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목요칼럼]AI 시대, 대학이 남겨야 할 것

정반대편에는 AI 튜터 도입을 서두르자는 친(親)에듀테크 노선이 있다. 이 모든 담론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필자가 떠올린 질문은 조금 결이 다르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대학 4년이 지난 뒤에...

[목요칼럼]AI 시대, 대학이 남겨야 할 것

AI가 인지적 영역 대체하는 시대

도전·끈기 등 비인지적 역량 중요

대학, 실패·성취 경험의 무대돼야

▲ 이사야 유니스트 경영과학부 교수 서울대 중소벤처기업정책센터 연구위원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등장한 지 채 3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교육에 관한 담론은 이미 산처럼 쌓였다. 가장 자주 등장하는 명제는 “정답을 찾는 교육에서 질문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다. 이광형 KAIST 전 총장과 고영선 한국교육개발원장은 한목소리로 ‘AI 시대에는 답을 찾는 능력보다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합의 위에서 강조점은 갈린다. 어떤 이는 AI 리터러시와 활용 역량을, 다른 이는 비판적 판단력과 검증 능력을 앞세운다. 일각에서는 호기심과 공감을 강조하거나, ‘지덕체’의 순서를 ‘체덕지’로 뒤집어야 한다는 제안까지 등장한다. 정반대편에는 AI 튜터 도입을 서두르자는 친(親)에듀테크 노선이 있다.

이 모든 담론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필자가 떠올린 질문은 조금 결이 다르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대학 4년이 지난 뒤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고 세포에 남아 있을 것은 무엇인가. 지식의 반감기는 빠르게 짧아지고, 새로운 기술 용어는 학기마다 바뀐다. 그렇다면 학위 증서 너머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람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헤크먼(James Heckman)의 일련의 연구는 이 점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는 인적자본을 단순한 지식이나 시험 점수가 아니라 인지적 기술과 비인지적 기술의 결합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끈기, 자기조절력, 호기심, 그리고 실패를 견디고 다시 도전하는 태도. 이러한 비인지적 기술이 장기적인 소득과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정답을 빨리 맞히는 능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격차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AI 시대의 대학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다시 물을 때, 비인지적 기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지적 영역에서 인간은 이미 AI에게 뒤지기 시작했다. 계산과 요약, 번역과 초안 작성, 심지어 코드 생성에 이르기까지 AI는 점점 더 빠르고 정확하다. 그러나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실패를 견디며, 다시 일어서서 작은 성취를 쌓아 마침내 큰 성취에 도달하는 과정. 그 체화된 경험은 알고리즘이 대신해 주지 않는다. AI에는 생물학적 동기와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이 해야 할 일은 어쩌면 단순하다. 학생이 스스로 의지를 갖고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경험. 실패의 쓴맛을 딛고 다시 일어서 작은 성취와 큰 성취의 기쁨을 맛보는 경험. 대학이 그 경험의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학문 분야가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경영학이든 자연과학이나 공학이든, AI 알고리즘 개발이든 본질은 같다. 학생들 안에 잠자는 야성을 깨워 심장을 뛰게 하고, 두려움을 넘어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하는 환경. 이것이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대학의 역할이 아닐까.

이러한 대학의 역할에서 AI는 학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학생이 야심 찬 목표에 도전할 때, AI는 자료 조사와 초안 작성, 데이터 분석과 시뮬레이션 등 여러 단계에서 시간을 절약해 주고, 이전에는 엄두 내지 못했던 영역까지 손을 뻗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 도구의 효용은 학생이 스스로 사고할 때만 살아난다. 답을 빠르게 얻는 데만 익숙해지고 막다른 골목에서 머리를 싸매는 시간을 더 이상 갖지 않는다면, 비인지적 기술은 자라지 못한다. 통계 소프트웨어가 회귀분석을 한 줄로 실행해 주는 시대에도 학생이 그 원리를 손으로 증명해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자계산기가 있어도 손셈을 배워야 하는 이유와 같다. 어린 학생일수록 이 원칙은 더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결국 AI 시대의 교육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무엇이 남을 것인가’에 가깝다. 졸업장에 적힌 학점이 아니라, 졸업 10년 뒤에 그 사람을 지탱할 자세를 길러내는 일이다. 그러한 자세는 그 어떤 알고리즘도 대신 길러줄 수 없다. AI는 우리가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이지, 우리가 가야 할 길 자체를 대신 걸어 주지 않는다. 그 길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인간의 몫이다.

이사야 유니스트 경영과학부 교수 서울대 중소벤처기업정책센터 연구위원

경상일보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