해상 물류망에서는 지역 간 곡물과 소금, 어염(魚鹽)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상인들은 단순히 물건을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역에 흉년이 들었는지, 어느 항구에 물자가 부족한지, 어느 시점에 출항해야 가장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고 활용했다. 조선 상인들이 바라본 것은 바다를 따라 움직이는 물자뿐만 아니라 가격 정보였다. 그중 개성상인은 인삼과 홍삼, 신용 제도, 복식부기(송도사개치부법) 같은 ‘정보 처리 기술’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인삼 자체가 아니라, 중국 수요·가격·신용을 더 빨리 집계하고 실행하는 조직 능력이 부를 만들었다.
일본은 속도를 ‘방송’했다. 오사카 도지마 쌀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전령과 상인 네트워크를 타고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깃발과 봉화로 전달된 가격 신호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시장까지 도달했고, 각 지역 상인들은 그 신호를 기준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이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명령이었다. 그 신호를 먼저 받은 사람은 사고, 늦게 받은 사람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도지마 시장의 본질은 선물거래가 아닌, 가격을 가장 빠르게 퍼뜨리는 시스템이었다.
19세기 이후, 게임의 판은 바뀌었다. 정보가 말의 속도에서 전류의 속도로 넘어가면서, 시장은 단번에 통합됐다. 계산은 단순해진다. 배가 도착하기 전에 가격이 먼저 도착한다. 그러면 상인은 선적 전부터 헤지(위험회피)를 걸고, 은행은 이동 중인 화물의 신용을 가격에 반영한다.
이때 탄생한 비즈니스가 뉴스다. 우리가 잘 아는 로이터통신의 시작은 신문사가 아니었다. 1850년 전신망 공백 구간에서 비둘기로 소식을 전하며 증권 시세를 전달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브뤼셀과 아헨 사이에서 비둘기가 운반한 가격 정보는 경쟁자보다 몇 시간 먼저 도착했고, 그 몇 시간 차이가 곧 이익이 되었다. 로이터는 뉴스를 판 것이 아니라, 속도를 팔아 돈을 번 최초의 정보 사업자였다. 통신 기술이 바뀔 때마다 틈이 생기고, 상인은 그 틈을 가격으로 바꾼다. 해저케이블은 그 틈을 대서양 규모로 닫았다. 대서양 케이블이 대륙 간 뉴스를 며칠이 아니라 몇 분 만에 전달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2주가 2분이 되었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시장이 체감한 구조 변화였다.
2026년은 한국 기업들에게 불확실성을 안겨주는 해다. 미중 간 복잡한 지정학과 흔들리는 공급망,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도처의 분쟁, 숨가쁘게 펼쳐지는 변화 속에서 정보로 헤쳐나갈 지혜를 찾아야 한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AI·데이터 시대: 정보가 무료일수록 우위는 더 비싸진다
여기서부터는 내 이야기다. 나는 30여 년을 텔렉스·팩스·이메일을 거쳐 지금의 메신저와 AI로 넘어온 세대다. 텔렉스, 팩스 한 대 값이 아파트 한 채 값과 맞먹던 시절이 있었다. 팩스로 해외 거래처에 서신을 보내려면 상사에게 결재를 받고, 통신실에 줄을 서서 팩스 발송 신청서를 내야 했다. 팩스에 ‘Please’를 텍렉스식 약자인 ‘PLS’로 쓰지 않았다고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통신비가 비싼 그 시절, 내 상사들은 팩스 내용이 길어지면서 통신료가 올라가는 게 싫었다. 공짜로 쓰는 이메일이 회사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이후였고, 2000년대까지 이메일로 연락이 안 되는 비즈니스맨이 많았다.
2000년 창업해서 40명이 기업 간 전자상거래를 한다고 달라붙어서 첫해 매출 3억원이 안 되었다. 우리 회사가 처음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2002년, 한국에서 남아도는 전화 접속 네트워크 장비를 40~50여 개국에 팔면서였다. 당시 한국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넘어가면서 통신사마다 전화 접속 네트워크 장비가 남아돌았지만, 미국만 해도 전화 접속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회사가 3000개에 육박했다. 느린 인터넷 속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인터넷 서비스 프로바이더들의 이메일 주소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한국에 남아도는 전화 접속 인터넷 장비를 팔면서 망해가던 회사가 살아났다. 새로 생긴 사업 기회에 공짜 인터넷 이메일로 짧은 시간에 전 세계 고객들을 파고들어 간신히 살아남았다.
2007년 아이폰이 나오고, 모바일로 통신이 일정 부분 옮겨갔지만, 2000년 전후부터 시작된 인터넷을 활용한 상거래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아마존, 쿠팡, 알리바바 같은 소비자 전자상거래는 급변했다. 당장 우리 동네 음식점들 7년 생존율을 봐도 10%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기업 간 상거래는 인터넷이나 정보검색, CRM, ERP 등을 통해 많이 효율화되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별로 없었다.
