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여파로 헬륨과 신너, 에탄올, 이소프로필알코올(IPA) 등 반도체 필수 공정 소재의 조달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26일 디일렉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 구매 부서는 일 단위로 주요 소재의 조달 가능 여부와 가격 변동 상황을 점검하면서 생산 차질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려가 가장 큰 품목은 헬륨이다. 헬륨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플라즈마 식각, 증착 공정의 주요 가스로 활용되는 동시에 웨이퍼 뒷면 냉각재로도 쓰인다.
헬륨은 LNG 생산 과정에서 추출되는 부산물이다. 카타르가 전 세계 공급량의 약 3분의 1을 담당한다. 이란은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단지를 수차례 공격했고 카타르에너지는 LNG 생산시설 타격으로 공급 차질이 발생하자 장기 계약 이행이 어렵다고 선언했다. 사아드 알 카아비 카타르에너지 최고경영자(CEO)는 이란 공격으로 LNG 수출 능력의 17%가 타격을 입었고 복구에 3~5년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헬륨 현물 가격은 급등했다. 업계에서는 스팟 가격 기준으로 이미 50% 이상 올랐다는 얘기가 나온다.
헬륨 공급업체인 에어프로덕츠와 린데는 미국 현지에서 원료 헬륨을 조달하는 비중이 높아 공급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고객사에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에어리퀴드와 이와타니는 카타르산 헬륨 조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타격이 불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재업계 관계자는 "카타르 의존도가 높은 메이저 업체들은 손 들기 직전 수준"이라면서 "전쟁이 장기화하면 일부 업체는 헬륨 공급 자체가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산이 대안으로 있지만 정치적 문제로 국내 업체들이 기피한다"면서 "이란과 평화 협상이 이뤄지더라도 라스라판 시설 복구에 수 년이 소요되는 만큼 헬륨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 조달 불안은 중장기 리스크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헬륨을 제외한 신너, 에탄올, IPA는 모두 국제유가와 나프타 가격에 연동되는 석유화학 소재다.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유가 급등이 반도체 공정 소재 원가 전반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너는 노광 공정에서 감광액(PR) 잔여물을 제거하는 세정 소재다. 신너의 핵심 원료는 프로필렌옥사이드(PO)이다. PO를 가공해 PGME(Propylene Glycol Monomethyl Ether), PGMEA(Propylene Glycol Monomethyl Ether Acetate)로 만들고 이를 신너로 재가공해 납품하는 구조다. 원유, 나프타,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원료 강세로 PO 가격이 월초 대비 43% 이상 올랐다고 중국 원자재 데이터 사이트 썬서(SunSirs)는 전했다.
듀폰과 다우, LG화학 등 PO 공급사들은 이미 한농화성, 켐트로닉스, 재원산업 등 PGMEA 제조사에 인상 견적서를 발송했다. PGME와 PGMEA 가격도 40~50% 수준으로 올랐다. 신너 완제품 주력 공급사인 동진쎄미켐과 이엔에프테크놀로지, 동우화인켐은 이 인상분을 반영해 4월 수입분부터 약 20% 올리는 협상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에탄올과 IPA도 인상 수순에 접어들었다. 풍국주정 등 국내 공급업체들은 이번 주부터 고객사에 에탄올 인상 견적서를 발송하기 시작했다. 나프타 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상승이 원인이다. 인상폭은 10%대가 될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용 에탄올은 웨이퍼 세정과 식각 후 잔류물 제거에 쓰이는 순도 99.99% 이상의 초고순도 소재다.
나프타 파생 소재인 IPA 가격도 오름세다. 국내에서는 LG화학이 반도체용 IPA 주요 공급사다. 구체적인 인상폭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으나 업계에선 가격 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원가에서 이들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칩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전쟁이 장기화될 시 몇몇 소재의 조달 차질로 인한 생산 차질을 가장 걱정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순순히 시장가에 맞춰 재고를 확보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주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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