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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레트로템’에 빠진 MZ…과거를 사는 그들

전다현 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레트로템 열풍은 디지털 환경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심리적 욕구로 볼 수 있다”며 “빠르게 변화하는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오히려 인간적인 요소, 즉 불완전함이 더 매력적으로...

‘레트로템’에 빠진 MZ…과거를 사는 그들

디카부터 골동품까지

MZ세대(1981년생부터 2011년생까지)가 ‘레트로(Retro·복고풍) 아이템’에 빠져들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 구형 아이폰, LP, 다마고치, 워크맨까지 한때 낡은 물건으로 밀려났던 제품들이 다시 젊은 세대의 취향 소비 중심에 선 것. 초고속·초정밀·초연결의 시대에 일부러 완벽하지 않은 결과물을 택하는 소비가 확산하는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MZ세대들이 직접 살아보지 못한 과거에 대한 동경을 찾는 움직임으로도 해석한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2층 카메라 점포에 들어서니 작은 액정과 두툼한 버튼을 단 구형 디지털카메라가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조동현 기자)

답십리·세운상가 가보니

‘레트로템’ 성지 분위기 물씬

3월 31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고미술상가. 상가 6개동으로 구성된 이곳엔 1층 상가 구역에 약 110여개의 고미술상이 들어서 있다. 1980년대 중구 청계천과 황학동 일대에 흩어져 있던 고미술상들이 한데 모이면서 형성된 곳이다. 상가를 둘러보면 좁은 복도 양옆으로 놋그릇과 찻잔, 나무 소반, 낡은 장식장과 유리잔이 빽빽하게 들어찬 공간에는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배어 있다. 가격대는 천차만별이다. 소형 생활 도자기는 1만원대부터 시작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생활 유물은 연대와 희소성에 따라 수백만원까지 올라간다.

인근 상인들에 따르면, 한때 중장년 수집가와 인테리어 업자들의 발길이 중심이던 이곳엔 한 달 전부터 20·30대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 주말에는 복도가 젊은 세대 손님들 발길로 가득 찬다는 전언이다. 상가 안에는 스마트폰으로 진열장을 찍고, 작은 잔과 장신구를 손에 들어보며 “이건 어느 시대 물건인지” 묻는 젊은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젊은 고객이 늘어났지만, 관심이 곧장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 고미술점 상인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고미술에 관해 관심이 깊은 건 아니다”며 “구경만 하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찻잔이나 소품처럼 1만~2만원대 물건은 가끔 팔리지만, 수백만원대의 비싼 작품은 안 팔린다”며 “고미술은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 시장이라 처음엔 작은 것부터 사서 취향을 키우는 손님이 생기면 그게 시장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답십리의 레트로가 생활 유물과 고미술에 가깝다면, 서울 종로 세운상가의 레트로는 보다 현대적이다. 같은 날 오후 종로구 세운상가 2층 카메라 점포에 들어서니 작은 액정과 두툼한 버튼을 단 구형 디지털카메라(디카)가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매장 안에선 20대 고객들이 카메라를 손에 쥐고 셔터를 눌러보며 사진 결과물을 확인하고 있었다. 세운상가 디카 매장 직원 이진표 씨(39)는 “손님의 중심은 20·30대, 그중에서도 여성 비중이 높다”며 “핸드폰처럼 선명한 화질이 아니라 뿌옇고 빛 번지는 느낌을 좋아해서 찾는 것 같다”고 전했다.

디카 열풍은 가격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세운상가 상인들에 따르면 한때 10만원 전후반이던 구형 디카는 지금 20만원 안팎, 인기 모델은 30만~40만원대까지 올랐다. 일부 캐논 익서스 계열은 온라인 시세를 타고 40만~60만원까지 호가하기도 한다. 또 다른 디카 가게 상인은 “디카 인기 정점이 조금 지났다고 해도 손님은 여전히 많다”며 “하루 30팀 이상 보고 가는 날도 있고, 주말에는 판매량이 더 뛴다”고 들려줬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고미술상가에 있는 고미술상인 대성당. 가게에는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생활 유물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조동현 기자)

중고 거래 시장도 레트로템 바람

구형 아이폰·원조 라면까지 인기

레트로템 열풍은 특정 상권의 체감에 그치지 않는다. 중고 거래 데이터에서도 레트로템 상승세가 뚜렷하다. 매경이코노미가 지역 커뮤니티 플랫폼 당근마켓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중고 디카 거래량이 311% 증가했고, 필름 카메라는 274% 늘었다. 한때 장난감으로 여겨졌던 다마고치는 484% 급증했다. 게임보이는 97%, 워크맨은 거래량이 90% 증가했다. 신형 디지털카메라 보급도 덩달아 증가세를 보인다. 일본 카메라영상기기공업회(CIPA)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카메라 출하량은 858만대로,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흐릿한 사진을 선호하는 소비자 경향은 스마트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중고 거래 시장에서는 출시된 지 10년이 넘은 아이폰 6 시리즈의 거래가 다시 활기를 띤다.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따르면 지난해 아이폰 6S 등록 건수는 전년 대비 51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거래량도 28% 늘었다. 음악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과거 아이리버와 애플의 아이팟으로 상징되던 MP3 플레이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10월 기준 이베이에서 아이팟 클래식 검색량은 전년 대비 25%, 아이팟 나노는 20% 증가했다. 레트로 열풍은 LP(바이닐)와 CD의 글로벌 열풍을 견인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글로벌 바이닐 연합회가 미국, 영국 등 21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Z세대 응답자의 87%가 LP 음악에 관심이 있으며, 80%는 레코드 플레이어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 업계도 레트로템 열풍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삼립의 ‘돌아온 포켓몬빵’은 1998년 출시 제품을 2022년 재출시해 ‘랜덤 스티커 수집 열풍’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재출시 40일 만에 100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 농심은 1975년 처음 출시하고 1990년 단종된 ‘농심라면’을 지난해 1월 재출시한 뒤 올해 3월 중순까지 누적 2000만개를 판매했다. 삼양식품의 ‘삼양1963’ 역시 최초 삼양라면의 레시피를 재해석한 제품으로 월평균 700만개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MZ, 왜 레트로템에 빠지나

‘아네모이아’와 ‘근본 찾기’

왜 MZ세대는 직접 살아보지 않은 시대의 물건에 이토록 열광할까. 전문가들은 디지털 피로, 경험 소비, 그리고 ‘아네모이아(anemoia)’라는 심리 개념과 맞물린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아네모이아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과거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심리를 뜻한다. 영화와 드라마, SNS 이미지와 음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과거를 낭만적으로 상상하고, 그 시대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레트로템 소비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전다현 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레트로템 열풍은 디지털 환경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심리적 욕구로 볼 수 있다”며 “빠르게 변화하는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오히려 인간적인 요소, 즉 불완전함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레트로템 열풍은 ‘근원 추구’라는 단어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디지털 환경에 과도하게 노출되며 표면적 자극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가치를 찾으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며 “MZ세대에게 디지털카메라나 필름 카메라는 익숙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 진단했다.

레트로템 소비를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에 대한 욕구로 풀이하는 해석도 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현재는 대부분의 콘텐츠와 소비 방식이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형태로 이뤄진다”며 “이런 환경 속에서 오히려 물리적 형태를 지닌 매체를 직접 만지고 조작하는 경험이 차별화된 가치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교수는 “유행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과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레트로템 소비가 단순한 지출에 그치지 않고 창의성이나 콘텐츠 발굴로 이어진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소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4호(2026.04.08~04.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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