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찾는 20대에게 필요한 이야기
결과보다 중요한 건, 방향을 만들어가는 하루
무엇을 할지 모를 때는, 일단 움직여야 보인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의 빵집 '마젤란'(사진: 취재기자 황서현).
과거의 불편함에서, 지금의 빵을 만들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의 골목 안쪽, 작은 쌀 베이글 가게 ‘마젤란’.
“과거 밀가루 알레르기, 아토피를 겪었던 제가 맛있고 속이 편한 쌀 베이글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빵집입니다.” 마젤란은 이 문장으로 가게를 소개한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이 가게의 시작과 방향을 모두 담고 있다.
마젤란의 대표 곽철호 씨는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먹는 것도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했던 건 빵이었다. 하지만 밀가루 알레르기와 아토피로 인해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없었다. 빵을 먹고 나면 손에 수포처럼 두드러기가 올라왔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일조차 망설이게 됐다.
“먹고 싶은데, 먹으면 안 되니까 힘들었어요.”
지금처럼 쌀로 만든 빵이 흔하지 않던 시절,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 경험은 오래 남았고, 결국 ‘그럼 내가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마젤란의 출발은 그렇게,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됐다.
안정적인 길 위에서 느낀 ‘맞지 않는 삶’
그의 선택이 처음부터 창업이었던 것은 아니다. 체육학과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꼈고, 이후 금융권에 취직했다. 당시만 해도 카페나 디저트 창업은 지금처럼 흔한 선택지가 아니었고,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것이 일반적인 경로였다.
“원했던 일이 아니다 보니까, 일을 하면 할수록 그냥 시간만 허비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는 그때를 ‘버티는 시간’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방향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이대로 끝나면 억울하다”…인생의 전환점
전환점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아킬레스건이 끊어졌고, 약 4주 동안 병원에 누워 지내야 했다. 움직일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언제든 끝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떠오른 감정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다가 삶이 끝난다면 너무 억울하겠다.’ 그 전까지는 버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달랐다. 그렇게 치료가 끝난 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빵집 '마젤란'의 벽에 붙어있는 마젤란의 그림(사진: 취재기자 황서현).
‘마젤란’,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다
그가 가게 이름을 ‘마젤란’으로 지은 것도 이 과정과 닿아 있다. 마젤란은 항해를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한 탐험가다. 그에게 마젤란은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든 사람’이었다.
“기존에 없던 길을 가보고 싶었어요.” 그가 베이글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베이글은 단단하고 질긴 식감이 일반적이었다. 촉촉하고 쫀득한 식감의 베이글을 만들어보자. 그게 쌀 베이글의 시작이었다.
100번의 반죽, 비로소 만들어낸 차별점
쌀가루와 찹쌀 풀을 활용하면 밀도 있는 식감을 만들 수 있었지만, 문제는 반죽이었다. “밀가루는 비교적 쉽게 뭉치지만, 쌀가루는 수분 함유량이 높아 물을 넣으면 쉽게 풀어져 버리거든요.”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실험을 반복했다. 최고의 배합을 찾기 위해 100번이 넘는 반죽을 뭉치며 실패를 쌓아갔다.
“조금만 배합이 달라져도 맛이랑 식감이 완전히 달라져요. 계속 만들어보고, 먹어보고, 기록했어요.” 여러 매체들과 서적들을 찾아보며 응용해 나만의 것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 ‘식이섬유’였다. 풀어진 반죽을 뭉치고 소화를 돕는 식이섬유, 마젤란의 ‘킥’이었다.
이렇게 완성된 베이글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식감을 갖게 됐다. 쫀득하면서도 촉촉한, 마치 떡과 같은 식감. 그는 이 ‘본질적인 차이’가 마젤란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마젤란이 만들어진 과정들이 담겨 있는 벽지(사진: 취재기자 황서현).
실제로 마젤란의 베이글은 그 차이를 증명하듯 빠르게 팔려나간다. 평일에는 약 70개, 주말에는 100개 정도를 직접 만들어내지만, 빠르면 오후 2~3시, 늦어도 5~6시가 되면 대부분의 베이글이 모두 소진된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2시 무렵 인터뷰가 끝남과 동시에 마지막 베이글이 판매됐고, 진열대는 순식간에 비어 있었다.
말보다 행동, 설득은 ‘실체’로
그는 창업을 결심했을 당시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컸다. 하지만, 그는 말로 설득하지 않았다. 퇴사 후 곧바로 제빵 학원에 다니고, 빵집에서 일하고, 직접 만든 빵을 맛보여드렸다.
“말로만 하겠다는 건 뜬구름 같잖아요. 실체가 있어야 해요.” 그가 보여준 것은 계획이 아니라 실행이었다. 그 과정이 쌓이면서 부모님의 시선도 바뀌었다. “지금은 오히려 먼저 가게 소식을 찾아보고 저한테 보내주세요.” 그는 부모님에게 인정받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 회상했다. 팝업 행사에서 실시간 주문량 1위를 했던 날, 어머니의 뿌듯해하시는 모습은 단순한 기쁨이 아닌 묵묵했던 지난 시간의 보상이었다.
결과보다 순간, “Make it count”
그는 가게를 준비하며 지켜온 마음으로 영화 ‘타이타닉’의 한 대사를 꼽았다.
“Make it count. 매 순간을 소중히.”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결과는 모르잖아요. 대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거죠.” 그는 결과를 미리 정해두기보다,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선택을 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기회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고 말했다. “후회한 적은 없어요.” 그는 이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말했다.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선택 이전의 과정에 있다. “빵집을 하고 싶으면, 빵틀 100개를 먼저 닦아보세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가장 힘든 과정까지 직접 겪어보라는 의미다. "좋아 보이는 면만 보고 선택하면 안 돼요. 그걸 해보고도 하고 싶으면, 그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곽철호 대표의 손길이 묻어나는 마젤란의 공간(사진: 취재기자 황서현).
지금을 살아가는 20대에게
“너무 겁먹지 마라. 뭐라도 해라.”
그는 과거의 자신에게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말하고 싶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취업 준비 시절, 자존감이 떨어지고 두려움이 컸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는 그 이면까지 충분히 겪어보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 단계에서는 일단 움직여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쫄지 말고 움직이라는 것. “완벽한 계획보다, 작더라도 직접 해보는 경험이 방향을 만들겠죠.”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마젤란이 지향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빠르게 확장하는 가게가 아니라,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공간이다. 그는 빵의 식감과 맛이라는 본질에서부터 공간의 분위기까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차이를 쌓아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성공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쉽게 대체되지 않는가’에 가깝다. 그리고 그 답은 특별한 재능보다, 하루하루를 쌓아온 시간과 선택 속에서 만들어진다.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20대에게도 필요한 기준은 같다.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찾기보다, 쉽게 대체되지 않을 만큼 자신의 시간을 쌓아가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은 결국, 어느 순간 기회로 돌아온다.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 아닌지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쌓아가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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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 황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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