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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명화 속 인체, 해부학자 시선으로 풀다

명화 속 인체를 해부학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한 권의 책이 러시아 독자들과 만났다.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이재호 교수의 저서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가 최근 러시아에서 ‘명작의 해부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명화 속 인체, 해부학자 시선으로 풀다

이재호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명화 속 인체를 해부학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한 권의 책이 러시아 독자들과 만났다.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이재호 교수의 저서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가 최근 러시아에서 ‘명작의 해부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인공지능(AI)이 의학 지식과 기술의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는 시대. 그러나 의학교육 현장에서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재호 교수는 해부학이라는 기초의학 분야를 미술과 역사, 신화, 스포츠 등 다양한 영역과 연결하며 의학의 대중화에 힘써왔다. 그는 해부학을 통해 인간의 몸뿐 아니라 사람과 삶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교수를 만나 해부학이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인 이유와 AI 시대 의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모든 의학교육의 기본 ‘해부학’

생명 존중·윤리의식 배우는 과정’

러시아서 ‘명작의 해부학’ 출간

예술 작품 속 의학 이야기 찾아내

해부학 관점에서 흥미롭게 전달

-최근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가 러시아에서 ‘명작의 해부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러시아가 전쟁 중인 상황이라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러시아는 톨스토이 같은 문학 거장을 배출한 나라이고 역사적으로도 많은 비극을 겪으면서 문학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판매량보다도 누군가 제 책을 읽어준다는 사실 자체가 영광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제가 알지 못했던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이 책에 추가되면서 오히려 저 역시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올림픽에 간 해부학자’도 러시아 출간이 예정돼 있어 큰 동기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해부학이라는 전문 분야를 미술과 접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해부학에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표 교과서들이 있습니다. 인체의 구조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해부학만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해부학 용어의 어원을 공부했습니다.

아킬레스건이나 아마존 같은 단어들이 그리스·로마 신화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Amazon)은 한쪽 가슴을 잘라 활을 쏘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역사와 예술 작품에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림 속 인체 표현과 질병, 의학적 이야기를 발견하면서 이를 해부학의 시선으로 풀어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대생들과 함께 ‘의대생들의 수다’를 집필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학생들은 질병과 치료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학 지식이 단순히 질병을 이해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조현병 환자를 볼 때도 증상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겪는 고통까지 함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조현병을 정신분열증이라고 불렀는데, 영어명인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의 어원을 살펴보면 ‘정신이 분열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용어가 환자와 가족에게 부정적인 낙인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우리나라에서는 현악기의 줄을 고르게 조율한다는 뜻의 ‘조현(調絃)’을 사용해 ‘조현병’으로 명칭을 바꾸게 됐습니다.

건강하게 자라던 자녀가 어느 날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보면, 질병은 단순한 의학적 현상이 아니라 한 사람과 가족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학 지식도 결국 질병과 치료를 넘어 사람과 삶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학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의료진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카데바 워크숍이 꾸준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해부학 교육과 의료기술이 해외 의료진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나라는 미용·성형 분야를 비롯해 전반적인 의료기술 수준이 높은 편입니다. 환자들의 기대 수준도 높다 보니 의료진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해외에서는 특정 고난도 수술이 일부 전문의에게만 집중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비교적 다양한 의료기관에서 수준 높은 수술과 시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이 해외 의료진들에게는 인상적으로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수준이 향상되면서 미용 의료와 관련 교육에 대한 수요도 함께 늘고 있습니다. 베트남을 비롯해 일본 의료진의 참여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카데바 워크숍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임상의사들이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새로운 술기와 수술법을 안전하게 익히는 교육 과정입니다. 카데바를 통해 인체 구조를 직접 확인하고 환자 안전성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은 계명대 의대 해부학교실에 순수 해부학 전공 교수진과 대학원생 등 전문 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최근에는 순수 해부학 전공자가 줄어드는 것이 고민입니다. 큰 인체 구조에 대한 연구는 이미 상당 부분 이뤄졌고 새로운 논문 성과를 내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부학은 모든 의학교육의 출발점으로 여전히 수요가 큽니다. 연구 성과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교육적 가치가 있는 분야인 만큼, 일종의 보호 학문이라는 관점에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해부학 교육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해부학 교육은 단순히 근육과 혈관, 신경의 위치를 외우는 과정이 아닙니다. 실제 인체를 직접 관찰하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인체의 경이로움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VR이나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서도 해부학을 공부할 수 있지만, 실제 인체를 마주하며 얻는 경험은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해부 실습은 의사로서의 태도를 배우는 교육이기도 합니다.

의사는 혼자 환자를 치료하지 않습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여러 진료과 의료진이 협력하게 됩니다.

해부 실습 과정에서 학생들은 서로 역할을 나누고 소통하며 협력하는 방법을 배우고,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마주하면서 생명에 대한 존중과 윤리의식도 익히게 됩니다.

해부학은 모든 의학교육의 출발점입니다. 순환기학이나 소화기학 등 어떤 분야를 공부하더라도 결국 해부학적 이해가 바탕이 됩니다. 학생들이 해부학을 제대로 이해해야 질병과 치료도 올바르게 배울 수 있습니다.

-최근 일본 후쿠오카 의과대학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신경 변이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셨습니다. 연구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이번 연구는 정중신경과 피부근육신경의 변이를 분석한 기초 해부학 연구입니다. 특정 치료법 개발보다는 인체 구조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기초 자료를 축적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이번 연구는 계명대 의대와 후쿠오카 의과대학이 15년 이상 이어온 교류의 결실입니다. 양 기관은 학생 교류와 공동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으며, 연구 결과와 교육 경험을 서로 공유해 왔습니다.

국가와 인종, 생활환경에 따라 인체 구조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같은 근육이나 신경이라도 위치와 형태가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차이를 비교·분석하는 연구는 학문적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제 공동연구는 서로의 강점과 한계를 솔직하게 공유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좋은 의사는 환자를 이해하는 의사

AI 발전 따라 급변하는 의료 환경

인문학 통한 공감·소통능력 키우고

의료인으로서 기본기부터 다져야

스스로 탐구하는 인재 양성 힘쓸 것

-최근 의료계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의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AI 시대 좋은 의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의사는 단순히 좋은 학력이나 성적을 가진 의사가 아니라 좋은 마음을 가진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환자를 잘 돌보는 것은 물론 동료와 원활하게 협력하고, 자기 자신도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사에게는 의학 지식뿐 아니라 소통 능력과 자기관리 능력, 직업적 책임감과 윤리의식이 필요합니다. 결국 환자를 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해부학이 인간의 몸을 이해하는 학문이라면, 인문학은 인간의 삶과 감정, 사회를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앞으로는 의사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사회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기여하는 역할도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I 시대를 맞아 의학교육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해부학 교육과 연구, 그리고 집필 활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AI의 발전은 연구와 집필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논문 작성 과정에서 통계 분석을 보조하거나 자료를 정리해 주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생산성을 크게 높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AI 시대일수록 기본기를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날로그 방식의 연구와 교육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AI가 제시한 결과를 검증하고 수정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학생들이 기초적인 학습 과정이나 사고 과정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채 AI의 결과만 받아들이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의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은 진단과 치료의 원리, 의학적 판단의 기준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AI가 빠르게 정보를 제공한다고 해서 그 과정을 건너뛰게 되면 탐구 능력과 사고력, 연구 역량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AI가 발전하는 시대에서도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는 능력을 갖춘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이아람기자 aram@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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