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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만 명의 사람에겐 만 개의 달리기가 있다

소나무 몸통이 울퉁불퉁하고 이리저리 휘어져 있어도 볼품없다고 하지 않는다. 휘고 굽은 나무 각각 아름답고 고유하고 멋있게 느껴진다. ‘나도 키가 더 크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왜 이렇게 코가 낮지?’, ‘나도 쟤처럼 뽀얀 피부였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머리가 나쁜가?

만 명의 사람에겐 만 개의 달리기가 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달리기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

지난해 11월2일(현지시각) 뉴욕 마라톤. 김세희 제공

소나무 몸통이 울퉁불퉁하고 이리저리 휘어져 있어도 볼품없다고 하지 않는다. 휘고 굽은 나무 각각 아름답고 고유하고 멋있게 느껴진다. ‘나도 키가 더 크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왜 이렇게 코가 낮지?’, ‘나도 쟤처럼 뽀얀 피부였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머리가 나쁜가? 저 동료처럼 한 번에 알아듣고 업무 처리를 못 할까?’ 우리는 자기 생김새와 능력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스스로 열등감을 느낀다.

달리면서도 속도, 기록, 자세, 타고난 체력과 리듬감, 유연성, 지구력 등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된다. 내가 달리는 것보다 더 빠르고 가볍게 달리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 부럽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각양각색의 달리는 자세를 구경할 수 있다. 엘리트 선수들의 우아하고 날쌘 모습부터 아기 새처럼 종종종 뛰는 사람, 한쪽으로 몸이 치우쳐서 기우뚱한 자세로 뛰는 사람, 겅중겅중 큰 보폭으로 달리는 사람, 양팔을 차렷 자세로 내리고 통통통 뛰는 사람, 권투에서 잽을 날리듯 양 주먹을 날리면서 뛰는 모습 등 만 명의 사람이 있으면 만 가지 달리는 모습이 있다.

100살 정신과 의사가 심리학자 딸에게 남긴 조언

나는 척추 문제로 인한 좌우 불균형이 심하고, 도약이 불안정하니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오른팔이 앞뒤로 크게 흔들린다. 다른 러너들처럼 가볍고 탄력 있게 뛰고 싶어서 지도자에게 레슨도 받아보고 엘리트 선수들의 달리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따라 하려고도 해보았다. 운동장에서 뛰면서 자세가 좋은 다른 러너들의 모습을 보고 내 몸에 구현해보려고도 애썼다. 나의 달리는 모양새를 부족하게 여기고, 자신 없어 하며 고치려고 노력해오길 자그마치 10년이 넘었다. 처음보다는 좀 더 간결하게 뛰게 되었지만, 근본적 신체 불균형에서 비롯된 어려움은 나아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나일 뿐이다. 수많은 달리기 중 고유한 하나의 달리기다. 타고난 신체적 조건과, 세월과 함께 몸에 깃든 고유한 특징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달리는 자세를 구사할 뿐이다.

아론 벡(Aaron Beck·1921~2021)은 인지행동치료의 창시자로 정신의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가 만든 우울과 불안에 대한 척도는 세계 각국 정신과 진료실에서 지금도 애용되고 있다. 그의 딸이자 미국 인지행동치료학회의 저명한 심리학자 주디스 벡(Judith Beck)이 2023년 6월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세계인지행동치료학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100년을 살면서 인생 대부분을 정신과 의사로서 셀 수 없이 많은 환자를 진료한 아론 벡이 노년에 딸에게 고백하듯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주디(Judy), 나는 지금까지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그들이 어려워하는 점이 무엇인지, 무엇이 괴롭고 힘든지를 묻고 답을 들으며, 부족하고 약한 점을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단다. 그런데, 결국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된 게 있단다.

환자들이 가진 문제와 각자의 어렵고 부족한 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그들이 이미 가진 강점과 장점에 중점을 두며,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더 효과적으로 치료되더구나.

”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우려고 애면글면하기보다, 이미 가진 고유한 능력을 부각할 때 어려움이 해소되고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곤 한다. 장단점이라는 것은 다른 무엇, 다른 누군가와 비교된 상대적인 개념이다. 비교해서 평가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보고 인정하면 나 자체로 고유하다.

살아가면서 가장 큰 보상과 확실한 기쁨은 스스로 이해하고 알아주고 사랑하는 것일 텐데, 많은 이들이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른다.

지난해 11월2일(현지시각) 뉴욕 마라톤. 김세희 제공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지? 왜 이렇게 나약하고 게으를까?”

“아, 도대체 왜 맨날 나만 이래!”

“남들은 일도 잘하고 바쁜 와중에 운동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네.”

사람들은 자신을 미워하고 자기를 불신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런데,

나르시시즘과는 다르다.​

자기애 (narcissism)가 나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만 생각하고 주변을 무시하는 것이라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믿고 긍정하고, 스스로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산다는 것

“육아휴직 동안 과거의 나를 돌아볼 수 있었어요. 내가 많이 소극적이고 위축되어 있었단 걸 깨닫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동안 아내에게 당신은 거절하는 법을 모른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회사에서든 친구들에게든 그냥 ‘네’라고 대답했어요. 나름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아프게 된 이유가 된 것 같아요. 이제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아보려고 해요.”

“그런데 수철씨가 생각하는 나 중심으로 산다는 건 어떤 걸 의미하고, 또 어떻게 해야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을까요?”

“방법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부딪쳐 봐야겠는데요? 즐겁고 좋아하는 일도 생각하고, 그냥 무조건 참는 게 아니라 상황을 공유하고 대화해 보려고 해요.”

나를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만 생각할 거야. 다른 사람 입장은 나는 모르겠어’가 아니다. 주체적으로 사는 것은 나만 위하는, 소위 말해서 이기적이라고 표현되는 것과 다른 개념이다. 나를 둘러싼 전체 환경 속에서 나를 운영하는 것이다. 나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위하는 것은 나라는 구성원이 속한 조직 안에서 가능하다. 항상 전체 조직과 그 구성원들에게 내 사정을 이해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전체를 보고, 그에 속한 부분적인 나를 인지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바를 실현하려면 결국 전체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내 안에 갇히거나, 자신을 고립시키거나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다.

나를 이해함으로써 상대를 이해하고 전체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 글의 상담 사례로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은?

김세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는 세계 6대 메이저 베를린·보스턴·도쿄·시카고·런던·뉴욕 마라톤을 포함해 50여 차례 국내외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2024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7분30초다. 현재 삼성서초사옥 마음건강클리닉에서 사내 임직원을 진료하고 있으며 대한 육상연맹 이사를 맡고 있다.

마음이 속상하고 힘들 때,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스스로 마음을 보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답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데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필자는 마라톤을 하면서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성찰하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스스로 내면을 풍요롭게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새벽마다 달리며 지친 이들의 마음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 있다. 20년간 달리기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통해 깨달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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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 연재 바로 가기

https://www.hani.co.kr/arti/SERIES/3322

김세희 |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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