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고 세계 곳곳에서 지정학적 갈등이 불거지는 등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경제계·정치권을 막론하고 전략 재편이 한창이다. 서울와이어는 오는 15일 ‘불확실성 시대, 한국 경제 혁신전략’을 주제로 ‘제7회 서울와이어 혁신포럼(SWIF 2026)’을 열고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는 기업의 미래 전략을 살펴본다. 또한 서울와이어도 이같은 거대한 변화의 파고 속에서 이달 중순 제호 변경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이에 맞춰 사명과 브랜드명 등의 변경이 실질적인 혁신 성과로 이어진 주요 사례를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LIG D&A 판교하우스. 사진=LIG D&A
[서울와이어=최찬우 기자] 실전에서 성능이 입증된 ‘천궁-Ⅱ’를 앞세워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운 LIG넥스원이 사명을 ‘LIG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LIG D&A)’로 바꾸며 새로운 출발에 나선다.
변화의 표면적 이유는 사업 확장이지만 전쟁 양상의 변화와 산업 구조 재편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흐름이 자리한다. 미사일 중심 기업에서 항공우주까지 아우르는 종합 방산기업으로의 전환. 이번 사명 변경은 ‘무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전장을 설계하는 기업’으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전쟁이 증명한 기술… 천궁-Ⅱ가 만든 '변곡점'
이번 사명 변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 상황을 먼저 짚을 필요가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배치된 LIG D&A의 중거리 지대공 요격체계 ‘천궁-Ⅱ’는 실전에서 90%를 웃도는 요격 성공률을 기록하며 성능을 입증했다. 일부에서는 96% 수준의 요격률을 달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복합적인 미사일 공격 상황에서 이 같은 수치를 기록한 사례는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도 드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전 성과는 곧바로 시장 반응으로 이어졌다. UAE는 추가 물량 확보를 요청했고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관심이 급증했다. 기존 계약 물량 외에도 긴급 공급 요청이 이어지는 등 수출 확대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상황이다.
이는 ‘히트상품 등장’ 이상의 성격을 갖는다. 방산 산업은 기술력 검증이 쉽지 않은 분야로 꼽히지만, 전쟁이라는 극단적 환경에서는 제품 성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천궁-Ⅱ는 이 과정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하며 LIG넥스원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계기로 평가된다.
LIG D&A는 지난해 매출 4조3069억원, 영업이익 3229억원으로 창사 이후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수주잔고 역시 20조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까지 확대되며 중장기 성장 기반을 확보했다. 시장에서는 올해도 두 자릿수 성장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전쟁은 수요 확대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전략 방향 자체를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잘 만드는 기업’에서 ‘더 넓은 영역을 설계하는 기업’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분명해진 시점이다.
천리안위성 5호 형상. 사진=LIG D&A
◆'에어로스페이스' 선택… 정체성 재정의
금성정밀을 모태로 한 LIG넥스원은 1976년 미군 미사일 정비 사업에서 출발했다. 이후 LG그룹 계열 분리를 거쳐 2004년 LG이노텍 방위사업부문을 인수했고 2007년 현재의 사명을 갖추며 국내 대표 미사일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정밀타격, 감시정찰, 항공전자, 지휘통제·통신 등 다양한 분야로 기술 영역을 확장했으며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신궁’,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 다연장 유도무기 ‘비궁’ 등이 대표 제품으로 꼽힌다.
이처럼 축적된 기술 기반은 최근 전장에서 성능이 입증된 무기체계로 이어지며 LIG넥스원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로 평가된다.
LIG넥스원은 지난달 31일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사명을 ‘LIG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로 변경했다. 2007년 현재 사명을 사용한 이후 약 19년 만이다.
기존 ‘넥스원(Nex1)’이라는 이름은 ‘차세대 1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사업 영역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글로벌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명확한 사업 정체성을 반영한 명칭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새로운 사명은 방산(Defense)과 항공우주(Aerospace)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사업 영역을 나열하는 수준이 아니라 성장 축을 명확히 설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LIG D&A는 사명 변경 이전부터 유도무기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항공무장, 전자전, 감시정찰, 무인체계, 우주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차세대 항공무장체계 개발, 무인 플랫폼 투자, 위성·통신 기술 확보 등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재무 구조 측면에서도 변화가 이어졌다. LIG D&A는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미래 사업 투자 여력 확보에 나섰다. 이는 명칭 변경에 그치지 않고, 사업 구조 전환과 자본 전략이 함께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넥스원’이라는 추상적 브랜드를 내려놓고 ‘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를 선택한 것은 기업 정체성을 보다 구체적이고 글로벌 기준에 맞게 재정의하려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사진=LIG D&A
◆미사일에서 '전장 플랫폼'… 글로벌 방산 공통 진화
이번 사명 변경은 LIG D&A만의 선택이 아니라 글로벌 방산 산업 전반의 흐름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과거 방산기업들은 특정 무기 체계에 특화된 구조를 갖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항공·우주·전자·통신 기술을 결합한 ‘통합 시스템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록히드마틴이다. 전투기 제조사와 미사일 기업의 결합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현재 위성, 우주, 미사일 방어체계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방산기업으로 성장했다. RTX 역시 미사일과 항공 기술을 결합하며 사업 구조를 확장했고 유럽의 에어버스와 BAE시스템즈 역시 방산과 항공우주를 통합한 형태를 갖췄다.
변화의 배경에는 전쟁 양상의 변화가 자리한다. 현대 전장은 단일 무기 성능보다 시스템 통합 능력이 더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다. 정찰과 감시, 통신, 데이터 처리, 정밀 타격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실제 전투력이 완성된다.
또한 우주 기술의 중요성은 빠르게 커지는 추세다. 위성 기반 정찰과 통신, 미사일 경보 체계는 현대 방공망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기존 미사일 기업들도 자연스럽게 항공우주 영역으로 확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LIG D&A의 이번 결정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으로 분석된다. 이미 레이더, 통신, 센서, 유도 기술을 보유한 만큼, 우주 산업으로의 확장이 기술적으로도 무리가 없다는 평가다.
쉴드 AI의 수직 이착륙기(V-BAT)에 장착돼 발사되는 LIG넥스원의 다목적 드론발사 유도탄 ‘L-MDM' 개념도. 자료=LIG D&A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꿨다
결국 이번 사명 변경의 본질은 ‘이름’이 아니라 ‘방향’에 있다. 미사일 중심 기업으로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그 다음 단계인 항공우주와 통합 전장 영역으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전쟁이 기술을 검증했고 시장이 수요를 확인했다. 기업은 이에 맞춰 정체성을 재정의한 셈이다.
방산 산업은 수주 변동성이 큰 구조적 특징을 갖는다. 특정 무기 체계에 의존할 경우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사업 다각화와 시스템 통합 역량 확보는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꼽힌다. ‘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라는 새로운 이름은 앞으로의 사업 전략과 성장 방향을 보여주는 선택으로 읽힌다.
LIG D&A의 선택은 한 기업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한국 방위산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방산 기업의 경쟁력은 ‘무기 하나’가 아니라 ‘전장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는가’로 평가받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전쟁 양상이 바뀌면서 미사일 기업에 머무르는 전략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며 “항공우주까지 포함한 통합 전장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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