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서 공감으로] (1)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당사자 진예은 씨
두 차례 입원 뒤 동료지원인으로
상담받던 센터서 이젠 동료 상담
재발·입원 딛고 청년 마음 돌봐
10월 10일은 ‘세계 정신건강의 날’입니다.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편견을 해소하고자 제정된 국제 기념일입니다. 정신건강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삶의 문제지만, 정신질환을 둘러싼 편견과 오해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정신질환 당사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자 경남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협력해 네 차례에 걸쳐 보도합니다.
그는 오전 7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오전 8시 40분, 151번 버스에 올라탄다. 그가 일하는 ‘경남청년마음건강센터 청년마음단디’까지는 50분 남짓 걸린다. 버스 안에서는 오전 9시께 올라오는 인스타툰을 챙겨본다. 조울증 당사자이자 동료지원인 진예은(38) 씨의 출근길이다.
오전 10시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컴퓨터를 켜고 음악을 튼다. 센터 대관 문의 전화를 받고, 회원들이 건의함에 남긴 질문에 답한다. 정신건강 정보를 담은 카드뉴스를 만들어 누리소통망(SNS)에 올리는 일도 그의 몫이다.
진 씨가 맡은 일 중 하나는 동료 상담이다. 동료지원인은 정신질환을 경험한 당사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회복을 돕는 일을 한다. “저는 전문 상담사가 아니니까 제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해 주는 상담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나도 그랬었다, 병은 나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런 말을 해주곤 해요.”
오후 5시가 되면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고양이 ‘겨울이’와 놀거나 SNS를 본다. 밤 10시께 잠자리에 든다. 지금은 익숙한 일상이지만 진 씨가 이런 하루를 되찾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다.
진예은 씨가 지난달 29일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경남청년마음건강센터 청년마음단디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성격이 바뀐 줄 알았다
진 씨는 원래 조용한 편이었다. 말수가 많지도 않았다.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대 중반부터였다. 말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술자리와 외출이 잦아졌다. 씀씀이도 커졌다. 집에 머무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자신감은 지나칠 정도로 높아졌다. 진 씨는 그저 자신의 성격이 바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조울증의 신호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조울증은 기분이 지나치게 들뜨는 조증과 우울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2018년 여름, 증상이 급격히 심해졌다. 부모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급기야 “부모님이 나를 죽이려 한다”며 소리를 질렀다. 가족이 아무리 달래도 두려움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경찰과 소방대원이 출동했고, 진 씨는 보호입원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정신병원은 진 씨에게 낯설고 두려운 공간이었다. 그전까지 그가 생각한 정신병원은 ‘미치면 가는 무서운 곳’에 가까웠다. 그러나 직접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가 상상했던 모습과 달랐다. “가보니까 사람들이 너무 착한 거예요. ‘아, 이런 곳이 정신병원이구나’ 싶었어요.”
그는 두 달여 만에 퇴원했다. 진 씨는 금방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씻고 밖으로 나갔다. 미용사 자격증도 땄다. 그러나 이후 약 복용을 중단했고 다시 조증이 찾아왔다. 2021년 9월, 진 씨는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두 번째 퇴원 후에는 집에서 잠만 자고 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런 시간이 5개월 정도 지속됐다.
다시 일상을 만드는 일
진 씨가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어머니는 도움을 받을 곳을 찾아 나섰다. 보건소에 연락하자 창원에 청년들이 많이 가는 정신건강센터가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그렇게 경남청년마음건강센터 청년마음단디와 인연을 맺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센터를 찾아 담당자와 상담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약은 잘 복용하고 있는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상담을 받으러 다니던 곳은 시간이 지나 진 씨의 일터가 됐다. 2025년 4월, 센터의 제안으로 동료지원인 일을 시작했다. “사례관리 담당 선생님이 ‘동료지원인이라는 일이 있는데 관심이 있느냐’고 물어보셨어요. 저도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해보겠다고 했죠.”
진 씨가 스스로 ‘회복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거창한 변화 때문이 아니었다. 잘 자고, 잘 먹고, 운동하는 하루가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조증이 왔을 때는 잠을 거의 못 잤어요.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는데 계속 말하고 싶고, 돌아다니고 싶고,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밥 생각도 별로 안 났고 운동할 생각도 못 했고요. 그런데 아침에 운동하고, 잘 먹고, 잘 자는 걸 보면서 ‘아, 내가 회복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든 시간을 지나오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진 씨는 치료와 약물 복용을 꼽았다. 첫 퇴원 뒤 스스로 약을 끊었다가 다시 증상을 겪었던 경험도 그의 생각을 바꿨다. 그 역시 지금까지 약을 먹으며 관리하고 있다.
“저한테는 치료와 약물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상담하다 보면 ‘언제쯤 약을 끊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근데 당뇨처럼 평생 관리해야 되는 질병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진예은 씨가 지난달 29일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경남청년마음건강센터 청년마음단디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
돌이켜보면 조울증이 나타나기까지 한 가지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진 씨는 회고했다. 유전적 요인과 당시 겪었던 스트레스,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관계가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던 것 같아요.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뭔가 한꺼번에 터지는 느낌이 있었어요.”
질환을 직접 경험한 뒤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자신과 멀리 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직접 겪어보니까 정신질환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오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도 ‘저 사람이 뭔가 잘못해서 그런 거다’, ‘집안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려움을 혼자 견디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혼자 견디지 말고 도움을 요청했으면 좋겠어요. 골든타임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하루라도 빨리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진 씨가 그리는 미래도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어떤 직업을 갖느냐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예전에는 ‘무슨 직업을 갖고 싶다’고 뚜렷하게 말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 나서는 직업이 무엇이든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료지원인으로 일하면서 그런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최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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