AI 시대에 기업 간 거래의 판이 다시 바뀌고 있다. 많은 경영자가 ‘정보 비대칭이 사라졌다’고 말하지만, 나는 반대로 본다. 정보는 평준화되지만, ‘해석-결정-실행’의 속도 격차는 더 커진다. 몽골제국의 역참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정보의 지배구조는 놀라울 만큼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구글, AWS, 챗GPT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정보를 연결하고, 계산하고, 전달하는 새로운 ‘역참’이다. 우리는 그 위에서 거래하고, 소통하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그 네트워크의 규칙(데이터의 흐름, 수수료 구조, 알고리즘의 우선순위)은 플랫폼이 설계한다. 사용자는 연결의 혜택을 얻지만, 동시에 비용을 지불한다. 데이터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내고, 플랫폼의 규칙에 맞춰 행동한다.
연결은 공유되지만, 통제는 공유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역참과 플랫폼은 본질적으로 같다. 몽골제국이 유라시아를 하나의 시간으로 묶었듯, 오늘날 플랫폼 기업들은 세계를 하나의 데이터 공간으로 묶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가 더 빨리 알고, 더 먼저 행동하느냐에 따라 부의 분배가 결정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구조에 대한 대응 방식이다.
중국은 일찍이 이 네트워크의 본질을 간파했다. 연결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지만, 통제권을 외부에 맡길 수도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 결과가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자국 플랫폼의 탄생이다. 이들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자국 안에서 ‘속도를 설계하는 권력’이다. 역참이든, 플랫폼이든, 결국 승자를 가르는 것은 속도의 크기가 아니라 누가 그 속도를 설계하고 통제하는가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싸움은 한 단계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이 수백조원을 쏟아붓고 있는 AI 전쟁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역참’을 누가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이다. 과거의 역참은 정보를 더 빨리 전달하는 시스템이었다. 오늘날의 AI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해석하고, 요약하고, 심지어 판단까지 대신하는 시스템이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과거에는 누가 더 빨리 정보를 받느냐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누가 더 빨리 ‘의미 있는 정보’를 만들어내느냐가 경쟁력이 된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를 연결하고, 의미를 만들고,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새로운 인프라다. 그래서 플랫폼 기업들은 단순히 서비스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정보 흐름 자체를 다시 설계하려 한다. “누가 먼저 생각하는가”를 “누가 대신할 것인가”로 바꾸고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긴 플랫폼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다. AI를 지배하는 기업은 세계를 하나의 ‘판단 체계’로 묶게 된다. 그래서 이 전쟁은 비싸다. 데이터센터, GPU, 전력, 인재, 모든 것이 천문학적 규모로 투입된다. 그러나 그 비용은 결국 투자라기보다, 미래의 통제권을 사는 비용에 가깝다. 역참 시대에도 그랬듯, 속도를 먼저 장악한 자는 세계를 연결했고, 연결을 장악한 자는 시장을 지배했다. 지금의 AI 전쟁도 다르지 않다.
AI 시대에 기업의 경쟁력은 세 가지 격차로 갈려
AI 시대에 기업의 경쟁력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첫째, 회사가 축적한 데이터의 양과 품질이 승패를 가르는 시대가 됐다. 기업의 최고 자산이 현금에서 데이터로 이동할 것이다. AI는 많이 축적할수록이 아닌, 정확한 데이터를 쌓을수록 유리하다. 모호한 생산·품질 정보, 잘못된 재고 데이터, 늦게 업데이트된 선적 데이터, 과장된 수요 예측은 모델이 아니라 조직 전체를 망친다. 결국 ‘데이터 거버넌스’가 새로운 역참이다.
둘째, 모델의 지연(latency)과 업무 흐름 통합이다. ‘계획(Plan)-실행(Do)-점검(See)’이 실시간으로 흐르는 IT 프로세스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팔란티어라는 미국 회사가 전쟁터에서 온톨로지라는 개념의 솔루션으로 전쟁을 바꿨다. AI 시대 기업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사내에 흩어진 정보 자산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활용하냐에 달려 있다. 예측이 10분 늦으면, 사실상 틀린 예측이다. 비즈니스나 무역에서 좋은 정보는 유통기한이 짧다. ‘로이터 비둘기’가 돈이 됐던 이유와 동일하다.
셋째, 결정권의 속도다. 로스차일드 신화가 반복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보보다 의사결정이 느리면 승부에서 밀린다.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수준의 축적된 정보를 AI가 해석하고, 결정하고 바로 실행까지 이어져야 한다.
김정웅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이자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겸임교수. 30여 년간 60여 개국을 오가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장비와 부품, 철강, 기계, 선박 등을 거래해온 사업가로,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를 현장에서 체득해왔다. 김정웅 대표는 거래와 공급망을 통해 세계를 공부하고 이해하며 사업을 확장해왔다. 매년 실크로드를 직접 답사하며 지난 5000년간 이어져온 무역의 흐름을 연구하고, 인류 역사를 영웅이나 국가가 아닌 ‘거래와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 반도체 공급망과 플랫폼 전략을 바라보는 그의 핵심 프레임이다. 2000년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기업 간 전자상거래 사업을 시작했다. 위기를 겪은 이후 반도체 레거시 장비 시장에 집중해 전 세계에 6만 대 이상의 반도체 장비를 공급하며 글로벌 중고 장비 및 부품 유통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최근에는 세미마켓(SemiMarket)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을 결합한 데이터 기반 플랫폼을 구축하며 거래 중심 산업을 디지털 구조로 재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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